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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권 전개
유토피아를 찾아가 보자고 생각한 천봉삼과 원이는 화적떼에게 잡혀 암자에서 척후가 된다. 순간에 탈출도 가능했으나 애기를 잃고 암담한 심정이 된 월이는 애기를 두고 떠나길 거부한다.
⛱️⛱️소금상은 병자를 구완하니
행수는 불문곡직 사내를 들쳐업었다. 부러진 한쪽 다리가 하반신 아래로 축 늘어졌다. 아래쪽 자드락길에서 무명짐과 지게짐을 수습하고 있던 동무들은 시신이나 다름없는 사내를 업고 가파른 기슭을 내려오는 행수의 거동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고샅길 어귀에 똥 본 개 새끼들처럼 우르르 모여들었다
'행수님, 명줄은 붙어 있습니까?
'당장은 붙어 있네만 서둘러 따뜻한 봉노에 안동하지 않으면 당장 저승사자가 업어가겠구만. 추운 날씨에 기한인들 오죽했겠나. 우리가 조금만 늦게 당도했어도 그대로 강시 날 뻔 했네
'이런 변고가 있나.. 적변을 당한 것입니까. 짐승을 만난 것입니까. 떠돌이 왈패들에게 걸려들어 매타작을 당한 것입니까? 어떤
육실할 놈의 소행인가."
어떤 무뢰배나 산적의 소행인지. 짐승을 만난 것인지 알 수 없네
냉큼 조처하지 않으면 이런 혹한에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 없네" "실족을 했다면 자드락길이긴 하나 기근방 길목이 그다지 험하지 않아
매타작을 당했다면. 봇짐 털려던 무뢰배나 산적이었겠지요."
"그런 말할 경황없네.
난감한 일이었다. 명색 신표를 지닌 원상으로 자처하는 행상이라면 노상에서 마주친 행려병자나 실족한 동배간을 .구완하지 않고 지나친 사례는 없었다. 사람에 따라 구급에 인색한 수도 있겠지
만. 그런 사실이 나중에 들통나면, 입소나 접소에 끌려가서 혹독한 징치를 당하는 것이 예로부터 원상들이 지켜온 엄중한 기강이었다
💥💥상로에서 부상당한 궐자는 누군인가?
화적의 일원인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인가? 나중엔 알아지겠지.
⛱️⛱️ 저 놈은 천봉삼이 아니야
그놈은 홍부장의 해물 저자와 접소의 행상들, 해안의 염호들 동정을 소상하게 염탐하려고 찾아온 염탐꾼이 틀림없네. 심지어 흥부장에서 울릉도로 가는 소금 배들의 해로까지 염탐하려 했을 것이야. 그놈이 우리들에 게 보여준 송파 임소의 척문은 진짜 천봉삼을 잡아엎치고 빼앗은 것일 터. 그 칙문을 손에 넣은 뒤 우리의 행적을 찾아 무작정 십이령을 넘다가 낭떠러지 위에서 실족하여 눈밭에 굴러떨어진 것이야. 적소에 산적들의 수효가 궐자의 말대로 팔십여 명이라면 제아무리 완력 드센 놈이라 할지라도 감히 단신으로 다시 적굴로 숨어들어 제 식솔을 구명할 업두가 나겠는가. 올곧은 정신 가진 놈이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우리 상단의 도움을 얻어 식솔을 구명하려 했겠지."
살담배가 타들어가는 곰방대를 들고 귀를 기울이던 곽개천이 말했다.
"성님-... 저는 지난날 포수질했던 경험으로 어렴풋이 눈치채긴했으나. 긴가민가하였습니다. 성님처럼 조리 있게 따져보지는 못했습니다."
"적굴 놈들은 미련한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바로 우리 코앞까지 기어들어서 우리의 동정을 속속들이 엄탐했다네. 양식과 전대를 어떤 물상객주에서 조달하고 어디에 숨겨두고 다니는지.
어떤 염전이나 거간 들과 거래를 트고 지내는지 삼삼이 염탐하고 다녔다네. 내성의 윤기호도 그들과 내통하고 있었네. 지난번 임자와 우리 동무들을 꼬드겨서 단골 숯막으로 가, 그 왈짜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지 않았나. 그것은 허물이 많은 유기호가 그들로부터 협박을 당해 우리 동무들의 행색을 보여달리는 요구에 시달렸던 나머지 저지른 일일세.
