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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 29 근친 혼인을 하는 호국(胡國)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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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 혼인을 하는 호국(胡國)


대식국(아랍)의 동쪽에는 여러 호국이 있다. 바로 안국( 安國,부하라Bukhara),조국(曹國,카부단Kabudhan), 사국( 史國, 키쉬Kish), 석라국(타쉬켄트Tashkent), 미국(米國, 펜지켄트Penikent), 강국(康國, 사마르칸트Samargand) 등이다. 비록 나라마다 왕이 있으나 모두 대식 (아랍)의 관할 아래 있다.
나라가 협소하고 군사도 적어 능히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
이 땅에서는 낙타, 노새, 양, 말, 모직물 같은 것이 나며, 옷 입는 복장은 모직 적삼과 바지, 그리고 가죽 외투가 있다. 언어는 다른 여러 나라들과 다르다. 또한이 여섯 나라는 천교(배화교, 조로아스터교)를 섬기며 불법은 알지 못한다. 유독 강국에만 절이 하나 있고 스님이 한 명 있기는 하나, 그 또한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며 공경하지도 않는다. 이들 호국에서는 모두 수
염과 머리를 깎고 흰 털모자를 즐겨 쓴다. 아주 나쁜 풍속이 있어 혼인을 근친간에 아무하
고나 한다. 어머니나 누나나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기까지 한다. 파사국(페르시아)에서도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다. 그리고 토화라국(토카리스탄)을 비롯해 계빈국(카피시)이나 범인국(바미안), 사율국(자불리스탄) 등에서는 형제가 열명이든 다섯 명이든 세 명, 투 명이든 간에 공동
으로 한 명의 아내를 취하며, 각자가 한 부인을 얻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공동으로 사는 집안이 파탄되는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원문/혜초


지안/譯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부터 변방의 이민족을 비하하여 오랑캐로 불러온 예가 있다. 이는 한족(漢族) 중심의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중화사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변방의 네 방항을 따라 동쪽은 동이(東夷), 서쪽은 서융(西戎) 남쪽은 남만(南蠻), 북쪽은 북적(北狄)이라 불렀다. 이것은 진나라 시황
제(始皇帝)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국토의 경계선이 분명해지고 난 뒤부터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원래 호(胡)라는 말은 서융의 음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으나 나중에는 서역의 별칭으로 쓰였다.  남북조 이후 서역 문물이 대거 중국으로 유입하면서 서역문물에 대해서는 호(胡)자를 붙여서 구별하였다. 또 투루판 분지에 있었던 고창국(高昌國)에서 한문과 호서 (胡書), 호어(胡語 )가 병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당서] [서역전]에는 불름과 대식 등 72개 호국(胡國)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서역이 모두 72개의 나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다만 인도도 중국에서 보면 서역의 나라에 속하지만, 호국에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 장에서 혜초가 말하는 호국도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 국가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척박한 서역의 사막지대를 호지(胡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왕소군(王昭君 )이 지었다는 시구 (詩句)에 "호지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는 말은 사람들의 입에자주 회자되는 글귀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는 호인들은 으레 불교를 신봉한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혜초가 호인들의 나라는 무조건 불교를 믿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기술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안국(安國. 부하라Bukhära)은 한때 안식국 (安息國)이라고 불렸다. 동서로 나누어 통안국, 서안국, 중안국으로 나누어 불리기도 했다. [서역전]에 기술된 내용으로 보면 안국의 왕이 사는 성은 소무(昭武 )이며 강국(康國, 사마르칸트)의 왕과 동족이고 자(字)가 몰력등(沒力登)이며, 처가 강국의 왕녀라 하였다. 수도가 나밀수(那密水자라오흐산 zaraohsan) 남쪽에 있는데 성이 다섯 겹이고 강물로 에워싸여 있다 하였다. [대당서역기] 시에는 안국을 포갈(捕喝)혹은 중안국(中安國)이라 하고 동안국을 굴상니가,서안국을 벌지도라 일컬고 있다.

조국( 曹國 , 카부단 Kabudhan)은 위나라 때 색지현국(色知顯國)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중국에 알려진 나라다. 조국이라는 이름은 수나라 때에 와서 불려진 이름이고 당나라 때에 와서는 동조국,
서조국, 중조국의 삼국으로 나누어 불렸다.

