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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

율곡사-87

by 돛을 달고 간 배 2006.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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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밤나무.......밤나무와 율곡사





현존 대웅전(보물374호)의 중건은 1990년 대웅전 옥개부 해체수리공사 때 내부 종도리 뱃바닥에 묵서된 상태로 발견된 ‘강희18년 기미월일 상량기(康熙十八年己未月日上樑記)’의 기록과 2002년 보수공사 도중에 전면기둥 하부에서 묵서된 상태로 발견한 기미 5월19일의 기록 및 목부재 연륜연대 측정의 결과로 보아 1679년(숙종 5)에 중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중수는 대웅전의 거의 대부분을 교체하여 면모를 일신하였던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건축 양식을 보면, 다듬은돌 바른층 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공包)는 내외3출목으로 기둥 위와 기둥사이 평방(平枋) 위에 모두 싸 올린 다포식(多包式)으로 되어있다. 첨차(첨遮)가 내외 모두 교두(翹頭)형으로 조선 초기의 양식을 이루고 있으나 외목도리를 고정시키고 있는 조각의 모양으로 보아 조선 중기의 건축이 틀림없다. 정면 창호는 팔각불발기와 띠살을 혼합한 특이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현재 보물 제374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은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대세지 보살상이 협시하는 삼존상인데 조선 전기에 대웅전 건축과 동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본존불상 상대 대좌 뒷면 중앙 명문에 불상이 1746년(영조 23)에 상금(上金)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대웅전 중수기록과도 일치한다.그 밖에 후불탱과 신중탱이 있다.



산청율곡사목조아미타삼존좌상(경남유형문화재373호)

본존인 아미타여래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이 자리하고 있다.
삼존불의 크기는 1m 이상의 사람 키만한 불상으로 자세는 등을 세우고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의 반가부좌상으로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는 모습이다.


아미타여래상의 머리는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표현하였고 나발의 표현이 촘촘한 편이다.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턱선을 비교적 둥글게 처리하였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서로 조화를 이룬다. 짧은 목 아래로 삼도를 뚜렷이 표현하였다.

율곡사괘불탱(보물1316호)

화면 가득 보살형의 인물만을 단독으로 그린 그림으로, 가로 475㎝, 세로 827㎝ 의 크기이다.

이 보살형 인물은 머리에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중앙에는 5구의 작은 화불이 모셔져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치켜 뜬 듯한 눈썹과 긴 코, 작은 입, 적당히 큰 귀 등 이목구비가 매우 단정하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옷은 부처가 입는 법의 형태로 속옷의 끝단과 소매자락, 윗부분 등에 걸쳐 여러 형태의 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겉옷의 왼쪽 아래 끝자락을 황금색실을 이용하여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두 손으로는 흰색과 붉은색의 꽃송이가 피어난 연꽃가지를 들고 있으며, 당당한 양 어깨 위로는 귀를 감싸고 흘러내린 머리칼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넓은 가슴에는 큼직한 연꽃을 매단 가슴장식이 되어 있고 국화모양의 귀고리를 하고 있으며, 연꽃 받침을 딛고 서 있는 두 발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바탕의 좌우로는 8열로 대칭되게 모란꽃이 그려져 있는데, 녹색 잎사귀에 붉은색, 흰색, 분홍색, 회색, 주황색 등 다양한 꽃색을 하여 화면의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조선 숙종 10년(1684)에 그려진 이 그림은 화면 아랫쪽에 화기(畵記)가 마련되어 있어 이 그림을 그린 사람과 조선 영조 5년(1729) 중수된 기록까지 확실히 알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인물의 두 발 사이에 왕과 왕비와 세자의 안녕을 기원하는 글이 있는데, 이는 다른 괘불탱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반적인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단정하고 세련된 필선과 우아하고 균형 잡힌 신체비례, 호화로우면서도 안정감 있고 조화로운 색채, 다양하고 섬세한 문양 표현 등이 매우 뛰어나 17세기 불화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대웅전 앞에 새롭게 조성한 5층석탑으로 일명 관음보탑(觀音寶塔)이라고 부른다. 한 돌로 이루어진 이중기단 위에는 탑신을 5층으로 쌓았는데, 탑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형태가 가늘고 길게 세장(細長)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율곡사

율곡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전하는 사적이 없어 확실한 연대를 밝히기 어려우나 절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삼국시대인 651년(진덕여왕 5)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통일신라시대인 930년(경순왕 4) 감악조사(感岳祖師)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창건이후 고려시대의 내력은 전하는 것이 없으나 대웅전 기단 앞에 고려시대 유물로 생각되는 석조물이 남아 있어 당시에도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율곡사는 척지산에 있다.(栗谷寺在尺旨山)”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계속 유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기록을 통해 현재의 정수산은 예전에 척지산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전국의 많은 사찰이 불타버렸는데 율곡사의 피해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2002년의 보수공사에서 목부재의 연령측정 결과 1592년 이전에 벌채된 것이 없는 점과 대웅전 바닥 하부에서 출토된 탄화 목편과 불탄 와편(瓦片)으로 보아 임진왜란으로 인해 대웅전이 소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통: 산청-원지-율곡사

단성I.C-산청방면-원지-율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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