💥💥 부상당한 궐자는 제입으로 송파 쇠살쭈였다고 말한다. 오랜 직감으로 소금상들은 궐자가 말한 것을 믿지 않는다.
⛱️⛱️ 천봉삼이 인질이 된 까닭.
"송파에서 떠나왔소"
예."
"성씨는 뉘 댁이오?"
"저기 있는 외간의 남정네는 천봉삼이라 부르고 쇤네는 월이라 합니다."
"그 산채에 인질로 집혀간 것은 언제였소?"
"지난해입니다. 삼남으로 내려가면 살길을 찾겠거니 해서 무작정 발서슴하던 중에 무단히 십이령 고개로 접어들었습니다. 워낙 산중인데다가 밤낮없이 짐승들에 쫓기어 조도로 밀려나서 도무지 동서남
북을 가릴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시단이 되어 화적들과 마주쳤고, 그들은 우리 내외와 아이를 유리결식하는 유민인 줄 알고 무작정 산채로 끌고 갔습니다. 산채의 세력을 불리자는 속셈이었겠지요. 우리 내외는 목숨을 건진 것만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지금껏 연명해은 것이지요."
"산채에 연고가 있었소?"
"연고라니요?"
"연고도 없는 적소에서 한 가솔이 고스란히 살아남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소?"
"쇤네의 남정네가 지니고 있던 신표를 발견하여 송파의 행상인이란 것음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암자를 삭도간(朔道間)삼아 염탐꾼으로 쓴다면 흥부장과 염전이며 십이령 소금 상단들의 사정을 소상하게 알아내어 적지 않은 이득을 얼을 것이란 생각을 가졌기에 부득불 살려둔 것이겠지요."
💥💥송파 쇠살쭈의 신표를 빼앗아 천봉삼으로 행세한 화적떼에게 붙잡혀 천봉삼은 암자에서 운수납승으로 행세를 하면서 척후 역할을 한다.
⛱️⛱️ 천봉삼과 월이가 도망치지 않은 이유.
"슬하에 소생은 두지 않았소?"
그 말에 월이는 고개를 떨구더니. 한동안 뜸들인 다음에야 겨우 말 문을 열었다.
"그동안 산채에서 도망할 말비도 없지는 않있습니다만, 태어나면서부터 병치레로 시난고난하던 피붙이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불쌍한
한 것을 산기슭 진흙 속에 묻어둔 채 우리 내외만 살겠다고 허둥지둥 도망한다는 게 하늘에서 날벼락이라도 떨어질까 차마 못할 짓이었습니다. 도무지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기약 없이 산지에 잡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돌림병으로 잃었소?"
"아닙니다."
"아니면?"
월이는 말문을 닫고 밤하늘로 시선을 둔 채 묵묵부답이었다.
"내가 아낙네에게 못 할말을 했소?"
"지난해 초여름쯤의 일이었습니다. 산채 된비알 남새밭의 김을 맨다 하고 아이의 허리에 끈을 매고 다른 한 품은 나뭇등걸에 매어서 밭뚝에서 혼자 놀도록 놓이둔 채, 김 매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지
요. 멀리 두고 간혹 바라보면 혼자서 웅알이를 하며 잘 놀고 있었는데, 그런데.... 언제부턴가 옹알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놀라서 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보았습니다.
....."
"아뿔싸 허리에 맨 끄니풀이 아이의 목에 감겼구려.?"
💥💥월이의 잘못으로 애기가 죽었다는 상실감과 애기가 묻힌 황량하고 외로운 무덤을 두고 떠날갈 수 없는 모정이 천봉삼이 달아나지 않은 이유이다.
⛱️⛱️무릉도원을 찾아가자.-1
오동나무골 생달 마을이라면 곽개천이 지난날 포수 생활할 적에 발견한 약수터가 시오리 상거에 있는 곳이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게다가 지난번 화적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복꾼을 옥돌봉 기슭 노루막이에 묻어준 기억도 없지 않았다.
"그곳에 약수터가 있지요, 아마?"
