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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전

구마라집 역경 여정 - 마지막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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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 역경 여정-9(마지막)

예전에 구마라집이 구자국(龜玆國)에 있을 때, 비마라차(卑摩羅叉) 율사(律師)에게 계율을 배웠다. 뒤에 비마라차가 관중(關中)에 들어왔다. 구마라집은 그가 왔다는 것을 듣고 기쁘게 맞이하여 스승을 공경하는 예를 극진히 하였다. 비마라차는 구마라집이 핍박당한 사실(파계한 사실)을 아직 몰랐다.
어느 날, 구마라집에게 물었다.
“그대는 중국 땅에 지중한 인연이 있네. 법을 전수 받은 제자는 몇 명이나 되는가?”
구마라집은 대답하였다.
“중국 땅에는 아직 경장과 율장이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경과 여러 논(論)들은 대부분 제가 번역해냈습니다. 3천 명의 학도들이 저에게 법을 배웁니다. 그렇지만 저는 업장(業障)에 깊이 얽매여 있어서 스승으로서의 존경은 받지 못합니다.”

初什在龜茲從卑摩羅叉律師受律卑摩後入關中什聞至欣然師敬盡禮卑摩未知被逼之事因問什曰汝於漢地大有重緣受法弟子可有幾人什答云漢境經律未備新經及諸論等多是什所傳出三千徒衆皆從什受法但什累業障深故不受師教耳

또 비구 배도(杯渡)가 팽성(彭城)에 있었다. 구마라집이 장안(長安)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곧 탄식하였다.
“그대와 내가 장난처럼 이별한 지 어언 3백여 년이다. 그렇건만 이 생에서는 아득히 기약이 없구려. 더디지만 내생에서나 만날 수 있을 뿐이라오.”
又杯渡比丘在彭城聞什在長安乃歎曰吾與此子戲別三百餘年杳然未期遲有遇於來生耳



구마라집이 아직 임종하기 전 어느 날, 약간 온몸이 상쾌하지 못함을 깨달았다. 이에 곧 입으로 세 번 신주(神呪)를 외웠다. 게다가 외국 제자들에게도 이 주문을 외우게 하여, 병을 나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주문의 효력이 미치지 않아, 한층 더 위독해졌음을 알았다.
이에 구마라집은 병을 참으면서 대중 승려들과 이별을 고하며 말하였다.
“불법을 인연으로 서로 만났거늘 아직 내 뜻을 다 펴지 못하였다. 이제 세상을 뒤로 하려니, 이 비통함을 무슨 말로 다하겠는가. 나는 어둡고 둔한 사람인데도 어쩌다 잘못 역경을 맡았다. 모두 3백여 권의 경과 논을 역출하였다.
오직 『십송률(十誦律)』 한 부만은 미처 번잡한 것을 깎아내어 다듬지 못하였다. 『십송률』의 근본 뜻을 보존한다면 반드시 크게 어긋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번역한 모든 경전들이 후세까지 흘러가서 다 같이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 지금 대중 앞에서 성실하게 맹서한다.
만약 내가 번역하여 옮긴 것에 잘못이 없다면, 화장한 후에도 내 혀만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
什未終日少覺四大不愈乃口出三番神呪令外國弟子誦之以自救未及致力轉覺危殆於是力疾與衆僧告別曰因法相遇殊未盡伊心方復後世惻愴何言自以闇昧謬充傳譯凡所出經論三百餘卷唯十誦一部未及刪煩存其本旨必無差失願凡所宣譯傳流後世咸共弘通今於衆前發誠實誓若所傳無謬者當使焚身之後舌不燋爛

위진(僞秦: 前秦) 홍시(弘始) 11년(409) 8월 20일 장안(長安)에서 돌아가셨다. 이 해는 바로 진(晋)나라 의희(義熙) 5년(409)이다.
곧바로 소요원(遡遙園)에서 외국의 의식에 따라 화장하였다. 장작이 다 타고 시신이 다 타 없어졌건만 오직 그의 혀만은 재가 되지 않았다[焚身之後 舌不燋爛]. 후에 어떤 외국 사문이 와서 말하였다.
“구마라집이 암송한 것 중 열에 하나도 번역해 내지 못했다.”
과거 구마라집은 일명 구마라기바(鳩摩羅耆婆)였다. 외국의 이름짓는 법은 대부분 부모의 이름을 근본으로 삼는다. 구마라집의 아버지는 구마염(鳩摩炎)이었고, 어머니의 자(字)는 기바(耆婆)였기 때문에 둘을 취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以僞秦弘始十一年八月二十日卒于長安是歲晉義熙五年也卽於逍遙園依外國法以火焚尸薪滅形碎唯舌不灰後外國沙門來云羅什所諳十不出一初什一名鳩摩羅耆婆外國製名多以父母爲本什父鳩摩炎母字耆婆故兼取爲名

그러나 구마라집이 죽은 때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같지 않다. 혹자는 홍시(弘始) 7년(405)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8년, 혹자는 11년이라고도 한다. 고찰해 보건대, 칠(七)자 와 십일(十一)자는 혹 글자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경록(譯經錄)』의 전(傳) 속에도 1년으로 된 것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세 가지 주장의 어느 쪽에도 부화뇌동(附和雷同)할까 두려워 딱히 바로잡을 도리가 없다.
然什死年月諸記不同或云弘始七年或云八年或云十一年尋七與十一字或訛誤而譯經錄傳中猶有一年者恐雷同三家無以正焉

출처: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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