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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최명희 대하소설 9권 "혼불" 2025년 129권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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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권 전개
강호는 도환스님과 함께 법련사 사천왕상을 참배한다. 천년을 넘는 세월을 지킨 사천왕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아들인다. 한편 강실은 오지 않는 항아장수만 기다린다.

⛱️⛱️ 사천왕 이야기 1

"사천왕은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는 천신(天神)이지요. 우리나라 절에서는 보통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출입구 첫번째 문인 천왕문에
사천왕을 봉안하여 모시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강호가 신중한 낯빛으로 고개를 주역인다.
"다시 보니, 쌍둥이가 아니라, 각 위마다 생김새 복장이 다 다른데요? 들고 있는 것도."

도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모양과 복장, 지물(持物)뿐만 아니라 동.남 .서 .북 관장하는 방위에 따라서 임무도 다르고, 이름도 각각 다르답니다."

🧘‍♂️수미산 중턱의 동쪽, 황금파에 있는 천궁에 살면서 세계의 동쪽나라를 돌보고 수호하는 천신의 이름은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이다. 그는 치국안민의 신으로서 십육 선신 중의
한 분으로 세계의 동방국 백성들이 부처님 법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골고투 보살피며, 악한 자에게는 별을 주고 선한 자에게는 상을 주어 교화하고, 국토를 굳건히 지키는 천왕으로
그는 손에 푸른 칼을 쥐고 있다.
도환이 미소를 짓는다.
🧘‍♂️수미산의 남쪽에 살면서, 언제나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살피고 남방국을 수호하는 천왕은 남방증장천왕(南方增ㅈ長天王) 입니다. 달리
증광천왕이라고도 하는데요. 더욱 길다, 더욱 넓다는 글자가 나타내는 바 그대로, 중생의 삶에 이로움을 보다 더 많이 가져다주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오른손으로 싯누런 용을 틀어지어 꼼짝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천년이 넘도록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생활 속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문화라고 할까. 후은 신상에 대해서. 이토록 무지한 수가 있다니.놀라지 않을 수가 없군요.
도환이 합장한다.

"서방천왕은 어떤 분이십니까?"
"존명은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이고, 수미산 중턱 서쪽에 살면서, 세상의 서속 나라를 지키는 천신이지요. 광목천왕은 이름에 나타난 그대로 넓을 광에 눈 목, 그러니까 넓고도 큰 눈을 가지고 있는지라. 이 세상에 못 보는 것이 없답니다. 이 천왕은 여러 가지 색의 눈으로, 인간이 행하는 일의 뿌리, 근(根)을 보는 신통력이 있어서.
사바세계의 못중생을 빠짐없이 보살피며, 서방의 국토를 지킨니다:
서방광목천왕은 오른손으로 꼭대기에 삼지창이 달린 깃대 당(幢)을 힘차게 움켜잡은 채, 왼손에는 오층 보탑을 받쳐들고 있었다.
🧘‍♂️"이제 끝으로, 북방천왕이 계시지요. 수미산 중턱의 북쪽에 살면서 세계의 북방 나라를 수호하고, 세상의 재(財) . 복(福).부(富).귀(貴)를 맡아 관장하며, 부처님의 법을 지키는 천신의 이름은 '북방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입니다.
즉, 많이 듣고, 널리 듣고, 두루 듣는 천왕이라."는 뜻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천왕이 지닌 지물은 그 천왕의 특색을 나타내지만, 삼국시대이전과 또는 임진왜란 전 후로 지물과 천왕이 일관되지는 않는다. 다문천왕은 비파를 가지고 있지만, 혹은 동쪽의 지국천왕이 지닌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사천왕 이야기2

만발한 것은 친상이어서 당연하고도 동정이 갑니다만, 왜 곳곳마다 일곱 집의 그물이 있는 것일까요? 그물이라면 얼른 거미줄이
떠오르고 속박의 느낌이 드는데요."
아하.
도환이 탄성의 눈빛으로 강호를 바라본다.
"그토록 섬세한 감각을 지니신 분인 것을 다시 알겠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어쩐지."
면구스러운 듯 강호는 얼굴을 붉힌다.

