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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반에 반의 반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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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작가는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엄마도 아시 다시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산문집 쓰고 달콤한 직업, 돈키호테의 식탁이 있다. 신동엽창작상,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들어가며
천운영 작가의 소설집 "반에 반의 반"은 가족과 주변인의 소설이다. 소설은 맥락을 이은 것이기도, 각각의 개성을 그대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다.
대체적인 윤곽은 가족이란 큰 틀을 벗어나고 있질 않다.

1, 우리는 우리의 편이 되어.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무엇이든 되어야 했다. 무엇이든 될 것이었다. 그게 우리의 너였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는, 무언가 되지 못할까 두려워 하며 무언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 지금의 네 나이와 같았다. 그래서 너는 무용을 배웠을까? 피아노가 아니라 그림에서 소질을 발견했을까? 너의 그 기다란 손가락은, 스물 몇 해 전 우리를 꿈꾸게 만들었던 너의 몸은 여전히 길고 어여쁠까? 네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다. 네 엄마와 주고 받는 안부와 인사 속에서, 너는 기특하고 굳건하고 독립적인 아이로 성장해 갔다. 하지만 나에게 너는 여전히 네 엄마와 연결된 존재, 누군가의 딸이었다.

💥💥 우리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공통된 지향점이나 선명하고서도 뚜렷한 추억을 공유하여만 할 것이다. 나의 네 엄마는 우리라는 조건에 들어맞는 사이이고 너는 우리의 공통 관심사다.

2. 아버지가 되어 주오.(명자1)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고 한다. 저 사람은 시골에 내려가 살자고 하는데 나는 시골에서 살고 싶 지 않다. 불편한 건 견딜 수 있지만 벌레는 못 참겠다. 벌에 쓰여서 쇼크 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 그때 죽을 수도 있었다.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는 사람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고향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다, 떨어져 산 지는 몇 년 되었다. 이미 별거 상태나 다름없다.각자 저 좋아하는 곳에서 저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러면 아버지가 이렇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
그때부터 나도 눈여겨봤지. 시선이 갈 수밖에. 가만 보니까 그 사람 왼손잡이더라? 왼손잡이는 속도를 낼 수가 없거든? 문선이란게 활자를 골라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 데 왼손잡이라 손이 자꾸 엉키는 거야. 당연히 속도가 안 나지.

💥💥명자는 순천여고를 졸업하고 비슷한 부류의 세명의 여고생과 함께 인쇄소에 취직을 한다.
얼마 후 세 명의 동료 여직원이 이직을 하자 명자 혼자만이 남았다. 이 때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어머니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키웠다. 내 어머니가 키운 것은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모자라고 불안정하고 허점투성이인 어떤 한 세상. 어머니는 그 세상을 품어 아버지가 되었다.


3.반에 반의 반

내 아버지가 자릿세를 받으러 온 사람의 멱살을 쥐었을 때, 모두 그 주위로 몰려가 언성을 높이고 떼어놓느라 정신이 없었던 바로 그때. 그는 슬그머니 나무 뒤에서 나와 할머니에게로 갔을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 잠시 물놀이를 즐겼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물에서 나왔을 것이다. 젖은 몸을 닦아주고 다시 치마저고리를 입히고 옷고름을 묶어준 사람이 바로 그였을 것이다. 긴 머리를 털어 말리고 손빗으로 빗어 틀어올려준 것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환한 풍경에 그도 함께였기를. 부끄럽지 않았기를. 함께 아름다웠기를.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그와 그들의 기억에 보탠, 반의반의 상상이다. 어쩌면 그것의 반, 딱 그만큼.


💥💥 나는 가족들의 추억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 그는 나의 큰 아버지이고 그에게 어머니의 추억은 조금은 쑥스럽고 숨기고 과거이다. 나는 그런 가족의 과거마저 안고 다듬고 가야 한다.

4.우니(독골댁1)

어머니는 인생을 몰라도 너무 몰라. 요 맛도 모르구. 아직도 갈챠줄 게 많이 남았으니. 어쩌나? 내가 오래오래 살아야지. 관동댁은 우니 맛을 음미하며 생각했다.
한나한나 다 가르챠줬제 버선 맹그는 것도 가르쳐주고 나백김치 담그는 것도 가르쳐주고, 우니 맛도 가르쳐주고. 나도 뭐
한나 가르차줄까? 그릏게 메느리만 이뻐했던 그 냥반이 밤마다 내헌테 뭐라 했는지 아능가? 요 맛은 아무도 모를 거다, 요 맛이 최고다, 요 맛이 최고야. 어릴 적에는 고 말이 고로코롬 무섭고 싫드만. 독골댁은 죽어도 그 냥반 다 모를 거이네. 암만, 내 양반인디?
그때 보드라운 성게알이 입술을 스치고 지나갔다.~~입안으로 들어온 성게알은 씹을 것도 없이 사르르 녹아 목구멍을 타고 그대로 내려갔다.~~요것이 진짜 우니 맛이야, 우니.

💥💥관동댁은 독골댁의 시어머니다. 시아버지의 후취로 들어왔다. 그래서 며느리 보다 나이가 몇 살 적게 먹었다. 시아버지 죽고 나서 오갈 데 없는 관동댁과 더불어 살고 있다.


5. 명자씨를 닮아서(명자2)

그녀에게 폐경이 왔어요. 그것이 그 아이의 시작이었죠.

