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비 제르맹
SYLVIE GERMAIN
실비 제르맹은 1954년 프랑스 중서부의 도시 샤토루에서 태어났다. 부지사를 지내기도 한 공무원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의 여러 소도시를 옮겨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70년대 파리 낭테르 대학에서 철학자 에마뉘엘레 비나스를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고, 그의 지도 아래 석사 및 박사 논문을 썼다. 논문의 주제는 기독교 신비주의에서의 고행, 그리고 인간의 얼굴 및 악과 고통에 대한 성찰 이었다. "페르소나주"를 비롯해 "밤의 책" 등의 대표작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가 특유의 번뜩이는 신비주의 직관 및 영적 언어는 이런 연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
다. 그노시스풍의 어떤 무례한 형상들, 불꽃처럼 번쩍거리는 이미지들, 고통스러운 시각적 환영들을 소환하며 전체를 총괄하는, 저 깊은 진실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읍소 같은 것들이 그녀의 문학 언어에는 충만하다. 1981년 부터 몇몇 단편소설을 써오다가, 1985년 "밤의 책"을 발표하며 여섯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듬해 1986년 체코 프라하로 떠나 정착하며 "호박색 밤" "분노의 날들"을 발표했고, 체류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체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기 시작해 "프 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이망시테" "소금 조 각"을 발표했다.
옮긴이 이창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응용언 어학 과정을 이수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이 스마일 카다레와 실비 제르맹의 소설들을 비롯해,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 "흰옷을 입은 여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책소개
소금 조각의 책은 내면의 혼란을 찾아가는 여정을 표현한 소설이다.
1.혼란한 나를 바로 잡는 시간 여행
💥💥팔락슈 팔락슈.... 기차는 비를 맞으며 어둠 속을 달 쪘다. 끝이 없는 여행이었다. 아무 진척도 없이 이어지는 정체된 삶과도 같았다. 11년 전 그가 고국을 떠나게 만들 었던 똑같은 구토감이 일었다. 영웅적이지도 낭만적이지 도 않은 추방. 루드빅이 어느 날 이주를 결심한 건 일종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염려 탓이었다. 긴 잠복기를 거쳐 발병 하는 병처럼, 오랫동안 막연하게 마음속에서 끓고 있던 계 획이 난데없이 절박한 무언가로 화하고 만 것이다. 방아쇠 가 당겨진 건 어느 따스한 가을 오후 마리안스케 라즈네 에서였다. 루드빅은 온천 치료를 받고 있던 한 친지를 방 문하러 그곳에 들른 참이었다
💥💥가시적 세계의 사면에서 콜라르가 펼쳐놓은 미로 속을 그가 아직 탐색하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에바였다. 그녀는 삼촌이 지난주에 또 한 차례 발작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몸이 몹시 쇠약해지셨어요. 음식을 들 기력도 생각도 없고, 숨쉬기도 어려워졌고요.
💥💥소금 장미예요. 젊은이가 활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꽃을 피우는데 여러 주 걸렸답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아,네,네......" 루드빅은 귀를 긁적이며 동의했다. 남자는품 안에서 소금 장미를 꺼내루드빅의 눈앞에 서 천천히 돌렸다.
"뼈대는 철사예요. 제가 그걸 실로 감아서 소금물을 가 득 채운 냄비 속에 모두 담갔죠 하나하나 순서대로 했어요.화관을 먼저 담그고 그다음엔 줄기, 하는 식으로요.아 름답죠?"
👉"수분이 증발하며 탄생한 장미여서 거센 빗줄기엔 죽고 말 겁니다. 꽃들은 폭력을 좋아하지 않거든요.제 장미는 느리게 탄생했고 인내 속에서 꽃을 피웠어요.
(폭우 속에 루드빅의 우산속으로 들어 온 청년)
"아. 그다음엔...특별한 일은 전혀 없었지. 거북한 느낌이나 괴로은 생각은 시간이 곧 해결해주었어. 일상의 문제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거든, 사소한 골칫거리들을 비롯해 좋은 일과 나쁜 일, 일과 의무,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진부한 삶에 교묘히 끌어들이는 가짜 고민거리들 말이야.. 그런데 왜 이 모든 얘기를 저한테 하는 거죠?" 왜냐고?" 가판점 주인이 무슨 대답을 시도해 보려는 사람처럼 양손을 벌리며 말했다. "어쩌면 권태를 몰아내기 위해선지도 모르지. 권태보다 나쁜 건 없으니까. 그건 아무렇지도 않은 낮짝으로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우리를 무력화시키고, 타인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만사에 시큰둥해지도록 만들거든. 녹이 스는 것과도 같은 이치야. 음흉하고도 탐욕스럽게 조금씩 우리의 지성과 마음과 정신을 갉아먹고 우리의 기억을 훼손시킨단 말씀이야.