"사천왕의 윗하늘인 제석천은 수미산 정상 한가운데 궁전에서 사천왕을 비롯한 서른두 하늘, 즉 삼십이천을 통솔하지요. 그는 불법을 굳건히 옹호할 뿐 아니라 부처님께 귀의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데, 못된 아수라의 군대와 싸위 정벌하기도 합니다. 이때 제석천 의중요한 무기가 곧 인다라망(因陀羅網)'이라고 하는 그물이랍니
다. 이 그물은 세간에 없히고 설킨 인과를 상정하는 것인데, 사천왕은 제석천의 휘하 권속이니, 제석천이 전쟁을 할 때 함께 싸우자면, 늘 이 무기를 몇 겹씩 준비해서 만반의 손질을 해 놓아야 하는 것이
지요."
"아, 그런데. 스님. 각 존위의 방위 서신 위치가
동.서.남 .북이 아니고, 동 :남. 서.북으로 되어 있습니까?'
"예. 이 세상의 방위를 둥그렇게 본 것입니다. 동.서.남.북이 방위를 서로 반대 개념, 즉 대칭으로 짚은 것이라면 동.남 .서.북은
원으로 짚은 것이지요.그러니까 동.남 .서.북으로 방위를 보면 해가 뜬다. 해가 진다, 춥다, 덥다, 밝다, 어둡다. 이런 식으로 분류하고 나누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동.남.서.북 방위는 해뜨는 동쪽에서 출발하여 해가 점점 길고 밝아지는 남쪽으로 이동하고, 다음은 해가 지는 서쪽으로 갑니다. .그러고 나면 밤이 오지요. 북방입니다.
그리고 북방은 동방과 나란히 있지요. 어둠이 고요히 우주와 만물을 품어 주면 이윽고 해뜨는 아침이 옵니다. 그래서 동.남.서.북으로 이동하는 것은 우주의 자연이 주는 생체 방위의 평화와 순리가 있지
요. 두 우리의 몸에 맞는 방위 감각이라는 것입니다. 방위에는. .모든 것이 옆에 있고 동등하며 끝없이 순환하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동서남북이라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런 줄 알았다. 일원상을 그리듯 원만하게 가는 이치가 동남서북에 묻혀있었구나.

⛱️⛱️사천왕 이야기 3

'저 오른손에 잡고 있는 깃대는 당(幢)이지요?"
주칠한 창대 끝에 나팔꽃이나 초롱꽃을 거꾸로 씌워 놓은 형국의 깃발이 미풍에 나부끼어 흔들리는 것을 보며, 강호가 복습으로 물었다.
"맞습니다."
"헌데. 실은 이름만 알고, 내용은 잘..."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이것은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는 장엄 불구(佛具)로서, 중생을 지휘하고 사악한 마군(魔軍)을 굴복 시키는 깃발이지요. 옛날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군사 조직의 기본 단위로 이 '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왕자가 전쟁에 출정하면서 그 위용을 나타내고 점령지를 널리 과시하여 알리기 위해, 군기(軍旗)로 쓴 것이 당이랍니다. 그런 연고로 볼 때,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불국 영토를 상징하는 징표, 혹은 선언으로 이 당을 세웠다고 봐야겠지요."

"얼핏 투구 같기도 합니다. 깃발 모양이."
범련사 당의 위꼭지는 세 갈래가 뽀족하게 날카로운 은빛 삼지창이었다. 그리고 마치 꽃봉지를 사선으로 자른 것 같은 깃발의 겉자람은 다홍색이고 속빛은 연두가 선연하였다. 엉뚱하게 새각시 치마폭처럼 보이기도 하는 당의 봉굿하고 풍요로운 깃발은 주름이 흐드러져, 정토에서 부는 바람을 받으며 물결인 양 쏴아 한쪽으로 쏠리어 흐른다. 그런데 이것을 흙으로 빛었다니.

