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라집은 설법하는 여가에 외도의 경전들을 탐색하였다. 『위타함다론(圍陀含多論, vedasastra)』을 잘 익혀서, 글을 짓고 묻고 답하는 따위의 일에 매우 밝았다. 또 사위타(四圍陀)의 전적들과 5명(明)의 여러 논(論)들을 널리 읽었다. 음양(陰陽)ㆍ성산(星算: 天文曆數)까지 모두 다 극진히 연구하여 길흉(吉凶)에도 미묘하게 통달하였다. 그의 예언은 부절(符節)을 합한 것과 같이 딱 들어맞았다.
성품이 소탈하고 활달하여 자잘한 법식에 구애되지 않으니, 수행자(修行者)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구마라집은 자연스런 마음으로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什以說法之暇乃尋訪外道經書善學『圍陁含多論』多明文辭製作問答等事又博覽四圍陁典及五明諸論陰陽星算莫不必盡妙達吉凶言若符契爲性率達不厲小撿脩行者頗共疑之然什自得於心未嘗介意
당시 사거왕자(莎車王子)와 참군왕자(參軍王子), 형제 두 사람이 나라를 버리고 사문(沙門)이 되었다. 형은 자(字)를 수리야발타(須利耶跋陀)라 하고, 아우는 자를 수리야소마(須利耶蘇摩)라고 하였다.
수리야소마는 재주와 기량이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 오로지 대승(大乘)으로써 교화하였다. 그의 형과 여러 학자들이 모두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구마라집도 역시 수리야소마를 존숭하고 받들었다. 가까이 하여 좋아함이 더욱 지극하였다. 수리야소마는 뒤에 구마라집을 위하여 『아뇩달경(阿耨達經)』을 설해 주었다.
구마라집은 스승에게서 “음(陰)ㆍ계(界)ㆍ제입(諸入)은 모두 공(空)하고 무상(無相)하다”는 설법을 들었다. 괴이쩍게 여겨 질문하였다.
“이 경에는 다시 무슨 뜻[義]이 있기에, 모든 현상을 있는 족족 모두 파괴해 버립니까?”
時有莎車王子參軍王子兄弟二人委國請從而爲沙門兄字須利耶跋陁弟字須耶利蘇摩蘇摩才伎絕倫專以大乘爲化其兄及諸學者皆共師焉什亦宗而奉之親好彌至蘇摩後爲什說『阿耨達經』什聞陰界諸入皆空無相怪而問曰此經更有何義而皆破壞諸法
수리야소마는 답하였다.
“안(眼) 등의 모든 현상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구마라집은 이미 ‘안근(眼根)이 존재한다’고 집착하였다. 수리야소마는 ‘인과로써 이루어진 것일 뿐 실체는 없다’는 데에 의거하였다. 이 때문에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깊이 궁구하여 밝혀[硏覈], 서로 주고받는 문답이 오랜 시일 동안 계속되었다.
答曰眼等諸法非眞實有什旣執有眼根彼據因成無實於是硏覈大小往復移時
구마라집이 비로소 이치의 돌아감을 알고는 마침내 오로지 대승 경전을 힘써 공부하였다. 이에 탄식하였다.
“내가 옛날에 소승(小乘)을 배운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황금을 알지 못한 채 놋쇠를 가지고 가장 훌륭한 것으로 여긴 것과 같구나.”
그러고는 대승에서 중요한 것들을 널리 구하여, 『중론(中論)』ㆍ『백론(百論)』 두 논과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을 외웠다.
什方知理有所歸遂專務方等乃歎曰吾昔學小乘如人不識金以鍮石爲妙因廣求義要受誦『中』『百』二論及『十二門』等
얼마 후 어머니를 따라 나아가 온숙국(溫宿國)에 이르렀다. 바로 구자국의 북쪽 경계였다. 당시 온숙국에는 한 도사(道士)가 있었다. 신묘(神妙)한 말솜씨가 빼어나서 명성을 여러 나라에 떨쳤다.
