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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도갑사-48 도갑사 이르는 길목 세사를 풍경에 흘러 버리고 건너간다. 월출산 도갑사라고 쓴 현판의 글씨가 정말 힘있게 느께진다. 도갑사 해탈문(국보 50호)를 통과한 눈길은 복원 중인 대웅전 안 까지를 보여준다. 도갑사는 월출산에 있는 절로,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원래 이곳은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 뒤 이 문수사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수미·신미 두 스님이 조선 성종 4년(1473)에 다시 지었고,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 2005. 10. 9.
월출산 무위사-47 무위(無爲)란 이름은 감히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중량감 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無爲眞人(道人)라 이미 본성을 깨달아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세상에 대하여 시비에 휘말림이 없는 자유자재한 사람을 일컬는다. 무위사는 바로 아무 꾸밈이 없이 나그네를 이끌고 있다. 멀리 법당(극락보전) 안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과 후불 탱화 후면의 관세음보살 벽화는 너무도 잘 알려진 문화재이다.(절대 사진 촬영 금지라찍지 않았음)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국보13호)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 2005. 10. 8.
석보상절(釋譜詳節) 제 七 <月印千江之曲 其一百七十七> 세존께서 미니수국(彌尼搜國)에 계시거늘 석종(釋種)의 아이들이 세존께 가서 출가하려하니, 발제(跋提)가 아나율(阿那律)더러 이르되,「우리는 아직 출가하지 말고, 집에서 일곱 해를 있으면서 오욕(五欲)을 마음껏 편 뒤에나 출가하자.」아나률이 이르되,「일곱 해는 너무 오래다. 사람의 목숨은 무상한 것이다.」발제가 또 이르되,「여섯 해로 하자.」아나률이 이르되,「여섯 해도 너무 오래다. 사람의 목숨은 무상한 것이다.」그와 같은 모양으로 줄여서 이레에 다달으니, 아나률이 이르되,「이레는 멀지 않다.」그 때에 석종들이 이레 동안에 오욕을 마음껏 펴고, 아나률과 발제와 난제(難提)와금비라(金毗羅)와 발난다(跋難다)와 아난다(阿難다)와〔아난다는 아난(阿難)이다.〕제바달(提婆達)이 목욕하고 향 바르고, 잘 꾸며 영락(.. 2005. 10. 8.
무학산 산줄기를 가로 지르는 산복도로에서 매일 일 할 때면 멀리 바라보이는 합포만과 무학산의 기운을 느낄 수있음은 행복한 일이다. 비록 너무도 시간에 쫒겨 산과 바다와 더불어 대화할 수있는 여유가 없음이 아쉬움이다. 가까이는 신마산의 풍경이 멀리는창원의모습이 보인다. 시내를 둘러싼 팔용산이 보이고 그 뒤엔창원과 진해를 감싼 산 줄기가 보인다. 무학산 관음사의 모습.....마산시 월영동 소재 2005.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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