당은 사천왕보다도 키가 커 단청 올린 천왕문 천장을 찌르려 한다.
서방광목천왕이 왼손 손바닥을 공손히 펴서 다소곳이 받든 것은 보탑이었다.

그는 푸른 난간에 심홍색 몸체를 한 오층 보탑을 하늘 높이 치켜올려, 천왕이 지키는 이곳이 신령스러운 땅인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었다. 보탑의 꼭대기에는 딸기같이 빨갛게 앙징스러운 연꽃이
봉오리로 맞혀 있어서, 그만 저절로 미소가 번지게 하였다.
이 모든 사천왕은 한결같이, 부드럽고 하늘하늘하여 허공에 무지개 그림자처럼 떠 있는 한 줄기 띠옷인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무시무시한 속에 그리운 듯 울어재칠 부드러움을 포용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천왕 이야기4

"극락의 꽃밭이 저러하랴."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하는 보관의 극미(極美)장엄이여.
그것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 남루하고 서러운 사바 이승의 멍든 폐장에 사무친 울음이 숨죽여 토해 낸 절규였다.
어느 만한 세상이면, 먹피를 토해 꽃을 피우라.
내 기어이 그 아름다운 곳에 가 닿고야 말리라....."
고, 눈먼 손끝이 더듬어 더듬어 꽃잎 하나 열고, 시리게 하이얀 깃털 학 한 마리 꽃발 위로 날리며, 비천(飛天)의 선녀 날개옷 아득히 풀어서 구름으로 띄워 넨 극락의 하늘, 저 그리운 정토(淨土).

천가지 변화로 만 가지 조화들 이루는 이 보관을 사천왕의 머리에 바친 손에서는 종내 진액이 묻어났으리라. 윤회 중생의 생사 고리에 묶인 손이 유정 무정의 번뇌로 으깨져 짓찧인 채, 송진같이 번지는 눈물 대신 진액을 바르며 색칠하는 정토의 꽃밭.
이승의 사바해(娑婆海 )가 고달프고 서러우면 서러울수록, 눈물의 파도에 매 맞으며 목메이게 사모하던 열반의 언덕, 그 언덕의 물마루 가장 높은 말랭이 사천왕의 머리 위에다, 이름 없는 장인으로 태
어났던 세월의 한 중생은. 그리운 세상을 아로새겨 저처럼 보관에다 한 소쿠리 담아 놓고는, 꽃밭 너머, 언덕을 넘어, 이제는 꿈꾸던 극락 정토로 홀홀이 떠나갔을까.

한 가닥 연기처럼 이내처럼 허공에 떠 나부끼는 무봉이(無縫衣)를 밟고서 사천왕의 등뒤로 사라진 장인의 발자욱이 금방이라도 느껴질 것만 같아서, 강호는 저도 모르게 다문천왕 앞으로 한 걸음을
당긴다.
사천왕은 누구의 신부일까요."
신부.. 라고요?"
저렇게 쓸어안아 울고 싶도록 곱고도 정성스럽고 난만하여 풍요롭고 신비스러운 꽃관을 머리에 쓰고 계시니 말입니다.
💥💥보관, 보살의 머리를 장식하는 온갖 보패들, 아니 그 아름다움 새색시의 혼례식처럼 황홀하지 않는가.

⛱️⛱️ 죄지은 예쁜 여인이 강실인 듯

"그렇다면 스님께서 이를 손수 빚고 채색하여 그리셨습니까?"
라고는 차마 묻지 못한다.
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토록 고운 여인이 무슨 죄를 지었으리까."
....

"아마도 음녀(淫女)일 것입니다."