"잘알고 계십니다그려. 우리는 약수터와 시오리 정도 떨어진 골짜기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서 살고 있습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내려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가근방에서는 그만한 길지가 없겠다
신어 골짜기에 떡엄떡엄 토담집을 짓고 접소로 쓰기도 하고 보행객주도 열어 그럴싸한 저잣거리를 찾아 헤매는 행상들이나 고단한 길손들이 쉬어가도록 주선하고 있습니다. 물도 귀하지 않고, 찬바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통팔달이어서 내왕 행보가 앉아서 떡 먹기보다 손쉽지요. 강원도의 영월과 태백. 울진의 흥부장, 충청도의 단양과 영주, 경상도의 내성과 안동의 경계를 멀어야 백오십여리 내외 행보에서 드나들 수 있지요. 적어도 사방 이백여 리에 상거한 고장에서 나는 토산품이나 유기 같은 문화의 시세를 손금 들여나보듯 환하게 꿰뚫어볼 수 있어 길미를 챙기기에도 가근방에서는 오동나무골 생달만한 곳이 없지요. 그래서 시생들의 형세가 기운 적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모두 가솔을 거느리고 있겠군요?"
"정착한 원상들이 열 안짝으로, 가솔들을 거느린 동배간도 있지만 대부분 엄지머리로 지낸답니다."
"언사가 매우 순박하십니다."
"정착하고 난 뒤 안정을 찾은 덕분이겠지요."
"오동나무골 얘기는 소문을 들어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만, 이랑
게 대면하기는 처음입니다. 거래하는 물목들은 무엇이오?"
"곡물과 약초와 피륙입니다."
시생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지요?"
이틀 전에 이곳 어물 도가 포주인을 회술레 돌리는 것을 보았고,.
노형께서 동배간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소금 도가 포주인을 훼가출송시킨 것은 적당의 소굴을 섬멸하면서 얻은 결과입니다.
💥💥천봉삼은 눈여겨 새겨둔다.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를.
⛱️⛱️무릉도원을 찾아가자.-2
바로 내성에서 서벽을 지나 옥돌봉 아래의 박달령을 넘어 오래전 보부상들이 발견하였다는 오동나무골 약수터가 지척인 생달에 이르는 상로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생달을 오동나무골로 잘못 부르기도 하는 것은 서로의 상거가 오리정밖에 되지 않는 까닭도 있었는데. 서벽은 물야를 거처 주실내나 예비재를 거쳤고, 영주(榮州)는 삽재를 거치거나 입석에서 시냇물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그 상로는 사기점 사람들이 간혹 이용하는 장삿길일 뿐 내왕이 빈
번한 곳은 아니었다. 생달 마을이나 그곳에서 오리정인 오동나무골 약수터에서는 성황당이 있는 박달령만 넘으면 곧바로 영월 땅이란 얘기만 들였지, 천봉삼에겐 발새 익은 길이 아니었다. 아니래도 반수 권재만으로부터 말래에서 눈 빠지게 바라고 있는 하회가 떨어지면, 곧장 생달 마을을 얼추나마 둘러보고 말래 감소로 돌아갈 참이었다.
곽개천과 작반한 것은 그와 같은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달령 오른쪽으로는 옥돌봉과 구봉산 높은 뫼가 버티고 있고. 왼쪽 멀리로는 늦은 목이를 껴안은 선달산이 버티고 있어 영월과 태백으로 오가는
등짐장수들은 필경 박달령을 넘는 지름길로 내왕해야만 일정을 줄일 수 있었다.
천봉삼이 그런 청을 하였을 때. 행중에서 지름길 찾는 일에 달통한 곽개천이 흔쾌히 승낙하였다. 길세만은 내성에 두고 가려 하였으나, 일행과 떨어져 있다가 큰 봉변을 당했던 일이 바로 엇그제 같았던 길세만이 거의 우는 얼굴로 두 사람의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내성에서 생달까지는 불과 40리 노정이라. 발바닥에 날개를 달았다는 장정들 걸음으로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새벽에 발행하여 저녁 먹기전에 당도한 생달 마을에는 예견했던 것과는 달리. 유숙할 길손을 받아주는 숫막이라곤 허리는 매화나무 등걸처럼 휘고 얼굴에 저승꽃이 핀 노파가 경영하는 한 집밖에 없었다. 생달이 그처럼 피폐하게 된 연유는 강원도 영월 태백으로 드나들던 부상들이 박달재를 넘다가 고개치에서 출몰하는 도적떼에게 크게 봉변을 당한 뒤로, 내성에서 옥돌봉 기슭을 지나 구룡산 아래의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로 가는 길목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사통팔달의 요지를 찾는 게 쉬운가? 이미 그런 길은 소문이 나 있고, 또 다른 길은 폐허가 싶다싶이 한 길 들 밖엔 없었다.
