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녕 2년(400), 돼지가 머리 셋 달린 새끼를 낳았다. 용이 동쪽 곁채의 우물 속에서 나와 대전(大殿) 앞에 몸을 서렸으나,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찬은 이것을 아름다운 상서로 여겨 대전을 용상전(龍翔殿)이라 불렀다. 얼마 후 또 검은 용이 당양(當陽)의 구궁문(九宮門)에서 승천했다. 여찬은 이 구궁문을 용흥문(龍興門)이라 개칭하였다.
咸寧二年有猪生子一身三頭龍出東廂井中到殿前蟠臥比旦失之纂以爲美瑞號大殿爲龍翔殿俄而有黑龍升於當陽九宮門纂改九宮門爲龍興門
구마라집이 상주하여 아뢰었다.
“요즈음 물 속에 잠겨 있는 용[潛龍]이 출몰하고 돼지도 괴이한 일을 보입니다. 용은 음한 생물로서 드나드는 일정한 때가[出入有時]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자주 나타나는 것은 재앙이 있을 징조입니다. 반드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반하는 변괴가 있을 것입니다. 마땅히 사욕을 극복하고[克己]덕을 닦아[修德], 하늘이 보여주는 타이름에 보답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찬은 구마라집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전에 여찬이 구마라집과 바둑을 두었다. 여찬이 구마라집의 바둑돌을 희롱하며 죽이고 말하였다.
“오랑캐 놈[胡奴]의 머리를 벨 것이다.”
什奏曰皆潛龍出遊豕妖表異龍者陰類出入有時而今屢見則爲災眚必有下人謀上之變宜剋己脩德以答天戒纂不納與什博戲殺棋曰斫胡奴頭
구마라집은 말하였다.
“오랑캐 놈의 머리는 베지 못할 것입니다. 오랑캐 놈이야말로 사람의 머리를 벨 것입니다.”
이 구마라집의 말에는 의미가 담겨 있으나, 여찬(呂纂)은 끝내 깨닫지 못하였다.
여광(呂光)의 아우 여보(呂保)에게는 여초(如超)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여초(如超)의 어렸을 적의 이름이 호노(胡奴)였다. 뒤에 과연 여찬(呂纂)의 목을 베고, 자기 형 여륭(呂隆)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당시 사람들이 비로소 구마라집의 예언을 증험하였다.
什曰不能斫胡奴頭胡奴將斫人頭此言有旨而纂終不悟光弟保有子名超超小字胡奴後果殺纂斬首立其兄隆爲主時人方驗什之言也
구마라집이 양주(凉州)에 체류한 지 수 년이 되었다. 여광(呂光) 부자가 도를 널리 펴지 않는 까닭에,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아 두고도 선양하고 교화할 방법[弘道]이 없었다. 부견(苻堅)은 이미 세상을 떠나 구마라집과 끝내 서로 만날 수가 없었다.
요장(姚萇)이 관중(關中)을 참칭하고 소유하였다. 그도 역시 구마라집의 높은 명성을 듣고, 마음을 비워서 오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여러 여씨들은 구마라집이 지혜로운 계책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요씨들을 위해 도모할까 두려워하여, 동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什停涼積年呂光父子旣不弘道故薀其深解無所宣化符堅已亡竟不相見及姚萇僭有關中亦挹其高名虛心要請諸呂以什智計多解恐爲姚謀不許東入
요장(姚萇)이 죽고 아들 요흥(姚興)이 자리를 잇자, 다시 사신을 파견하여 정성을 다해 요청하였다. 요흥(姚興)의 홍시(弘始) 3년(401) 3월, 궁중의 광정(廣庭)에 연리지(連理枝)가 나고, 소요원(逍遙園)의 파가 변하여 난초가 되었다. 이것을 아름다운 상서로 여겨 슬기로운 사람이 들어올 것이라고 하였다.
及萇卒子興襲位復遣敦請興弘始三年三月有樹連理生于廣庭逍遙園蔥變爲茝以爲美瑞謂智人應入
5월에 이르러 요흥(姚興)이 농서공(隴西公) 요석덕(姚碩德)을 파견하여 서쪽으로 여륭(呂隆)을 정벌하게 하였다. 여륭(呂隆)의 군대를 크게 깨뜨리자, 9월에 여륭(呂隆)이 표문을 올리고 항복하였다. 비로소 구마라집을 맞이하여 관중(關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해 12월 20일에 장안(長安)에 도착하였다.
요흥(姚興)이 국사(國師)의 예로써 대우하여 구마라집은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마주 대하여 이야기하노라면[晤言] 머무르는 것이 오래 걸려 하루 해가 지나갔다. 미묘한 것을 연구하여 극진한 데까지 나아가니, 한 해를 다 보내도록 싫증나는 줄 몰랐다.
至五月興遣隴西公碩德西伐呂隆隆軍大破至九月隆上表歸降方得迎什入關以其年十二月二十日至于長安興待以國師之禮甚見優竉晤言相對則淹留終日硏微造盡則窮年忘倦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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