강호는 소스라치는 눈빛으로 도환을 번쩍 쳐다본다.
"여인이 죄 지어 벌을 받는다면 음행 아니겠습니까?"
"설마. 저대도록 고운 이...."
"저만큼 고우면 죄 안 지을 수 없을 겁니다."
강호도 도환도 모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여인을 내려다본다.
"저 여인이 속눈섭 하나 꿈지락 움직이지 않고도 벌써 이 생사람 두 남자를 한눈에 사로잡았는데, 어찌 그 동안 죄를 짓지 않았겠습니까."
도환이 웃자. 강호도 그만 실소를 하고 만다.
'계가 돌아다녀 본 바로는, 우리나라 조선조 후기의 사천왕상 모신 천왕문에 여인이 있는 곳은 딱 두 군데.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와 전라남도 고흥 능가사뿐이었습니다."
선운사에도?"
"그곳의 여인은 또 다른 모습이지요."
"아하."  "이 다음에, 동백꽃 필 때 꼭 한번 가 보십시요."
잊을 수 없으실 겁니다.
도환은 훈자서만 짐작하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 미소는 강호에게 선운사 사천왕의 발 아래 짓놓인 여인 하나를 점등시킨다.
그리고는, 다시 침묵한다.
그러다가 이윽고 말을 덧붙인다.

'이렇게 사천왕 발밑에 악귀로 사람이 등장한 것은, 조선조 숙종임금 때부터랍니다. 임진왜란이 지나가고 인간살이가 안정되면서
풍속이 문란해지자, 이런 형상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강호의 귀에 그런 말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뜻밖에도, 이 조그만 여인, 음녀의 조형을 보면서 강호는 강실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닮은 데도 없는데, 왜 저렇게 닮았을까.

속으로 머리를 혼들었지만, 강실이가 어느곁에 이 사천왕의 발아래 무릎 품고 않은 여인의 몸을 빌어 그안에 스며들면서, 꼭 저모양을 하고 앉는 것이 보여, ,강호는, 내가 왜 이러는가, 당치 않은 연
상에 당황한다.
💥💥죄 많은 여인, 너무나 아름다워 죄와는 담을 쌓았을 것 같은 여인.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왜 강실일까?

⛱️⛱️ 죄에도 아름다움이 있는가

'죄의 날개 찬란함이 가릉빈가 못지않단 말씀인가요.?"
못지않은 것이 아니라, 똑같아서 구분을 할수 없을걸요?"
오히려 더 능가하거나."
어찌하여 죄가 그토록 예쁘단 말입니까.

그 속말을 짚어 들은 도환이 천왕문 바닥에 비명도 없이 강그라지는 가릉빈가의 요려난만한 날개를 쏘아본다.

"죄니까 저렇게 예쁘지요. 오죽하면 제 몸과 생이 산산조각 부서져 진창 나락으로 떨어지는 파멸도 겁나지 않게, 사람을 사로잡아 매혹시키겠습니까? 달고 아름다워 한번 홀리면 결코 헤어나지 못하
리만큼 강렬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그것은 사문의 말씀이고요."
그 말에 스님 도환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럼 조도전 대학생 말씀은 무엇인데요?"
장난기 머금고 이윽히 들여다보듯 묻는 도환의 시선을, 두 손으로 면구스레 가리워 막는 시늉을 하며, 강호가 얼굴을 밝힌다.
나는 죄의 본질을 물은 것이 아니고 짓찧여 밟히고 너덜너덜 멍든 죄를 저토록이나 곱게, 고움게, 깃털의 비늘 켜켜마다 눈물 새겨 저며 넣은 무지개 찬연히 날개치도록 그려낸, 어느 중생 말 못할 장인의 가슴 속에 품은 죄의 사무친 빛, 그 마음이 어려서 알고 싶은 것입니다.
💥💥너무 아름다우면 중생의 그 한없는 생각의 바다에 한점 나쁜 생각이 없으랴.
오히려 너무나 예뻐서 나투는 죄일진제 누구에게 그 죄를 물으리.