⛱️⛱️ 보내면 또 오나 보다.
바쁜 중에 마침 천봉삼을 발견한 월이가 박우물로 달려가서 옹가지에 시원한 물을 떠다 일행들에게 대접하였다. 냉수 한 바가지를 벌컥벌컥 들이견 천봉삼이 월이에게 물었다.
"임자 ... 월천댁이 울바자 밑에서 무얼 달이나?"
"감꼭지와 익모초인 듯하오."
"그렇다면 자궁을 도울 상약임이 분명한데.. 구월이가 배태하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팔의 나이에 자궁이 그토록 약하다는 것인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대꾸하는 말버슴새가 야무지던 월이의 대답이 듣기에 따라서는 무언가 은휘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서 천봉삼이 돌아서다 말고 다잡아 물었다.
" 내가 남의 일에 공연히 잘난 체하고 헤집고 들었나?"
"아니오."
아니라니?"
"사실 약탕기에 끓고 있는 상약이 자궁을 반겨주는 상약인 것은 분명한데, 구월이가 먹을 약은 아니오."
"그래, 그럼 누가 먹을 약이오?"
'너무 헤집고 들지 마세요. 실은 제가 먹을 약을 달이고 있소."
아니...? 임자가 배태를 했더란 말이오?"
천봉삼의 떨리는 목소리에 월이가 대답은 않고 돌아서며 얼굴만 붉혔다."
💥💥애기를 떠나 보내고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 하지만 삶의 자연스런 이치인지 또 다른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 해피엔딩 천봉삼
천봉삼과 곽개천 그리고 박원산 세 사람은 중두리를 지고 곧장 ㅂ생달과 애전으로 발행하였다. 나머지 행중은 흥부장으로 발행하여 포주인 조기출이 지키고 있는 어불 도가에서 소금과 미역을 떼어 다시 십이령길에 올랐다. 그리고 보름 뒤에 말래 접소 근처에 흩어져 기거하던 농투성이들과 아녀자들도 생달 마을로 떠났다.
밤이면 비루먹은 개 짓는 소리만 공허하였던 생달 마을에 다시 인총이 붐비기 시작하여 생기가 돌고, 구룡산 도래기재를 넘던 영월 태백 부상들도 박달령 상로길로 돌아왔다. 경상도 내성과 안동의 경계
는 멀어야 50여 리 내외였고. 충청도 단양과의 경계는 60여 리 상거였다. 박달령만 넘으면 영월과 태백이 코앞이었고, 울진으로 곧장 가자면 십이령 념어 150리. 그야말로 사통팔달의 길지에 상단들은 춘수전과 추수전 때마다 여축없이 각출하여 토지를 사들였다. 피폐하였던 마을에 인총이 늘어나면서 각성바지 유민이 모여들어 마음은 금세 30여 가호로 늘어났다. 밭에는 옥수수가 길길이 자라 지붕을 덮을 지경이었고, 풀못간이 들어서고 마방 딸린 숫막이 다섯이나 들어섰다. 마당에는 대낮에도 노루가 뛰어들고, 손에는 꿩이 저절로 날아들었다. 천봉삼 내외는 생달 마을 한가운데서 객주를 열었고, 달덩이
같은 아들을 얻었다. 천봉삼은 생달 마을의 촌장이면서 울진 흥부장, 내성장과 영월 태백의 장시의 거래를 주름잡는 객주가 되었다. 적굴
에 살던 농투성이들이 각자 집을 가지고 애전과 생달 일대의 드넓은 묵정밭을 꿀이 흐르는 문전옥답으로 바꾸는 데는 불과 2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 천봉삼의 해피엔딩은 작가의 작위적인 요소가 깃들긴 하였으나, 고난의 천봉삼이 겪은 행로에 빗대어 볼 것 같으면 충분하게 누려도 될 것이란 생각이 난다.
우리들 백성들의 속살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객주는 구수한 사투리와 육덕진 신음소리까지도 예사롭지 않게 가슴을 울리는 글밭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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