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생명의 기운은 푸름에서 솟아 나니
이 몸도 저 자연과 같아
번뇌에 시달린 그 마음마저
깨침 향한 외침일레
부처님 생각케 하는
연모의 정으로
세상의 일일랑 저 만치 제께두고
지장보살이 지옥 중생을 구하듯
간절한 염원으로 엎드려 기원하오니
동종 소리의 여운이 참으로 정겹구나.
시원한 희방폭포
희방사는 누구에게 쉽게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 외진 곳에 숨어 있습니다. 기존의 사찰처럼 사람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병풍처럼 깍아지른 듯한 절벽에 자연과의 균형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짓고,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햇빛만 잠깐 받아들일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 중축하면서 당시의 사격을 초과해 지어 그 기쁨은 줄었을지도 모릅니다.
소백산을 오르는 사람들조차 이정표가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찰이 바로 기쁨을 주는 희방사(喜方寺)입니다. 기쁨을 주는 사찰이란 창건설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어느 날 두운조사가 산길을 가다 신음하는 호랑이를 발견했다. 그 호랑이는 사람을 먹고 목에 비녀가 걸렸는데, 두운조사가 비녀를 빼주고 호랑이를 살려줬다. 그 후 호랑이는 두운조사의 은혜를 갚고자, 어느 양가집 규수를 물어다 주었다. 그 규수는 바로 경주호장의 무남독녀였다. 경주호장 딸을 살려준 두운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이 절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 두운조사의 참선방이란 것을 상징하는 방(方)을 써서 희방사(喜方寺)라 이름 지었다.”
기쁨이란 쉽게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노력과 선행이라는 것이 전제되지 않은 기쁨은 없습니다. 호랑이와 경주호장의 보은은 스님의 철저한 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희방사에서 기쁨을 맞는 것은 힘들게 희방사를 찾을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외부인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조선시대 때 조정에서는 희방사에 훈민정음 원판과 월인석보 목판을 보관하였으나, 안타깝게도 6,25전쟁 중에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월인석보 목판은 소실되었으나, 영인본은 직전 규장각으로 이동시켜 화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관람포인트
1) 많은 문화재는 소실되어 없지만 유일하게 동종이 남아 있는데, 산사에서 듣는 동종소리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2) 사찰을 오르다 보면 당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희방폭포에 세속의 모든 번뇌의 찌꺼기를 씻어버릴 수 있습니다.
3) 봄에는 철쭉를, 가을에는 오색단풍에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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