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정해진 업業은 면하기 어렵다(定業難免)'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 말씀과 영가스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조 (二祖) 혜가(慧可)대사가 달마대사의 정법을 받아서 삼조 승찬대사에게 전한 뒤에,
"나는 업도 (業都)로 가서 묵은 빚을 갚으리라."
하고는 업도로 홀쩍 떠났습니다. 거기 가서 형편에 따라 설법을 하니, 한 마디를 법문(法問)함에 사부대중이 모두 귀의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기 삼사년을 지내고는 드디어 자취
를 감추고 겉 모양을 바꾸어 술집에도 드나들고 푸줏간에도 찾아가고 거리의 잡담도 익히고 품팔이도 하면서 처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호호탕탕하게 자재한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묻기를
"스님은 도인이신데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
하니, 혜가스님이
'내 스스로 마음을 조복시키기 위함이요 다른 뜻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업도에서 가까운 안현 ( 安縣)의 광구사 (匡救寺)에 변화 (辯和)법사라는 이가 있어서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혜가스님이 그 절 삼문(三門) 밖에 와서 무상정법 (無上正法) 을 설하니, 대중이 열반경을 듣다가 혜가스님 법문하는 곳으로 가버리고 변화법사의 강석에는 사람이 없다시피 되었습니다. 자기는 죽자 하고 애써서 [열반경]을 설해 왔는데 대중들이 이제 자기의 법문을 듣지 않고 혜가스님이 법문하는 곳으로 가버리니 속으로 어찌나 화가 났든지 분함을 참지 못하고 현령인 적중간(翟仲侃 )에게 가서 무고를 했습니다.
"저 중은 미친 놈이고 삿된 견해를 가진 외도 입니다. 앞으로 그냥 놓아두면 불법에만 해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도 큰 해를 끼칠 테니 저런 놈은 살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저 놈은 나의 강석
(講席)도 무너뜨렸습니다."
고 하니, 이에 적중간은 사실을 자세히 살피지도 아니하고 거짓말에 속아서 혜가대사를 목을 베어 죽여버렸습니다. 그것이 서기 593년이고 혜가스님의 당시 세수는 107세라고 합니다.
이상에서 살퍼본 바와 같이 혜가스님은 비명에 죽었으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갚는다고 했으니 빚을 갚았다고 해야 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말해야 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서는 이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흔히 전생 빚이 있어서 빚을 갚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뜻이 정반대가 되어 버립니다. 누구든지 구경각을 성취해서 자유자재한 해탈경계에 들어갈 것 같으면 업장이
본래 공해서 업보를 받을래야 받을 수 없으며 거기서는 업장을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것인데 만약 빚을 갚았다고 하면 혜가스님이 공부를 다 마쳐서 대법을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빚을 갖지 않았다고 하면 분명히 맞아 죽었으니 그것은 또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순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혜가스님을 중생들이 볼 때는 분명히 맞아 죽었지만 혜가스님이 구경각을 성취해서 업장이 본래 공하다고 하는 데 대해서는 추호도 모순이 없습니다. 만약 모순이 있다고 본다면 원융무애한 중도 정견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변견으로써 자기의 사량복탁 (思量卜度 )으로 오해하는 것이지 실제로 알고 보면 혜가스님에게는 부
족함이나 흠이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장사 잠(長沙岑)스님에게 호월공봉(皓月供奉)이라는 분이 물었습니다.
"이조 혜가스님이 빚을 갚았다 하니 혜가스님은 업장이 본래 공한 것을 모른 것이 아닙니까 ?"
"당신이야말로 업장이 본래 공함을 모르는구료."
"어떤 것이 본래 공함입니까 ? "
"업장이 본래 공함이니라."
"어떤 것이 업장입니까 ? '
"본래 공함이 업장이니라."
이 문답은 완전히 모순입니다. 업장이 본래 공함이고 본래 공한 것이 업장이라는 것이니,
이 말은 변견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업장과 본래 공함이 융통자재한 곳에서 하는 말입니다.
중생이 볼 때는 업장과 본래 공함이 둘입니다. 그래서 '이조 혜가대사가 빚을 갖았다 하면 본래 공함이 아닌 것이고 본래 공했다면 빚을 갖을 수 없다는 것이니, 이렇게 보게 되면 업장도 모르고
본래 공함도 모르는 순전히 양변에 떨어진 견해입니다 .
그런데 실제로 자기가 확철히 깨쳐서 중도를 정등각하게 되면 업장과 본래 공함이 완전히 부정되어서 업장도 놓아 버리고 본래 공합도 놓아 버려서 업장과 본래 공함이 융통자재하게 됩니
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는 업장이 본래 공함이고 본래 공함이 업장이어서 무애자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볼 때는 빚을 갚은 것 같아도 갚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본래 공함이라 하든지 업장이라 하든지간에 거기에는 추호도 모순이 없
습니다.
중생의 변견으로써는 거기에 분명히 모순이 있지만 이것은 중생의 업식망정으로 추측하는 착오된 견해이며 깨친 분상(分相)에서는 업장과 본래 공함이 둘이 아닌 것입니다.
중생이 볼 때는 아무리 빚을 갚는 것 같고 정해진 업을 면하지 못하는 것 같아도 이것은 중생을 위한 방편일 뿐, 실제로는 본래 공함 그대로이며 무애자재함 그대로라 중생이 업을 받는 것하고는 근본적으로 틀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철스님 법어집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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