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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종말을 위한 파국은 다가오고 있는가? 새로운 미래를 여는 신인은 언제 등장할 것인가? 그 대척점에 선 낙빈과 흑단인형. 흑단인형과의 마지막 만남을 위한 마무리 여정을 떠난다.
🍎🍎 언제부턴가 이 마을은 문을 열어두고 사는 집이 사라졌다.걸어 다니는 자들이 죄다 시체로 변하였다. 그런 변화를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아는 이라곤 나 뿐이었다.
나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너를 지킬 텡게 무서워할 거 없다. 너는 우리 성황목의 정기를 받은 놈이여. 기죽을 거 없당게. 저놈들이 세상을 다가져가도 너는 내가 지킬 텡게.'
나는 아무런 대꾸 없이 할매의 말을 듣기만 했다. 어쩐지 마음이 찜찜했다. 할매는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지만 그게 과연 믿을만한 말인지는 좀 생각해볼 일이었다. 할매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냈다. 죽기 전에도 늘 그런 말을 했다.
"느그 애비가 널 두고 도망쳤어도 니는 하나 걱정할 것이 없다.
이 할미가 너를 지키고 또 지켜줄랑게 걱정 붙들어 매버려라. 나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 하나는 지켜줄랑게. 죽어도 널 지킬랑게.'
할매는 살아생전 내 손을 붙들고 걱정할 것 없단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할매가 이승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살아서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할매는 말하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나 혼자 내버려두고 죽어버렸다.
어찌 보면 아예 약속을 어긴 건 아니다. 죽은 다음에도 아예 날 떠난 건 아니니까. 내 눈에만 보이는 수호령이 되어 다시 돌아온 건 할매가 날 지키겠다는 약속을 지킨 거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p.53 그대의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 본래 내가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할매가 죽고 난 뒤 자연스레 귀신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던게
할매가 죽은 뒤 귀신이 되어 나타난 것은 나에게 참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할매랑 같이 살 적에 할매는 눈에 안 보이는 귀신들과 이런저런 말을 해됐고, 나는 그 모습을 내내 보아왔다. 내가 말문도 트이기 전에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날 버리고 집을 나가자
사진으로만 기억하는 아버지가 나를 할매 집에 두고 가비렸다.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과 이야기를 해대는 할매의 모습을 보았던 내게 귀신이 되어 돌아온 할매는 어쩐지 당연하게 느껴졌다
살아생전 할매가 안 보이는 것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게는 보이지 않지만 할매에게는 보이는 무언가가 늘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다. 행여 할매가 미쳤다거나 혼잣말을 한다는 생
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할매가 죽은 뒤 내가 다시 죽은 할매 귀신을 보았을 때는 놀랍다기보다 조금 신기한 기분이었다
'아, 할매 눈에는 그동안 저런 것들이 보였구나' 하고 깨달았다고나 할까
죽은 할매가 보이게 된 이후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할매만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내 눈에도 다 보이게 되었다. p.56 그대의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 무슨 징조일까, 알 수 없는 불길함 속에서 계속 걸어다니는 시체만 늘어난다. 할매가 신목이를 지켜주겠다고 하지만......
그때도 할매는 말했다.
신목아, 걱정하지 말어! 내가 너를 지켜줄 텡게 하나 걱정할 것 없당게 저것들이 아예 얼씬도 못하게 할 텡게.'
하지만 할매의 장담과 달리 그것들은 내내 우리 집 앞을 얼씬 거렸다. 물론 성황목과 서낭당 돌무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시체가 걸어 다니게 되었다. 마을에서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예 얼굴
도 모르는 사람들이 빈집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시골 마을의 산골 어귀에는 드문드문 빈집들이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람이 하나둘 나타났고 그들은 모두 시체였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씩
달이 사라져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나혼자뿐인 것처럼 낯선 사람들이, 그것도 시체들이 마을의 빈집에 나타난다
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도 나 혼자뿐인 듯했다.
모른 척혀. 괜히 저만 것들과 엮일 필요 없당게. 못 본 척혀,신목아.'
🍎🍎 한 번씩 동네를 나갈 땐, 온 동네가 걸어다니는 시체들 뿐이고, 한 집안에 걸어다니는 시체가 한 구 생기면 덩달아 죽는 사람이 늘어났다.
나는 있는 힘껏 내달렸다. 그동안 뒤를 밟은 적은 없지만 시체들이 대충 어디로 가는지는 감이 왔다. 우리 마을 동산에서 제일 깊고 음습한 곳. 옛날, 빨래하는 사람들이 죄다 모였다는 우물가
였다. 예전에는 우물가 바로 아래쪽에 여자들이 멱을 감을 수 있도록 작은 도랑 같은 것도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우물은 길가가 아닌 산비탈로 조금 더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산 아래서는 우물
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흙으로 우물을 메워둔 상태였다.
