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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북의 사찰88

거조암의 나한상-116 국보 제 14호인 영산전을 더욱 멋나게 끌어 당기는 것은 영산전 내부의 나한상 일 것이다. 제각기 개성 있는 특유의 모습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영산루....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영산회상의 희열에 찬 법음을 실어라. 십대제자+십육승+오백아라한 합해서 526분의 나한을 모시고 있다. 은해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지은 절로 처음에는 해안사라 하였다고 한다. 여러 차례 있었던 화재로 많은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근래에 세운 것들이다. 거조사는 은해사 보다 먼저 지었지만, 근래에 와서 은해사에 속하는 암자가 되어 거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은 영산전은 거조암의 중심 건물이다. 고.. 2006. 12. 19.
인각사 와 일연스님-115 삼국유사는 삼국유사는 활자본이며,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1512년(조선 중종 7) 경주부사(慶州府使) 이계복(李繼福)에 의하여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최고본(最古本)이며, 그 이전에 판각(板刻)된 듯한 영본(零本)이 전한다. 본서는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整齊)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이므로 체재나 문사(文辭)가 《삼국사기》.. 2006. 12. 17.
용연사와 석조계단-114 용연사(龍淵寺)의 역사를 전하는 기록으로는 문신인 임수간(任守幹, 1665~1721)이 지어 1722년(경종 2)에 세운 「용연사중수비」와 1748년(영조 24)에 금곡 선청(金谷善淸) 스님이 지은 「용연사사적」 등 두 가지의 사적기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두 사적기 모두 용연사의 창건을 신라시대 관기(觀機) ·도성(道成) 등 두 분의 성인과 보양(寶壤) 선사가 이룬 것으로 보고 있다. 「용연사중수비」는 신라 말에 보양 선사가 용연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고, 「용연사사적」은 한 걸을 더 나아가 신라시대인 912년(신덕왕 1)이라는 창건연대까지 명시하고 있다. 보양 선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걸쳐 고려를 건국한 태조를 지원하였고, 폐사가 된 작갑사(鵲岬寺)를 다시 일으켜 청도의 운문사(雲門寺)를 창건.. 2006. 12. 11.
비슬산 유가사-113 비슬산은 대구남방 10여km 밖에 있는 산이다. 비슬산의 산행기점은 산의 서남쪽에 있는 음동마을. 비슬산으로 가려면 구마고속도로와 나란히 뻗어있는 5번도로를 이용하여 유가면 유가사로 직접 가거나 대구시내에서 현풍행 버스를 탑승하여 현풍에서하차한 다음, 유가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교통편 참조) 비슬산은 높이 1084m나 되는 산으로 대구분지를 형성하는 주요산이다. 정상은 암봉으로 되어 있으며 비슬산은 정상에서 서북방향으로 뻗어 낙동강으로 향하는 능선보다는 남동 및 남쪽으로 뻗어있는 능선이 더 높다. 따라서 산행코스도 정상에서 남동 및 남쪽 방향 능선을 따라 나 있다. 산행은 사효자굴에서 시작, 유가사를 거쳐 조망이 좋은 곳에 위치한 도성암으로 올라간 다음 능선으로 붙어 정상으로 간다. 정상에서는 북에서 .. 2006.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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