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을 좋아하는 파사국
토화라국(토카리스탄)에서 서쪽으로 한 달을 가서 파사국 (波斯國 페르시아persia)에 이르렀다. 이 나라 왕은 이전에는 대식 (大寔, 아랍)을 지배했었다. 그때 대식은 파사국 왕의 낙타를 기르는 곳이었으나 후일 반란을 일으켜 파사왕을 시해하고 자립하여 주인이 되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도리어 대식에게 병합되어 버렸다. 옷 입는 복장은 예전부터 헐렁한 모직 적삼을 입었고 수
염과 머리를 깎으며 빵과 고기만 먹는다. 설사 쌀이
있더라도 갈아서 빵을 만들어 먹는다. 이 땅에서는
낙타와 노새, 양과 말이 나며 키가 크고 덩치도 큰 당나귀와 모직 천 그리고 보물들이 난다. 언어는 각별하여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이곳 사람들은 교역을 좋아해서 늘 서해에서 배를 타고 남해로 들어간다. 그리고 사자국(師子國, 싱할라Singhala,현재의 스리랑카)에 가서 여러 가지 보물을 가져온다. 그래서 사자국을 보물이 나오는 나라라고 한다. 또 곤륜국(崑崙國)에 가서는 금을 가져오기도 한다. 또한 배를 타고 중국 땅에도 가는데, 곧바로 광주(廣州)까지
가서 비단, 명주, 무명 같은 것을 가져온다. 이곳에는 가늘고 질 좋은 전포가 생산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살생을 좋아하며 하늘을 섬기고 불법을 알지 못한다.
원문 /혜초
譯/지안
파사(波斯)는 현재 이란에 있는 파르스 지방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혜초가 방문하였을 때 파사가 이미 대식(大寔)의 치하에 들어가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하였으나 파사라는 이름은 그대로 쓰이고 있었다고 본다. 아랍의 역사와 지리를 연구한 학자들은 파사국의 위치를 현 이란의 동북단의 마슈하드(MaashHad) 중에서 토카리스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 니
샤푸르(Nishapur)가 있는 지역으로 보고 있다.
B.C. 2세기 중국의 한 무제 때 페르시아 왕조였던 안식국(安息國,아르사케스Asaces)과 사신을 파견하는 등 내왕이 있었다.
후한 때 서역 경영을 현지에서 맡아 했던 반초(班超 32~102년)는 로마와 통교하기 위하여 안식국에 감영(甘英)을 파견했으며 안식국의 사신이 올 때 아들 반용(班勇)을 파견해 중국까지 호송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한서漢書]에는 안식국에 대해 기록하기를, 크고 작은 성이 수백 개이고 국토가 수천 리가 되는 매우 큰 나라라고 하였다. 중국에 건너와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등 선경(禪經)을 번역한 역경승(譯經僧 ) 안세고(安世高 )는 안식국의 왕자였다. 그는 왕위를 이을 세자로 책봉되기도 했으나 숙부에게
양위하고 출가해 불법을 널리 전파하고 교화업적을 크게 남겼던 고승이었다. 그가 낙양(洛陽)에 온 것은 148년으로 그 후 20
여 년간 95부의 경전을 번역하였다. 또 안현( 安玄)이 영제(靈帝 , 재위 167~189년) 때 낙양으로 와 기도위 (騎都尉)라는 관직을 받고 중국어를 배운 후 최초의 중국인 출가승으로 알려져 있는 엄불조( 嚴佛調)와 함께 불경 2부를 공역한 일도 있다.
사자국(師子國)은 현재의 스리랑카(Sri Ianka)를 말한다.사자국이라 부르게 된 데에는 전설이 있다.
남인도의 어떤 왕이 자신의 딸인 공주를 이웃나라 왕과결혼을 시키려고 좋은 날을 잡아 보냈다. 그런데 공주의 행렬이 길을 가다도중에 사자를 만났다. 공주를 시위하던 사람들은 놀라서 공주가 타고 있던 가마를 버리고 도망을 가 버렸다. 가
마에 혼자 남아 있던 공주를 사자가 업고 산속으로 들어가 사슴고기와 과일로 공주를 보살폈다. 이렇게 사자가 공주를 보살피다 몇 년 뒤 사자와 공주 사이에서 아들과 딸이 태어났다. 아들은 사람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으나 야수인 사자와 같은 성격이었고 맨손으로 맹수를 잡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나이가 든 후그는 공주였던 어머니에게 어째서 사자와 사람 사이에 자기
가 태어났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그간의 자초지종을 말하자 아들은 아버지 사자 몰래 도망갈 궁리를 하다가 아버지 사자가 멀리 사냥을 간 사이 어머니와 누이를 데리고 도망을 나와
어머니가 살던 나라로 왔으나 왕조가 이미 망하여 외가도 찾을 수없어 할수 없이 다른 데로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한편 아버지 사자는 아내와 아이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산을 내려와 가족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녔다. 그러다 사람들의 눈에 띄어 사람들이 사자를 잡으려 활이나 창으로 공격을 했다. 그러나 사자가 위낙 용맹해 오히려 사람들이 해를 입었다. 마침내 나라의 왕이 군대를 농원하여 사자를 잡게 하고 또 사자를 잡을 사냥꾼을 모집하고 사자를 잡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사자의 아들이 이 말을 듣고 아버지 사자를 잡는 사낭꾼 모집에 응해 싱금을 타서 어머니와 누이를 배고프게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아버지 사자를 죽여 상금을 받으려는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가 이를 알고 "안 된다. 사자가 야수이지만 네 아버지인데 어찌 죽일 수 있느냐?" 하고 말렸으나 아들은 사람이 동물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아버지 사자사냥에 나갔다. 사자 아버지는 숲속에 숨어 워낙 사나운 힘을 발휘
해 감히 아무도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들이 가자 아들을 만난 기쁨에 사자 아버지가 온순해지며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 사자를 죽였다.
나라의 왕이 왜 사납고 포악하던 사자가 갑자기 온순해져 죽음을 당했는지를 이상하게 생각해 사자를 잡은 아들에게 까닭을 물었더니, 아들이 사자가 자기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이 말은 들은 왕이 아무리 짐승이라도 아버지를 죽인 것은 대역무도한 일이라며 매우 노하였다. 그래서 약속대로 상금을 주되 먹을 것을 가득 실은 배에 아들을 태워 바다에 표류하게하였다. 바다를 떠돌던 배가 어떤 섬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그
섬에는 많은 보물이 있었고 또 보물을 찾아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사자의 아들은 보물을 찾아서 온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이 데려온 딸을 아내로 삼아 자식을 낳았다. 후에 자손이 번창해져서 나라가 되었는데 그 이름이 사자국이 되었다고 한다. 중세까지 이 섬을 보물섬이라 불렀다. 인도양의 진주라고 불리던 이 섬에서 중국 상선(商船)을 타고 법현이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곳을 현장의 [대당서역기] 에는 승가라국 (僧伽羅國)이라 표기하였다.
하늘을 섬긴다는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풍습에 불을 섬기는 배화교(拜火敎)를 천교라 하는데 이를 하늘을 섬긴다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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