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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40. 속치마를 입는 오기국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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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치마를 입는 오기국


안서에서 동쪽으로 가서 오기국( 烏耆國 카라샤르Kharashar)에 이르렀다. 여기도 중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왕이 있으며, 백성들은 호인(胡人)들이다. 절이 많고 스님들도 많으며, 소승법이 행해지고 있다. 여기가 곧 안서4진 (安西四鎭)인데, 이름을 들면 첫째 안서, 둘째 우전
(코탄), 셋째 소륵 (카슈가르), 넷째 오기 (카라샤르) 이다.
중국의 방식대로 안에 치마를 입는다.

원문 / 혜초

/지안

오기국 (烏耆國)은 언기국 (焉耆國)으로 되어 있는 본(本)도 있다. 오기국도 한대(漢代) 서역 36국 가운데 하나이다. 행정을
다스리던 치소(治所)는 원거성(員渠城)으로, 장안에서 7,300리이고, 4,000호에 인구 32,100명, 군사 6,000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 역시 [한서] [서역전]의 기록이지만 오기국이 한때 국력이 신장하여 흉노와 한나라에서 자립할 정도로 강성해져 동한 때
는 인구 52,000명 군대 20,000명을 거느릴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 때도 있었다 한다. 3국 시대에는 오아시스 육로의 중간에 있
는 위리국(尉犁國), 위수국(尉須國), 산왕국(山王國) 등을 예하에 두기도 했다. 그러나 뒤에 구자(쿠차)가 파미르 고원의 동부지역을
장악하고, 전진의 여광(呂光)이 구자를 토벌할 때 오기는 전진의 여광에게 투항하였다. 그 뒤 다시 북위 때 만도귀(萬度歸 )가 오기
를 공격한 후 오기는 매우 작고 가난한 나라[ 國小大貧]로 전락해 돌궐의 치하에 들어갔다. 오기국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항상
여러 나라가 세력 다툼을 하는 각축장이 되었다.

남아 있는 혜초의 여행기록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40여 나라를 순례하면서 때로는 간단하게 때로는 조금 자세하게 기술하며 순례의 노정(路程)을 밟았다. 해설에서 언급한 대로 약간의 오기(誤記)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혈혈단신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단한 여정의 순레 자취를 이렇게나마 남
길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8세기 천축여행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오늘날 현대인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 여행기를
여행가가 아니라도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읽어야하지 않을까? [왕오천축국전]이 한 구법자(求法者)가 남긴 기록의
산물이지만 하나의 교양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불교에서는 위법망구(爲法忘軀)라는 말이 있다. 법을 위해서 몸을 돌보지 않고 온갖 고행을 자초한다는 말이다.
이 위법망구의 정신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탄생하였다. 생명의 위험을 감당하고 당당히 법을 위해 걷기 시작한 도보의 행진 속에 사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별 대수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보고 듣기 위해서 간 것이 법을 위해 간 것이 된다. 그러므로 법을 위해 몸을 바치
는 정신이 아니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법현 이후 혜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구법숭들의 행적이 중국 불교사에 나타나고 있다. 유송(劉宋) 때의 지맹(智猛)은 404년에 담참(曇懺) 등 15명과 함께 장안을 출발하여 서행구법(西行求法)을 떠났다. 그의 일행이 천축에 도착했을 때는 10명이 죽거나 낙오하고 5명만 무사히 도착했으며, 뒷날 장안으로 돌아왔을 때는 또 병들어 죽은 사
람이 생겨 지맹과 담참 두 사람만 겨우 살아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얼마 후 법용(法勇)도 422년에 25명을 모아 천축
에 갔다 돌아왔을 때는 4명이 돌아왔다고 [역대삼보기니]와 고승전, 등에 기록되어 있다. 천축에 가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
었음을 증명하는 사례들이다.

혜초의 여행도 바로 고행으로 이루어진 구도행각이었다. 이점에서 이 책을 읽고 삼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달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면서 구름에게 편지를 부치고 싶어 했던
그는 끝내 고향인 신라의 계림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생애를 마치고 말았다.
흔히 역사에 흥망성쇠가 있다고 말하지만 파란의 역사속에 [왕오천축국전]이 기록되었고, 오랫동안 굴 속에서 잠들었다가 다시 발견되어 세상에 소개된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이 다행(多幸)한 일에 인연을 맺는 일 또한 다행(多幸)한 일이 아닐까? [왕오천축국전]을 읽는 것이 먼 옛날 위법망구의 정신으로 구법 여행을 다녀온 혜초 스님과 소중한 인연을
맺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지안 역)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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