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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전

구마라집 역경 여정-8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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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 역경 여정-8

용광사(龍光寺)의 석도생(釋道生)은 지혜로운 앎이 미묘한 경지에 들어가고, 현묘한 의미를 문자 밖까지 이끌어 내 놓을 정도의 인물이다. 그러나 항상 자신의 언어가 본뜻을 어그러뜨릴까 염려하여, 관중(關中)에 들어가 구마라집에게 해결해 주기를 청하였다.
여산(廬山)의 석혜원(釋慧遠)은 많은 경전들을 배워 꿰뚫었다. 석가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펼치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불교계의 동량과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당시는 성인께서 가신 지가 아득히 멀고 오래되어, 의문스러운 내용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 구마라집에게 자문을 구한 내용이 「혜원전(慧遠傳)」에 보인다.

龍光釋道生慧解入微玄搆文外每恐言舛入關請決廬山釋慧遠學貫群經棟梁遺化而時去聖久遠疑義莫決乃封以諮什語見遠傳


과거에 사문 승예(僧叡)는 재능과 식견이 높고 밝았다. 항상 구마라집을 따라다니며 옮겨 베끼기를 담당하였다. 구마라집은 매양 승예(僧叡)를 위하여 서방의 말투를 논하고, 범어와 한자(漢字)의 같고 다름을 살피고 분별하여 말하였다.
“천축국의 풍속은 문장의 체제를 대단히 중시한다. 그 오음(五音)의 운율(韻律)이 현악기와 어울리듯이, 문체와 운율도 아름다워야 한다. 국왕을 알현할 때에는 국왕의 덕을 찬미하는 송(頌)이 있다. 부처님을 뵙는 의식은 부처님의 덕을 노래로 찬탄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경전 속의 게송들은 모두 이러한 형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범문(梵文)을 중국어로 바꾸면 그 아름다운 문채(文彩)를 잃는 것이다. 아무리 큰 뜻을 터득하더라도 문장의 양식이 아주 동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밥을 씹어서 남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만 맛을 잃어버릴 뿐만이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게 하는 것이다.”

初沙門僧睿才識高明常隨什傳寫什每爲睿論西方辭體商略同異云天竺國俗甚重文製其宮商體韻以入絃爲善凡覲國王必有贊德見佛之儀以歌歎爲貴經中偈頌皆其式也但改梵爲秦失其藻蔚雖得大意殊隔文體有似嚼飯與人非徒失味乃令嘔噦也


구마라집은 예전에 사문 법화(法和)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준 적이 있었다.

마음 산(山)에서 밝은 덕을 길러
그 향내 일만 유연(由延)까지 퍼지고
오동나무에 외로이 깃든 슬픈 난새
청아한 울음소리 구천(九天)에 사무치네.


什嘗作頌贈 沙門法和云
心山育明德
流薰萬由延
哀鸞孤桐上
淸音徹九天

커다란 게송 10게를 지었으니, 게송에서의 글의 비유가 모두 이러했다.
구마라집은 평소 대승(大乘)을 좋아하여, 대승(大乘)을 널리 펴는 데에 뜻을 두었다. 항상 한탄하였다.
“내가 붓을 들어 대승아비담(大乘阿毘曇)을 짓는다면 가전연자(迦旃延子)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지금 이 중국 땅에는 학식이 깊은 사람이 없어 여기에서 날개가 부러졌으니 무엇을 더 논하겠는가?”
이와 같이 한탄하면서 쓸쓸히 그만두었다. 오직 요흥(姚興)을 위하여 『실상론(實相論)』 두 권을 지었다. 아울러 『유마경(維摩經)』에 주를 내었다. 말을 내어 문장을 이룬 것[出言成章]은 깎아 내어 고칠 것이 없었다. 문장의 비유는 완곡하고 간명(簡明)하여, 그윽하고 깊숙하지 않음이 없었다.

凡爲十偈辭喩皆爾什雅好大乘志存敷廣常歎曰吾若著筆作『大乘阿毘曇』非迦栴延子比也今在秦地深識者寡折翮於此將何所論乃悽然而止唯爲姚興著『實相論』二卷幷『注維摩』出言成章無所刪改辭喩婉約莫非玄奧

구마라집의 사람됨은 맑은 정신이 밝고 투철(透徹)하며, 남에게 굽히지 않는 성품이 남달랐다. 또한 임기응변하여 깨달아 아는 것은 무리 가운데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돈독한 성격으로 인자하고 후덕하였다. 차별 없이 사람들을 두루 사랑하였다. 자신을 비우고 사람들을 잘 가르치며 종일토록 게으름이 없었다.
진나라 임금 요흥이 항상 구마라집에게 말하였다.
“대사의 총명과 뛰어난 깨달음은 천하에 둘도 없습니다. 만일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시어 법의 씨앗이 될 후사가 없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그리하여 기녀(妓女) 열 명을 억지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 이후로부터는 승방(僧坊)에 머물지 않고 따로 관사를 짓고 살았다. 모든 것을 풍부함이 넘칠 정도로 공급받았다. 매양 강설(講說)할 때에는 먼저 스스로 설하였다.
“비유하면 더러운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다. 오직 연꽃만을 취하고 더러운 진흙은 취하지 말라.”

什爲人神情朗徹傲岸出群應機領會鮮有倫疋者篤性仁厚汎愛爲心虛己善誘終日無倦姚主常謂什曰大師聰明超悟天下莫二若一旦後世何可使法種無嗣遂以妓女十人逼令受之自爾以來不住僧坊別立廨舍供給豐盈每至講說常先自說譬喩如臭泥中生蓮花但採蓮花勿取臭泥也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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