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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박범신 장편소설 소 금(2025년 141권째 후기)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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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범신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휜 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소금의 보내는 짠 맛
소금이 필수품인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 쓰임의 비율이나 효과는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렵다.
어려서부터 염전을 일꾸는 아버지를 보아 온 아들은
아버지의 소망대로 아버지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길을 택하지만, 희생과 봉사의 일색인 가족속의 머슴인생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 계기가 막내딸 생일날에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다.

⛱️⛱️  낮의 햇빛 살인
염부1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날아오지 않았다.
해주의 슬레이트 지붕 높이는 지상에서 겨우 1미터 정도였다. 대파의 손잡이를 고쳐 잡으려고 잠시 허리를 펴던 염부2는 다시 한 번 해주 너머로 염부1을 기웃, 바라보았다. 가슴이 그 순간, 철퍼덕 하고 내려앉았다. 염부1은 결정지 한가운데, 동글게 모아진 소금 더께의 한쪽 모서리에 이마를 뉜채 여전히 꼼작하지 않고 있었다. 살진 소금꽃이 염부1의 머리칼과 해진 작업복 따위에 덤턱스럽게 엉겨 붙어 있는 걸 염부2는 보았다. 그것은 염부1이 조금 전에 쓰러진 게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대파 손잡이가 염부2의 손아귀에서 쓰윽 빠져나갔다.
"아이고, 이게 뭔 일! 어이! 어허이!"
염부2가 허둥지둥 달려가기 시작했다.
💥여름의 한낮 35도가 넘는 날씨중에서도 소금꽃이 내뿜는 열기는 40도에 근접하는 뜨거운 날씨에 염부1은 대파작업을 해야 했을까?



🌐🌐 아빠의 희생과 아버지의 새 삶
⛱️⛱️1.

염부였던 아버지는 소금밭에서 죽었다.
바로 그의 대학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졸업식엔 참석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소금밭 결정지에서 소금 더미에 코를 박고 쓰러져 죽은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아버지 관계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죽
음으로 관계가 나는 건 아니었다. 관계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일 터였다. 아버지의 시신을 땅에 묻고 나서 망각은 가속도가 났다. 열흘쯤 지나서 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고, 스무날쯤 지나고 나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생각나지 않았으며, 반
년쯤 지나자 아예 염전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염부였다.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말라는 아버지는 대낮의 열기를 모으로 고스란히 맞으며, 내일은 아들의 졸업식엔 참석하리라고 앞당겨 내일 몫의 작업을 서둘렀다.

⛱️⛱️2

"제가 없으면, 누가 집안일을 해요?"
"사내놈이, 집안일은 무슨!'
아버지의 눈에서 그 순간 불이 번쩍했다
콧날이 시큰해졌다. 식구들과 떨어져 먼 곳으로 가야 되는 운명 때문에 그런게 아니었다.
타오르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당신의 절망과 희망이 전광석화처럼 스친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알았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소금밭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아버지는 결국 알아차린 것이었다. 앞날에 검은 휘장이 덮였다고 생각했을 때, 아버지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명우, 그밖에 없었다. 총명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으로 선택됐다. 당신은 물론이고 자식들조차 이 고통스런 소
금밭에서 떠날 수 없을 테니, 그 하나만이라도 점찍어 출세시킨다음, 그를 통해 나머지 자식들도 구원하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전략이었다.
💥💥너는 나를 따르지 말고 펜대를 잡아라, 저 시기에 부모님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소를 팔고, 배를 팔아도 자식이 잘 되면 그것으로 만사가 해결되던 시기였다.

⛱️⛱️3 첫사랑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어젯밤 밤새 .. 얘가 나와 함께 돌아가신 할머니를 지켰어요. 애가요! 다른 분은... 애한테 뭐라고 할 자격. .. 없어요!' 그녀는 울면서 소리쳤다. 동네 사람 몇몇이 찾아오긴 했으나 할머니의 시신 곁에서 밤을 새운 것이 그와 그녀뿐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친척들이 온 것은 다음 날이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은 너무도 평화로워 차라리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할머니.... 예쁘지?" 그녀가 묻기까지 했다. "천국에 가셨으니 이렇게 고운 거야. 우리 할머니 살아 계실 때도 이랬어.
💥💥누구나 첫사랑은 잊혀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던지 또 다른 가면을 쓰고 내 안에 숨쉬고 있을 뿐이다.
세희는 선명우 첫사랑이었고 엄마같은 누님이었으며, 세속적 탐욕을 정당시하는 혜란의 대척점에서 언제나 명우에게 존재하였다.

