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길을 걷듯이
그렇게 빼어남이 없어 보이는
외진 산자락에 암자가 있었네.
누구를 기다리지도 않으리?
단지 찿는 이 만을 반길 뿐
운취와 풍광은 너무도 평범함에서
우러나는 것임을 오늘에 알았다네.
암벽과 암자....조화를 이룬다.
내 모든 것을 바치어 승화되고......날아 오르고 싶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공간이다.
멀리 내려다 보면....많은 것이 보일까?
정취암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연꽃무늬로 장식된 대좌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좌상이다. 1996년에 개금하였으며, 현재 보관상태는 전체적으로 매우 양호한 편이다. 정취암은 의상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관음성지로 유명하다.
이 불상은 불신(佛身)과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낮은 대좌가 하나의 목재로 조성되었다. 자세는 등을 세우고 머리부분을 약간 앞으로 내민 모습의 가부좌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은 중앙에 큰 화불과 앞뒤로 불꽃무늬 장식이 달려 있으나, 후대에 따로 만들어 부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관 턱 아래의 머리카락은 간략히 표현하였고, 정수리에서는 두 갈래로 나누어 뒤로 말아 마무리하였다. 얼굴은 네모 반듯하며 턱이 둥근 형태이고 가늘고 긴 눈, 완만한 콧등, 입술 양끝에 양감을 주어 미소를 머금은 모습 등이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짧은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를 얕게 표현하였다. 옷은 양 어깨를 모두 덮은 두꺼운 대의(大衣)를 입고, 오른쪽 어깨에 반단을 걸쳤으며, 가슴 아래에 수평의 군의(裙衣)가 보이는데 꽃잎형으로 주름진 모습이다. 옷주름선은 대체적으로 간략한데, 반가부좌하여 드러난 오른발 밑으로 보이는 군의자락을 종아리와 평행하게 드리운 것이 특징적이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웠고, 오른손은 종아리 위에서 살짝 들고 왼손은 오른발 위에 놓았는데, 양손 모두 제1지와 제3지를 구부려 맞대고 있다.
규모는 50㎝ 정도의 크기로 안정감이 있고 단아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산빛이 푸르고, 절 찿는 길 손은 잠깐의 여유로움을 즐기네.
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고아일심 귀명정례
지극한 마음으로 이 생명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 가고파.
맞닿은 기와 모양
멀리 산청 들녘이 보인다.
탱화란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 법당에 걸어둘 수 있게 만든 불교그림을 말한다.
정취암에 보존되어 있는 이 그림은 산신을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150㎝, 세로 150㎝이다. 일반 탱화에서는 산신이 호랑이 옆에 앉아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어딘가로 행차하는 모습이며, 그 양옆으로 그를 따르는 동자를 표현해 놓았다.
돋보이는 필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제작 연대는 조선 순조 33년(1833)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취암은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대성산(大聖山)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하여 정결한 아취가 물씬 풍기는 절이다.
686년(신라 신문왕 6)에 창건된 고찰로, 동해에서 장륙금신(丈六金身)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조사(義相祖師)가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 정취암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래서인지 상서고운 기운이 감돌아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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