그는 제 손으로 왕의 큰 북을 치면서 스스로 맹세하여 말하였다.
“논쟁으로 나를 이기는 자가 있으면 내 목을 잘라서 사죄하겠다.”
구마라집이 이른 뒤에 둘이 서로 다른 논쟁을 벌여 따졌다. 도사는 헷갈리고 얼이 빠져 불교에 머리를 조아리고 귀의(歸依)하였다. 이리하여 구마라집의 명성이 파미르 고원 동쪽에 가득하였다. 명예가 황하[중국] 밖에서는 널리 퍼졌다.
구자국왕은 몸소 온숙국까지 가서 구마라집을 맞이하여 구자국으로 돌아왔다. 널리 여러 경들을 강설하니, 사방의 먼 지방에서 존숭하고 우러러 아무도 그를 대항할 자가 없었다.
頃之隨母進到溫宿國卽龜茲之北界時溫宿有一道士神辯英秀振名諸國手擊王鼓而自誓言論勝我者斬首謝之什旣至以二義相撿卽迷悶自失稽首歸依於是聲滿蔥左譽宣河外龜茲王躬往溫宿迎什還國廣說諸經四遠宗仰莫之能抗
그 당시 한 왕녀(王女)가 비구니가 되었다. 자(字)를 아갈야말제(阿軻耶末帝)라고 한다. 그 비구니는 많은 경전들을 널리 보았다. 특히 선(禪)의 크나큰 요체를 깊이 알았으며, 이미 2과(果: 사다함과)를 증득했다고 하였다. 그 비구니는 구마라집의 법문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이에 다시 큰 모임을 마련하고, 대승 경전의 심오한 이치를 열어줄 것을 청하였다.
구마라집은 이 법회에서 모든 현상이 다 공하여 내가 없음[皆空無我]을 미루어 변론하였다. 음(陰)이나 계(界)는 임시 빌려 쓴 이름이지 실제가 아님[假名非實]을 분별하였다. 당시 모인 청중들이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여 슬프게 느끼며, 깨달음이 뒤늦었음을 한탄해 마지않았다.
구라마집의 나이 스무 살에 이르자 왕궁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비마라차(卑摩羅叉)에게 『십송률(十誦律)』을 배웠다.
時王子爲尼字阿竭耶末帝博覽群經特深禪要云已證二果聞法喜踊迺更設大集請開方等經奧什爲推辯諸法皆空無我分別陰界假名非實時會聽者莫不悲感追悼恨悟之晩矣至年二十受戒於王宮從卑摩羅叉學『十誦律』
얼마 후 구마라집의 어머니는 구자국을 하직하고 천축국(天竺國)으로 갔다. 구자국왕 백순(白純)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나라는 얼마 안 되어 쇠망(衰亡)할 것입니다. 나는 이곳을 떠납니다. 천축국에 가서 3과(果: 아나함과)를 증득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구마라집의 어머니는 이별에 임하여 구마라집에게 말하였다.
“대승 경전의 심오한 가르침을 중국에 널리 떨치도록 하여라. 그것을 동쪽 땅에 전하는 것은 오직 너의 힘에 달려 있을 뿐이다. 다만 너 자신에게만은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니, 어찌 하겠니?”
구마라집은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도리는 중생의 이익(利益)을 위해 자신의 몸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반드시 불법의 큰 교화[大化]를 널리 퍼뜨려 몽매한 세속을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는 고통을 당한다 하더라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有頃什母辭往天竺謂龜茲王白純曰汝國尋衰吾其去矣行至天竺進登三果什母臨去謂什曰方等深教應大闡眞丹傳之東土唯爾之力但於自身無利其可如何什曰大士之道利彼忘軀若必使大化流傳能洗悟矇俗雖復身當爐鑊苦而無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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