⛱️⛱️4 간직할 추억

누나는 아주머니에게 들키는 게 싫어 젓갈
드럼통 뒤에 숨었다고 했다.
발효실 안엔 불이 켜져 있었고 문도 조금 열려 있었다.
놓고 갔던 물건을 챙겨 든 아주머니가 열린 발효실 문을 발견했다. 누가 부주의해 문을 열어두고 갔다고 생각한 아주머니는 당연히 다가와 발효실 문을 닫았고 발효실 전등 스위치도 내렸다. 누나는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당황해서 끝까지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발효실 철문의 잠금장치가 밖에서만 열고 닫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등 스위치와 온도조절기도 또한 밖에 있었다. 발효실은 가게 안쪽에 있는 데다가 문이 두꺼워 철옹성
감옥과 다름없었다.

"우리 그럼, 언제 나갈 수 있어?"
💥💥젓갈 발효실에 쉰다는 게, 문이 잠기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몸을 떨고 있는 명우에게 세희는 웃옷을 벗어 준다. 감정의 교류가 시작된다.


⛱️⛱️ 6. 선명우의 속세 탈출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들있어요."

대머리가 손을 셋으면서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
로 고개를 돌렸다."한자분 말이에요. 목슘만은 건질 수 있나 봐
요"한자분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기억의 회로 앞엔 어릿어릿 안개가 끼어 있었다. "그러니 보호
자분이 더 정신 차리셔야지요." 대머리가 태연히 덧붙였다.
"보.... 호자요?"

그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안개가 재빨리 홈어지고 있었다. "그 축대 밑으로 떨어졌다
는, 602호 김승민 씨요."대머리가 종이 수건을 쏙 했다. "김승민..." 소금 자루를 실은 트럭이 곧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키 작은 남자가 도로와 기와지붕 사이의 컴컴한 함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정경이 슬로비디오로 재현됐다. '형님 되신다고
들었는데요." 반문할 필요는 없었다.
💥💥막내딸 시우의 생일 축하선물을 가져오려고 내려오는 길에 소금 자루를 실은. 트럭에 김승민 부디치는 순간 선명우는 또 하나의 김승민 되어 간다.


⛱️⛱️ 빙빙 돌아서 결국은 나의 짐으로 남는구나

가난해서 아내와 딸들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저축이 늘어나면, 아파트를 늘리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죽어라고 일해 과장, 차장, 부장, 상무에 오르고 그렇게 해서 늘어난 연봉, 늘어난 잉여 재산이 가져온 건 사랑의 황폐화뿐이었다.

가족은 차츰 그자신을 다만 '통장같이 취급했다.
아내는 물론이고 어린 딸들과도 따뜻이 지내던 시절의 짧은 추억들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잉여 재산이 불어나면서 그는 그 모든 사랑의 관계를 잃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그는 자식들을 소비의 괴물로 만들었을 뿐이었고, 아내와의 사랑 역시 서로 대를 꽂아 빠는 기능적 관계로 변모됐다.
💥💥나는 가족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중동의 사막에서, 또는 늦은 밤 직장에서 불 꺼진 거리를 바라보면서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

사무치게 후회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침에 대학에 나가 사각모를 분배받아 나오는데 과 조교가 그에게 전보 하나를 건네주었다. ' 부친 급사'라고 쓰인 전보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염전 어커의 굽잇길을 돌아 나올 때 미끄러겨 엎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는데, 그 상태에서 아버
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남몰래 본 셈이다.

아니 달려가 아버지를 일으켜 안았으면 살릴 수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론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한 셈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어떤 염부는 그날 아침 아버지가 제1중발지의 난치'에 저수조
바닷물을 들여앉히는 걸 보았다고 했고, 어떤 염부는 한낮에 아버지가 저수조 건너편의 하천 부지 공방을 매는 걸 보았다고
했다. 졸업식에 다녀올 요량으로 그날의 아버지는 새벽부터 뒤고 뛰었던가 보았다. 증발지에서의 체감온도는 40도가 넘는 날
씨였다. 부검을 집도한 의사는 아버지의 위장에 음식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먹을 시간조차 없었을 터였다.

