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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북의 사찰

대웅전을 찾아-팔공산 환성사 대웅전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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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성사의 일주문은 덤벙초석(돌이 놓인 위치가 정형적이지 않고 덤벙 덤벙 놓여짐)으로 4개의  돌기둥을 일렬로 세웠는데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가운데 2개의 기동은 팔각형인데 바깥쪽 2개의 돌기둥은 사각으로 되어 있다.


보물

경산 환성사 대웅전 (慶山 環城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Hwanseongsa Temple, Gyeongsan

환성사는 팔공산 기슭에 있는 절로 흥덕왕 10년(835)에 심지왕사가 처음 지었으나 고려 후기에 화재로 불타버렸다고 한다. 조선 인조 13년(1635)에 신감대사가 다시 지었으며, 광무 원년(1897) 항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환성사의 중심 건물로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은 가운데만 굵고 높거나 크지 않고 건물의 앞면과 옆면 길이가 거의 같기 때문에 매우 안정된 비례를 이루고 있다.

내부에는 뒤쪽으로 화려한 불단이 있는데 목공예적인 장식으로 아름답다. 1976년 낡은 목재를 갈아내고 단청 무늬와 퇴색된 색채에 비슷하게 보수하였으며, 바깥쪽 단청은 새로 칠하여 옛 것과 새 것의 색이 섞여있다.

건물의 구조나 단청이 대체로 예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건축물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경산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慶山 環城寺 大雄殿 須彌壇)

수미단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여기는 상상의 산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불상을 모신 대좌를 말한다. 경산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은 정면 12칸, 측면 4칸의 가구 수법으로 만들어진 3단의 수미단으로, 크기는 길이 652㎝, 너비 220㎝, 높이 114㎝이다.

이 수미단은 후불벽 뒷면에 출입구가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으며, 내부의 일부 부재에는 묵서(墨書)가 남아 있다. 또한 극락정토에 사는 상상의 새인 가릉빙가를 비롯하여 다양한 동물과 새, 꽃 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 수미단이 제작된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환성사 대웅전이 1635년에 고쳐 지어진 점과 조각 장식이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과 비슷한 점을 근거로 1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처마
첨하(檐下)라고도 부른다. 처마라는 말은 첨아(檐牙)가 연음화되어 우리말로 굳어진 것이다.

서까래가 기둥 밖으로 빠져나간 부분을 통상 처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지붕이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과 기둥을 건너서 위에 얹은 나무인데, 목조건축물의 골격을 이루는 가구재(架構材) 중에서는 가장 위에 놓이는 부재이다. ) 밖으로 내민 부분을 일반적으로 처마라고 부른다. 처마는 비와 눈으로부터 집의 외벽을 보호하고, 일조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처마가 발달하였는데 전통 한옥만 보아도 처마가 길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마 기둥이 받쳐주는 기와집은 멋이 있으며 처마와 기둥을 이어 주는 곳은 공포(栱包/貢包)라 하며 이 처마가 건물의 모서리에 위치하면 귀공포라 말하며 공포의 층계가 높을수록 처마가 더 길게 나올 수 있다. 보통 처마는 나무로 만든 집에 자주 쓰이는데 처마가 나무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수백 년 된 목조 고택들이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은 처마의 역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출처: 국가유산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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