사국(史國, 키쉬Kish)은 독막수 님쪽의 소해성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신당서] [서역전] 에 밝히고 있다. 이웃한 나라들이 북쪽에 강국, 남쪽에 토화라, 서쪽으로 나색파국, 동북쪽으로 미국(米國)이 있었다. 철문산(鐵門山)이라는 산이 있었는데 매우 가파르고 물 색깔이 철색이어서 철문산이라 불렀으며 이곳에 관문이 있었다. [대당서역기]에는 사국을 갈상나 라고 부르며 사국 동쪽 경계에 있는 철문이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가는 관문이며 지형이 천연적인 요새라고 하였다.

석라국은 중국의 역사서인 위서(魏書)나 수서(隋書) 당서 (唐書), 등 중국의 사서(史書)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그런 이유로 학자들은 석국(石國, 탑십간塔什간, 타쉬켄트Tuwhken)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수서]와 [당
서]에 석국을 다 같이 왕이 석(石) 씨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약실수라는 강 이름이 나온다
미국(米國)은 북위(北魏) 때는 미밀(米密)이라 부르다가 수나라 때부터 미국이라 불렀다. 왕은 없고 성주가 도읍을 나밀수 서쪽 옛 강거국에 두었다는 기록이 [수서][서역전]에 나온다. [신
당서]에는 미국이 대식국(아랍)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강국(康國, 사마르칸트Samarkand)은 실만근이라 음사되는 이름인데 수서 강국전에는 강거(康居)의 후예라 하였다.강거는 강거국으로 터키계 유목민들이 세웠던 서역의 한 나라로
B.C. 2세기 중엽, 지금의 중앙아시아 (시르다리야Sydara) 강이북에 있었으나 1세기말 경에는 그 영역을 남쪽으로 확장하여
사막지대에 있던 키쉬,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등의 5개 소왕국이 강거국에 속했다고 전한다. 5세기에 멸망하였는데 이곳 출신의 역경승들 가운데 강승회, 강승개 등이 있다.
현장은 [대당서역기] 에서 강국을 삽말건국이라 표기하고 둘레가 1,600~1,700리나 되며 남북이 길고 좁으며, 견교한 도성의 둘레가 20여 리나 된다고 하있다. 또 땅이 기름져 곡식이 잘 자라며, 좋은 말이 많이 난다고 하였다. 학자들은 이
나라의 옛터를 현재의 사마르칸트의 북쪽 아프라시압(Afrasiab)고원지대로 보고 있다.
혜초가 이 장(章)에서 든 여섯 개의 나라들이 언어가 다르며 모두 천교(祆敎) 곧 조로아스터교를 믿고 불교률 모른다고 하였으나 강거국 출신의 스님들이 중국에 와 역경에 참여한 역사적 사실 등으로 보아 혜초 이전에는 이 지역에도 불교가 신봉 되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B.C. 7세기경 예언자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가 창시한 종교이다. 주신(主神)의 이름을 따서 마즈다(Nazda)교라고 하기도 하고, 불을 숭배하는 방식에 의해 배화
교(拜火敎)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천교(祆敎)라고 불렀다. 경전으로는 성 아베스타가 있으며 주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는 빛의 신으로 어둠 속에 있는 악신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와 싸우는 선신(善神)이다. 인간은 아후라 마즈다의
축복과 보호를 받으면서 악신과 싸우는데, 그 결과에 따라서 최후의 심판에서 상과 벌을 받는다고 한다. 일신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주신 아래 또 다른 선신이 있으므로 다신교적인 성격도 동시에 있다. 불을 주신의 상징으로 여기고 가장 청정하다고 믿기 때문에 성화로 여기고 불 앞에 기도하므로 배화교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바위 위에 두어 새가 뜯어 먹게 하는 장례방법인 조장(鳥葬)을 하는 풍습이 성행하였다. 창시자인 조로아스터는 30살 때 마즈다 신의 감응을 받아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받았고 42세에 왕으로부터 공인을 받아 교세를 확장하다가 77세에 생을 마감하고 죽었다.
조로아스터교는 한때 파르티아(안식) 시대에 박해를 받다가 AD. 3세기 무렵 사산조 페르시아가 흥기하면서 아르다시르(Ardeshi r) 1세 때 국교로 인정받았다. 이후 페르시아인들의
중국 왕래에 따라 중국에 전파되어 북위(北魏) 때부터 배화교를중국에서도 믿기 시작하였다.
혼인제도에 관한 근친혼의 풍습을 기록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해 일부 민족들의 근친결혼 풍습은 혈통의 순수성 보존이나 종교의 순수성을 보전한다는 명분에서 실제로 행해졌다. 또 여러 형제가 한 아내를 취하는 등 이
른바 다부일처제의 풍습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있었으며 지금도 이 풍습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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