"소금 부족으로 사망한 거라고 봐야지!"

먼 훗날에도 그는 담당 형사의 말을 잊지 못했다.
💥💥결국은 염전은 나의 터였다. 부모님의 품 보다 홀가분 한 데가 또 있을까? 이제는 돌아 와 대파를 끌며 작업을 하고 있다.


🌐🌐 딸의 아버지 이야기와 나

⛱️⛱️1, "저거, 열녀문이죠?" 그녀가 정려를 가리키며 물었고, "정려라고 효자를 기리는 뜻에서 세운 문이에요. 저 서원에 모셔진 조선 시대 중화재(中和齋) 강응정(姜應貞 )이란 선비가 지극한 효자였대요"내가 대답했다. 마을 어귀의 보안등에 벌써 불이 들어와 있었다. "효자문인 셈이네요. 아까 그 폐교요. 사실은 우리 아빠가 졸업한 학교라서 들러본 거예요. 처음이지만요 그
녀는 아득한 눈빛으로 정려를 다시 돌아다보았다.

어조에 물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아하, 하고 속으로 웅얼거리며 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그 흔적을 찾아왔던가 보았다. 그녀가 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아버지는 아마 예순 살도 채 되기 전에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있다. 최근에 죽은 것일까.
💥💥 체장아이 걸린 아빠, 삶이란 그물에 온 몸을 던져서 남은 것은 병명 체장암을 걸머진체 세속의 인간들로부터 사라진 아빠의 흔적을 뒤적여간다.

⛱️⛱️2,

"맞아, 맞아!"
"울 아빠, 쑥!
그녀들은 박장대소 동의했다. 심지어 가끔 아버지를 부를 때 "쑥아빠! 라고 부르기도 했다. "쑥아빠, 엄마가 식사하래!" 그녀도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깊이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구태여 마음에 들지 않은 점도 없었다. 어느 편이
냐 하면 아버지는 과묵한 편이었으며,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법이 거의 없는 타입이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수식도 화려할 뿐 아니라 자기표현에서 언제나 똑 부러졌다. 매사에 그녀들은
당연히 어머니의 견해를 따르는 데 익숙했다.
💥💥이기적이면서 이기적인 줄 모르는 가족들. 가 한가운데서 아빠는 홀로 서 있는 무인도가 된다.

⛱️⛱️3,
시우의 생일날 사라져버린 아빠

정작 주인공인 그녀만이 건성이었다.
이 불안감은 대체 뭐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새날들에 대한뿌듯한 예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눈바람 부는 비탈길을 기우뚱 기우뚱 내려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끈질기게 떠올랐다.
어떻게 된거야, 너희 아빠?? 어머니가 말했고, 올라오시다가 다시 내려가는 걸봤어." 그녀가 대답했다. "선물 사둔 걸 회사에 두고 나왔었나보네."
"그러니까 울. 아빠, 쑥이지!"
💥💥아빠는 존재하지만 눈에 보여서는 안되는 거야. 우리들 그림자 속에 숨어 있어야 해.


⛱️⛱️4

그땐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요즘은 알아. 그 양반이 당신의 꿈을 버리고 치사해져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배우고 굶지 않았다는 거. 여기 오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란히 마루 끝에 앉은 그녀의 눈에 눈물이 어리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가만히 햇빛 속에 앉아 있어다. 내가 그렇듯이 그녀의 마음속에도 아버지가 흐르고 있다는 걸 나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지금 생각하면요, 한 번도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녀
는 말했다. " 쓴맛은 이를테면 어둠이지!"라던 선명우의 말이 생각났다. 그것은 내 아버지의 "치사해, 치사해..."'와 동의어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치사한 굴욕'
과 '쓴맛의 어둠'을 줄기차게 견뎌온 것이었다.
💥💥아버지 꿈은 무엇이었을까.
축제장을 찾아다니는 구경꾼일까, 아니면
할아버지의 염원을 다지는 추억팔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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