... 그렇다면 우리 눈물이 머금은 소금 외에 어떤 다른 소금을 첨가할 수 있나요? 소금은 정화 작용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갈증을 돋우지요. 그런데 인간과 하느님, 둘 중 누가 누구를 더 갈망하나요? 상대의 갈망을 누가 더 필요로 할까요? 모르는 일이죠!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죽음의 순간에 '목이 마르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가 사람들의 눈물을 모조리 마신 데다 하느님의 눈물까지 맛보았기 때문이에요. 그 두 눈물이 만 나는 곳, 두 갈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는 죽었어요."
👉여자는 양동이를 메트로놈처럼 흔들면서 느리고 당당한 걸음으로 염전의 일꾼이 갈퀴를 밀듯 대걸레를 밀며 말했다.
기차가 역으로 진입하며 여행도 끝나가고 있었다. 아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작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루드빅은 그의 그림자가 사라진 차창에서 몸을 뗐다.창유리에 맺힌물방울들이가는선을그으며 천천히 흘러내렸다. 루드빅이 손으로 유리창을 훔치자 물방울에 손가락이 젖었다.그손을 입술에 갖다 대니 입안에 소금 이살짝타올랐다. 그는기차에서 내렸다. 루드빅, 이것이 그의 이름이었던가? 그와이마를맞대 고있었던 그 비물질적인 얼굴은 그를 그렇게불렀지만 그는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알수없었다.
2 신비함을 더하는 시적언어
꿈은 네 어깨에서 떨어지는 화려한 비단 옷자락이다. 꿈은 한 그루 나무며 찰나의 한 광채, 어떤 목소리다; 네 안에서 시작하고 마무리되는 어떤 느낌은 꿈이며 ;네 눈을 들여다보는 한 마리 동물은 꿈이고;녀를 향유하는 천사는 꿈이다. 꿈은 네 느낌 속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단어다. 네 머리칼에 달라붙는 꽃잎처럼:혼란에 빠져 반짝이는 나른한 모습 그저 양손을 들어 올리기만 해도 꿈은 여전히 오나니 공처럼 손안에 떨어진다;
모두가, 거의 모두가, 꿈을 꾼다.
그런데 네가, 그 모두를 젊어진다.
👉브룸은 루드빅의 스승이다.
병마에 시달리며 있는 브룸의 모습을 생각하며.
-사물의 질료, 흐르는 공기, 시간의 직조와 몹시도 부드럽고 모호하게 결합된 꿈의 신비가 섬광과 떨림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그 모두가 브룸 안에 가득 내재되어 있었다.
👉라디슬라프 살론의조각상을 마주한 그는 최근에 읽은 "다섯 번째우물" 챕터의 시작부분에 생각이 미쳤다.
다섯번째우물에 깊은바다가있고;
그 깊은 곳에 보석들이 박혀 있어,
헤엄칠 수 있는자들은 거기서 진주를채취했다.
급류의 반드레한 자갈 같기도
먼 나라의 돌과 흙덩이를 닮기도 한 보석들,
하지만 세상 끝까지 빛을 전하는 섬광처럼 반짝이는 보석들이다.
👉마하랄과 그의 팔에 매달린 어린 물의 요정은 그렇게 얼어붙은 깊은 바다에서 온 자들이었다. 그는 급류가 날라 암석이었고, 그녀는 그 암석에 감긴 수초였다.
거친 주름투성이 돌덩이인 그는 지식을 길어오고 지 혜를 연마한 세월의 밑바닥에서 빛을 발했고, 그의 몸에 감기는 여린 주기인 그녀는 잠을 길어오고 광기를 연마한 시간의 밑바닥에서 빛을 발했다.
연이어 지상에 무수한 흰 부족들이 나타났는데 사람들마다 손에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도중에 발명한 언어를
나는 그들의 입을 통해 배웠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행렬이 지나가기에 난 거기서 내 몸을 찾아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그들
내가 아닌 그들이 나 자신의 조각들을 하나씩 가져왔다
탑을 세우듯 조금씩 나를 쌓아 올렸다
민중이 쌓이며 나 자신이 나타났다
그 모든 몸들과 인간사가 형성한 나 (....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말들, 과도한 꿈과 현실이 뒤섞여 터질 듯한 말들이 가시적인 세계를 침범해 들어왔다. "행렬" 속을 지나가는 이 흰 부족 속에서 거인 하나가 튀어나와 공간을 점령하며 그 김탄을 자아냈다.
💥💥💥나가며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생각해 보는 시간들이 있다.
가식의 세계에서 나는 무엇으로 둘러 쌓여 있을까?
온통 벽 뿐인 곳에서 나 홀로 빛이 되어 나아갈 수 있을까? 빛이 빛이 빛과 더불어 황홀한 춤사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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