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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견일법즉여래 不見一法卽如來 방득명위관자재 方得名爲觀自在
● 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니
● 바야흐르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는도다.
*** 육근ㆍ육경ㆍ육진을 떠나서 자성을 보게 되면 거기서는 '한 법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 불견일법不見一法'을 '한 법도 보지 아니한다'고 해석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볼 것이 있는데 안 보는 것이 되므로, ' 한 법도 볼 수 없다' 고 해석해야 됩니다. '한 법도 볼 수 없다' 고 하면 볼 사람도 없고 볼 물건도 없는, 상대가 완전히 끊어진 곳에서 하는 말입니다.
*** '한 법도 볼 수 없는 것이 여래다'라고 하여 '볼 수 없다' 는 것이 침공체적한 병을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볼 수 없다 '는 것은 참으로 제팔 아뢰야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끊어져서 쌍차雙遮가 곧 쌍조雙照인 구경적인 곳에서 하는 말입니다.그래서 '한 법도 볼 수 없는이것이 여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여래의 경계에 가서는 '한 법도 볼 수 없는 이대로가 바로 여래다' 라고도 해석이 됩니다.
*** '한 법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부정하는 것으로 쌍차이고, ' 곧 여래다'라고 하는 것은 긍정하는 것으로서 쌍조라고 해석합니다. 철저하게 부정하면 또 철저히 긍정이 되기 때문에, 이 귀절을 바로 보려면, '한 법도 볼 수 없는 이대로가 여래다'라고 해석해야 됩니다. 구름이 걷히면 맑은 하늘이 드러나듯이 여래를 쌍조로 보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 한 물건도 볼 수 없어서 일체가 탕진무애하면 참으로 청정무구함이 되어서 여기서 항사묘용이 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쌍조입니다. 쌍차쌍조이면 중도인데 그것은 관자재觀自在이니 풀어보면 보는 것이 자재하다는 것입니다.
*** '관자재'하니 꼭 관세음보살만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하기 쉬우나, 누구든지 쌍차해서 쌍조하여 중도를 바로 깨치게 되면 원융무애하고 자유자재한 진여대용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 관자재' 입니다. 즉 보타락가산에 있는 관세음보살만이 관자재기 아니라 자성을 바로 깨친 사람이 바로 관자재인 것이니 어느 특정인을 지칭해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 또한 중도를 바로 깨치게 되면 관자재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손가락을 달로 착각하여 쓸데없이 헛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공연히 언어 문자에 끄달려서는 여기에 법이 있는가 거기에 법이 있는가 하여 서둥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 그래서 내가 항상 팔만대장경 속에서 불버佛法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얼음 속에서 불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누누히 강조해 왔습니다. 얼음 속에 무슨 불이 있으며 팔만대장경의 문자 속에 어떤 부처가 앉아 있습니다?
*** 그러므로 손가락은 달이 아니므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하고 팔만대장경의 문자속에는 부처가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자성을 깨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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