⛱️⛱️ 오지 않는 항아장수

"참, 작은아씨, 언제 할머님 복 벗으시요에?"
지난 사월 초파일, 마당에서 연등을 바라보던 강실이를 따라 들어온 옹구네가 뜽금없이 그것을 물었다.
강실이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열흘이 지난 사월 오늘, 열여드렛날.
옹구네는 아직도 기차표를 구해 오지 않았고, 강실이는 홀로 남의 집 빈방에서 흐느껴 울며 체읍으로 절하고 청암부인의 복을 벗었다.
눅눅해진 소복을 벗으며, 강실이는 고꾸라져 목줄이 아프게 울었다.

나는 울 자격도 없다.

그것이 복받쳐 그네는 벗어 놓은 소분 위로 어푸러진 채, 옷자락을 붙움키며 꺼억, 꺽 마지막 제 몸에 남은 눈물과 진액을 다 토해
내 버리려는 것처럼 몸부림쳤다.

나는 그리워할 자격도없다.
이 세상에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처참해도 슬플 때 울 자격이 있는 사람.
못 보아도 보고플 때 그리워할 자격이 있는 사람.
나는 이미 그자격을 다 잃어버린 사람이다.
이제는 할머님의 탈복도 하였으니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어찌해서 기차표를 구하기는 이렇게 어려우며, 남도에 간 황아장수는 어이하여 이다지도 못 오고 있는가.
💥💥강실이는 부모의 가슴이 어그러지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어쩌든지 떠나야 한다. 하지만 온다는 항아장사는 기별이 없구나.



⛱️⛱️오류골댁의 밥그릇

"맥질 잘 해 놓은 부뚜막 얼굴은 열일곱 살 아가씨 살결보다 희고 부드럽다."
는 말은 사실이었다.
맥질은 부뚜막뿐 아니라 바람벽에도 하였다. 그 결 고운 흙을 분처럼 바르고 보얗게 피어나는 벽이나 부뚜막은 사람 사는 살림살이의 알뜰한 재미와 공력을 함께 느끼게 하였다
그 중에도 티 한 점 묻지 않게 하얀 부뚜막에 새까만 무쇠솥이 기름이 흐르도록 매끄러운 자태로 걸려 있는 부엌은 삼엄하도록 정결하고 아름다웠다. 거기에 불을 때고 밥을 할 때 황홀한 너울을 일으
키며 타는 불꽃, 그 흰 빛과 검은색과 붉은 불빛의 조화로움은 자지러지는 교태마저 느끼게 하였다.

오류골댁은 조왕신 모신 부뚜막에, 그런 일은 별로 없었지만 기응이 출타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은 끼니 때, 겨울이면 새노란 놋주발에, 여름이면 흰 사기 밥그릇에 기응의 밥을 꼭 떠 놓았다. 오류골댁이 혼인하여 기용의 아내 된 후, 그네는 단 한번도 밥 때에 대주(大주)인 남편의 밥그릇을 비워 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아낙의 간절한 정성이고 기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부뚜막 조왕신 그늘 밑에 강실이의 합(盒)에다
밥을 담아 바쳐 놓는다. 강실이를 그렇게 담아 놓는 것이다.

내 새끼 어디 가도 밥 굵지 말고, 언제라도 네 밥그릇 예 있으니, 돌아와, 돌아와서 네 밥 먹어라.

부뚜막에 행주질할 때 눈물이 떨어져 어룽어룽 강실이의 밥그릇은 눈물에 잠기지만, 그래도 내 새끼 신체가 담긴 밥그릇이 조금은 마음을 달래어 위로했으나, 이제 강실의 밥그릇은 뚜껑이 뒤집혀 나뒹굴었다.
💥💥밥그릇을 두고 지아비의 하루를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픈 가슴 부여메고 떠나 간 딸의 밥그릇을 두고두고 조왕신께 빌어야하니, 제발 굶지는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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