폐경이 왔다더라? 심리적 충격에 의한, 조기, 폐경?' 어디서 재미난 소문이라도 주워들은 사람처럼, 자기랑은 무관 한 일을 들려주듯 폐경을 선언했죠.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애를 만든 걸까요? 혼자 남은 내가 외로울까봐? 죽기를 작정한 그 순간부터 계획한 걸까요.~~
사랑스러운 얼굴로. 이미 불룩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어요. 다시 세 사람이 되겠네? 그뿐이었어요 그런데 폐경이 왔다면서 어떻게 애를 갖죠? 난자들이 돌아온 걸까요? 다시 살아난 거라면 왜죠? 남자를 사랑하는 일과 관계된 걸까요? 사랑을 잃자 난자들도 사라지고, 사랑을 하자 난자들이 다시 나타났나요? 그녀가 정말 누군가와 사랑을 하게 된 걸까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 폐경이라며?' 내가 물었어요. 그녀는 포 그녀다운 방식으로 대답해요 나도 몰라. 어떻게 가능했지? 다시 초경이 왔나?

💥💥남편의 죽음으로 40대의 이른 나이에 폐경이 왔다. 충격으로 실의에 빠진 엄마는 삶의 나날이 우울하기만 하고, 엄마와 나는 유골을 안고 코네티컷에서 한국으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6. 내 다정한 젖꼭지(독골댁2)

엄마, 엄마. 내 얘기 들려? 눈한번만 떠봐봐 나좀 봐봐 엄마 엄마가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눈꺼풀을 억지로 추켜올리면서 엄마. 입술을 벌리면서, 엄마. 그리 부르다보면 언젠가 응답을 받으리라 믿는 신자처럼 엄마. 한말씀만 하소서 엄마.

💥💥독골댁이 죽은 뒤 가족들이 모여서 할머니와의 추억담으로 과거를 되살려 내고 있다.

그 큰 젓가슴은 여전하더라. 죽어서도 줄어들지 않는 젖퉁이라니. 어릴 적에 현주가 지할머니 젖꼭지를 초인종처럼 누르며 놀았는데. 딩동딩동 할머니 문 좀 열어주세요, 딩동. 그러면 엄마는 맘껏 누르며 놀라고 아예 옷을 올리고 두 젖을 꺼내 보이곤 했지. 난 아무리 내 애라도 젖에 손을 대면 이상하게 징그럽고 싫더만. 내가 너무 일찍 젖을 떼버려서 대신 제 할머니 젖꼭지에 매달렸나? 분홍색의 작고 예쁜 젖꼭지였어. 아직 덜 자란 여자애처럼. 그 걸 팥 알갱이라고 불렸던 게 누구였더라. 하도 작아서 빨기 힘들어 신경질을 부렸다는 건 막내 애긴가 넷째 애긴가. 아무튼 작고 어여쁜 팥 알갱이 같았지.


7.봄밤

빌어먹을 애새끼 같으니라고. 아주 방패를 둘렀구먼 방패를 둘렀어. 첨부터 작정을 했지. 노인네들 등쳐먹으려고 작정을
했어. 어디까지 쫓아오려는 게야. 꺼지지 못해? 가! 안가? 확 돌멩이를 던질까 보다.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이녁이 책임져. 허구한 날 버려진 화분이나 주워나르더만. 그걸 덥석 받아 안아가지고 설라무네. 몰라 몰라, 난 몰라. 난 집에 들어가서 발 씻고 잘 테니까, 고 빌어먹을 것들은 이녁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자식이 사고를 친 휴유증인지, 아님 영감의 유산인지 확싨하지 않지만 그 먼 곳 까지 가서 애를 데리고 온다.

8.다른 얼굴안에.

언제나 어김이 없는 그 위치에. 그녀는 가방을 데스크에 올려놓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시 들여다보고 뒤져봐도 반드시 있어야 할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음... 그러니까 내가.. .지갑이 없네요?"
남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회색 눈동자가 차갑게 흔들리며 그녀가 한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여태 이런 일은 없었다. 그녀는 뭔가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진 속의 얼굴에는 분노와 억울함과 불안만이 가득했다. 그후로도 무수한 얼굴들이 지나갔다.

💥💥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 속에는 카드도 현금도 있었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CCTV까지 돌려보고, 몽타주까지 확인하지만 그 놈이 그 놈이다.


9.금연 캠프

와이파이는 뜨는데 이건 왜 이렇게 빙빙 돌기만 해? 이것 좀 봐줘봐요 아. 게임은 잘 안 되실 거예요. 파일 다운로드도 어렵고 여기가 병원이라 보안상 막아놓은 게 많아요. 그냥 데이터로 사용하시는 편이 나을 거예요. 아니 고스톱 치는 데 무슨 보안이 필요해?
풀어줘봐요. 내가 일부러 아이패드 챙겨온 건데?
그건 저희 영역이 아니라서요. 아 진짜 짱나게, 4박 5일 동안 고스톱도 없이 어떻게 버텨요? 안 그래요? 문서연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지만 다들 각자 일을 처리하느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배운 사연도 가지 가지이지만, 금연 캠프는 끝났다. 효과가 언제까지 갈런지 불확실하지만, 모두는 4박5일 금연 캠프를 마치고 귀가를 한다.
♨️♨️♨️나가면서
명자도, 독골댁도, 흔하디 흔한 엄마들의 이름이다.
이름이 같다고 운명까지 같지 않지만, 어쩐지 운명의 흐름속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엄마들이 많을 것도 같다. 엄마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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