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淸道 雲門寺 처진소나무)
Weeping Pine Tree of Unmunsa Temple, Cheongdo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우 희귀하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운문사의 앞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높이는 9.4m, 둘레는 3.37m이다. 나무의 모습이 낮게 옆으로 퍼지는 모습 때문에 한때 반송(盤松:키가 작고 밑동부터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소나무)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나무는 3m 정도의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본다. 운문사는 1,400년 전에 지었다고 하고 임진왜란(1592) 때 이 나무는 상당히 컸었다하니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스님들은 매년 봄·가을에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가꾸고 있다.
보물
청도 운문사 동호 (淸道 雲門寺 銅壺)
Bronze Jar of Unmunsa Temple, Cheongdo
이 항아리는 전체가 검은 색조를 띠고 있으며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감로준(甘露樽)이라는 이름이 전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사찰의 불교 용기였다고 추측된다.
높이 55㎝, 구경의 지름 19.5㎝, 몸지름 31㎝로 뚜껑 모서리 부분은 둥글게 표현하였고 위로 6장의 연꽃잎과 十자형으로 된 불꽃 모양의 화려한 손잡이가 위로 돌출되어 달려있다.
보물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淸道 雲門寺 大雄寶殿)
Daeungbojeon Hall of Unmunsa Temple, Cheongdo
신라시대에 세운 운문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지금의 절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있었던 네 번째 보수 때의 것이다. 대웅보전도 이때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기둥 사이의 간격을 넓게 잡아서 같은 규모의 건물보다 크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다포계 건물들과는 달리 장식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앞면에는 꽃무늬를 넣은 문을 달았는데, 특히 가운데 칸은 넓어 5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안쪽은 큰 기둥을 하나만 세워 넓고 탁 트인 공간을 꾸미고 있다. 천장의 가운데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화려하게 채색해 놓았다.
건물의 짜임이 조선 중기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운문사 대웅보전은 소실되어 원래의 비로전을 대웅보전으로 대체하였고 소실된 자리에는 최근에 대웅보전을 신축하였으나 비로전이라 부르기도 하고 대웅보전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대웅보전(비로전)에는 비로자나불이 주불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Mahāvairocana)은 산스크리트어로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을 가진 부처님이다.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 한역하기도 하므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대광명전(大光明殿), 대적광전(大寂光殿), 비로전(毘盧殿)이라고 한다.
보물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 (淸道 雲門寺 大雄寶殿 觀音菩薩·達摩大師 壁畵)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淸道雲門寺大雄寶殿觀音菩薩達摩大師壁畵)’는 거대한 흙벽의 화면에 높고 험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온화하고 화려한 관음보살과 호방하고 대담한 달마대사를 조화롭게 그렸다. 한 화면에 관음과 달마를 나란히 표현한 벽화의 유일한 사례로,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전통을 잇는 선찰 운문사의 성격을 잘 대변해 준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 작압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0.63m의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지만,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세부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분명하다. 신체 비례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인데, 가는 눈썹·작은 눈·오똑한 코·작은 입 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평판적인 모습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그 안에 비스듬히 표현된 내의이 보인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배꼽 부분에 놓여져 있는데, 손이 작고 표현이 섬세하지 못해 투박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투박한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형식적인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매우 특이한 양식으로 주목된다. 맨 윗부분은 평면 타원형으로 14개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는 6각형이며, 아랫부분은 긴 6각형에 18개의 연꽃잎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은 겉옷 안에 표현된 속옷, 전반적으로 투박해진 표현기법 등에서 9세기 불상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불상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사리기는 1987년 10월 작압전(鵲鴨殿) 해체 복원 당시 석불좌상의 대좌 아래에서 발견된 것으로 '작압전 발견 사리기'라고도 한다. 전탑인 작압전을 조성하면서 봉안한 사리구로 납석제 사리합에는 함통(咸通) 6년인 865년(신라 경문왕 5) 탑에 사리 2매를 봉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사리봉안을 위해 조성한 사리구임을 알 수 있다.
●작압전의 전설
작압(鵲鴨)·작압전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인 작압전은 전면 측면이 모두 한 칸에 불과한 작은 건물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신승(神僧)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새를 보고 이른 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있어서, 무너져 있는 석조물로 다시 탑을 쌓으니 파편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겼다고 한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뒤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五鴨寺)라고 하였다.
작압전은 신승이 발견한 석탑터에 지어진 전각으로,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전탑형식으로 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현재의 목탑형식으로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보물 제 317호 석조여래좌상과 318호 사천왕 석주를 봉안하고 있다.
(출처:운문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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