우물가에서 목을 매거나 우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 근처로 갔다가 내려올 때쯤엔 걸어 다니는 시체로 둔갑한다는 걸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길을 쪽 따라가면 가까울 테지만 어쩐지 그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성황목 뒤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성황목 아래를 지나는데 가슴이 뜨끔거렸다. 그래서 두 손을 모아 나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네 정기를 받아 태어났대, 그러니까 네가 나를 좀 살려 줘. 나 무서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네가 나 좀 도와줘, 진짜 진짜로 나 좀 도와줘. 나 진짜 겁나게 무서우니까, 제발 좀 도와줘라." p.79
🍎🍎낙빈이 여정이 신목의 동네를 지나고, 이승과 저승을 혼돈케 하는 틈새가 넘나드는 시체를 확인한다.
소년은 좀 전까지 황남이 아재가 누워 있던 우물가를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는 무엇이 보이는지 그 주변에 손을 척척 갖다 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시체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게. 낙빈이 넌 벌어진 틈새를 막도록 해."
소년의 앞으로 척척 걸어 나오는 스님이 보였다. 스님은 혈렁한 회색 승복을 입었는데도 어쩌지 몸이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스님의 뒤에는 기다란 막대 같은 것이 가위자로 들러붙어 있었다.
"낙빈이 넌 내가 지켜줄게."
작은 여자아이가 높은 소프라노 소리를 내며 조금은 과장된 걸음걸이로 나섰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여자아이가 프릴이 달린 원피스를 입고 숲 아래로 내려섰다. 아이가 좀 점한 정도로 펄쩍 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두 발이 땅을 밟기 전에 무언가가 사뿐 아이를 받아들였다. 바로 늑대같이 생긴 흰 개였다. 그 개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여자아이를 받아낸 것이다. 그뿐이 아니
었다. 흰 개 뒤로 누런 개 한 마리가 더 있고, 한참 후에는 어둠 속에 숨은 검은 개 한 마리도 보였다. 여자아이와 개들은 하얀 한복을 입은 소년을 빙 둘러섰다.
"지켜줄 필요는 없.... 지만 고맙다, 미덕아.'
하얀 한복을 입은 소년이 뭔가 하려던 말을 꼴깍 삼키는 것 같았다. 아마도 여자아이가 노려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p.93
🍎🍎 낙빈은 이승을 떠돌던 영혼을 우물가의 틈으로 보내준다.
'아차차, 우리 할매는 보내면 안 되는데! 우리 할매는 나랑 같이 있어야 하는데 . 할매! 할매, 어딨어? 할매, 나한테 있는 거야? 할매! 우리 할매.
내가 버둥거리며 공중에서 휘휘 돌아 우리 할매를 찾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고 확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숲에 높이 떠 있던 내 영혼이 바닥으로 착 가라앉았다
'뭐. 뭐야?
깜짝 놀라 아래몰 내려다보니 회색 승복의 누나가 쓰러져 있는 내 몸을 쓸어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누나가 기절한 채 누워 있는 내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정신이 맑아지면서 엉망진창으로 뜨겁던 머릿속에 차가운 물을 뿌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
시에 두둥실 떠 있던 내 혼이 다시 몸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게 느껴겼다. 이제 나는 하늘에서 바라보았던 모습을 바닥에 내려앉아
살펴보게 되었다.
내 눈에는 긴 머리를 땋은 누나가 내 이마를 짚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시체들 사이를 누비며 뱅글뱅글 돌아가던 스님은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앉고 나니 누나와 스님에게 가려져 흰색 한복을 입은 아이나, 개들과 함께 있던 여자아이의 모
습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이 상황이 이해되었다. 승복을 입은 누나가 내 몸을 붙잡고 있었기에 내 영혼이 내 육신으로 도로 들어간 게 분명했다. p. 99
🍎🍎 니 인생은 누구것이고
제 인생은 제 것만이 아니에요. 제가 있도록 해준 부모님이 계시니까요 어머니는 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세상에 태어나도록 목숨을 바치셨고요 제게 계신
신령님들은 이 땅과 이 세계의 위대한 분들이에요.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예비하고 있는 높으신 분도 계시지요. 승덕 형은 죽음의 평안을 물리치고 저승의 강을 되돌아 제게로 다시 와주었어요.
어둠 속에 있던 저를 구해내어 밝고 맑은 지혜를 주기 위해서요.
이렇게 세상을 위해 수많은 위대한 분이 제 곁에 계신 거예요. 그러니 제 인생은 제 것이 아니에요.
'그럼 너거 신령들의 것이냐, 니 인생이?
"네에? 그렇다고 해야 하나...모, 모르겠어요."
'네 인생이 너의 것이 아니면 너는 왜 사느냐?
"네? 그건 세상을 구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지랄하고 자빠졌네. 지 인생도 지 것이 아닌 놈이 세상을 구하고 자시고 그따위가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냐? 지 것도 못 챙기는 놈이 세상을 구한답시고 어디를 껄떡대는 것이여!' 이
할매는 크게 성을 냈다. 그럼 그렇지! 지금껏 이상하게 조곤조곤 말한다 싶었다 드디어 우리 할매 성격이 튀어나오는구나. .한복을 입은 아이는 그런 할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p.107 그대의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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