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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북의 사찰88

기림사-131 기림사는 사적기에 따르면 기림사는 신라 선덕왕 12년(643) 창건되었다고 한다. 기림사라고 불리기 전에는 임정사로 불렸는데 이 절에는 광유선사가 머물고 있었고 이 임정사가 선덕왕 12년 원효대사에 의해 기림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함월산 기림사는 동해에서 신라 경주에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였는데 과거 이 길을 통해서 석탈해가 경주에 들어가 탈해왕이 되기도 하였다. 기림사의 창건주로 알려진 광유선사와 관련된 설화에 의하면 그는 신라승려가 아닌 외국승려 곧 인도승려로 여겨지는데 그렇게 된 원인은 기림사의 지정학적 위치와 기림사가 인도의 기원정사에서 절 이름을 따온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광유선사와 원효대사가 기림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언급은 후대에 덧붙여 진 것으로 생각된다. 원효의.. 2007. 6. 23.
골굴사-130 선무도 수련장 .....선무도도량 금강역사를 보는 것은 내 자신의 참회록을 읽는 것과 같다. 바위 틈틈이 많았던 석불들이...흔적은 없지만 후인은 그 자리를 대신할 많은 불사를 하였다.....관음굴 또 다른 굴앞에 조성된 신중단 함월산 골굴사 석회암 절벽에는 석굴로 여겨지는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는데, 맨 꼭대기에 월성골굴사마애여래불좌상이 조성되어 있다. 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높이 4m, 폭 2.2m 정도의 크기로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기도 하며, 평면적인 신체와 수평적인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V자형 옷주름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철원 도피안사와 장흥 보림사와 축서사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5호)등의 불상의 구성.. 2007. 6. 21.
백률사와 굴불사지-129 백률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 절의 대비관음상은 중국 장인(匠人)이 중생사(衆生寺)의 관음 소상(塑像)을 만들 때 함께 만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관음상에 얽힌 영험이 693년(효소왕의 일로써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어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혁 백률사는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하여 528년(법흥왕 15) 창건되었고, 신문왕대에 중창되었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는데, 1378년(우왕 4) 경주 부윤(府尹) 윤승순(尹承順, ?~1392)이 서루(西樓)를 중수하고 요사 2동과 회랑 및 문 등을 중건했다. 윤승순은 고려의 무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377년 계림 부윤으.. 2007. 6. 17.
희방사순례-124 온갖 생명의 기운은 푸름에서 솟아 나니 이 몸도 저 자연과 같아 번뇌에 시달린 그 마음마저 깨침 향한 외침일레 부처님 생각케 하는 연모의 정으로 세상의 일일랑 저 만치 제께두고 지장보살이 지옥 중생을 구하듯 간절한 염원으로 엎드려 기원하오니 동종 소리의 여운이 참으로 정겹구나. 시원한 희방폭포 희방사는 누구에게 쉽게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 외진 곳에 숨어 있습니다. 기존의 사찰처럼 사람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병풍처럼 깍아지른 듯한 절벽에 자연과의 균형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짓고,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햇빛만 잠깐 받아들일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 중축하면서 당시의 사격을 초과해 지어 그 기쁨은 줄었을지도 모릅니다. 소백산을 오르는 사람들조차 이정표가 없으면 그.. 2007.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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