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희 작가는
경주에서 태어났다. 200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이 당선되었다. 첫소설집 "고래의 맛" 장편소설 "유니폼"을 썼다. 2018년 경남소설 제1회 작가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유니폼은 2019년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고, 2021년 창원의 책 후보 도서로 추천되었다.

⛱️⛱️ 발골사의 이야기
박영희 장편소설 사바끼는
첫째 어떤 직업에서든지 그 직업을 꿰뚫는 혜안을 가진 이는 남다른 노력이 있다라는 점을 들려주고,
둘째는 불가촉천민과 같은 하층 인생을 산
백성들도 소중한 인권이 있다는 걸 넌지시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발골의 세계를 예술로 승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단련시키는 장면이 압권이라 할 만 합니다.
🌐🌐1. 직업적 혜안과 남다른 노력
'사바끼(발골)'라는,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고 거친 세계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장인(匠人)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떤 분야든 한 분야를 '꿰뚫는 혜안'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간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몰입이 필요함을 주인공의 삶을 통해 증명해 보이는 과정은 이를 통해 독자에게 숭고한 노동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만듭니다.
삼촌이 소주병을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익은 고기를 뒤집은 뒤, 삼촌이 따라준 술을 단숨에 마셨다.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알코올이 가슴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까지 희석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넘겼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때다."
삼촌은 내 고민을 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서 잘 익은 고기를 앞접시에 자꾸만 가져다 놓는다. 솣불에 익은 두툼한 목살이 장난 아니게 맞있었다. 소금만 뿌렸는데도 입안에서 터지는 육즙이 기대 이상이었다.
"진짜 고기 좋은데요?"
"이 집이 아마 오십 년도 더 되었을 거야. 지금 사장의 어머님 때부터 했으니까."
"이런 촌구석에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맛이 승부를 좌우하는 건 맞는가 봐요."
'먹고사는 시대를 지나 즐기는 시대잖아. 맛집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지, 그러니까 정직하게 장사해야 돼. 그게 오래도록 단꿈을 만드는 법이야."
2. 하층 인생의 소중한 인권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백정이나 도축업, 발골의 세계는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오랜 차별과 편견에 직면해 왔던 거친 밑바닥 삶입니다. 작가는 이를 자극적이거나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묵묵하고 담담하게 따라가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인권'을 넌지시, 하지만 아주 묵직하게 전달합니다. 외면받던 이들의 삶에 중심 서사를 부여한 것 자체가 거대한 인권의 메시지인 셈입니다.
"아버지에게 맞춘 칼이라고요??
"몰랐나? 아버지가 마장동 발골사들의 칼도 맞춰주고, 무딘칼을 손질도 해주는칼 전문이었는데."
"아버지가 마장동에서 칼을 다루었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관심과 대화가 없었다는 뜻이다. 아버지와 따뜻한 일상의 대화조차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지난 날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칼은 주인을 닮아가니 처음부터 길을 잘들여야 한다. "
삼촌에게 받은 칼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으니, 얼마전 마장동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3. 압권(壓卷): 발골의 세계를 예술로 승화시키다
"칼끝이 뼈와 살의 미세한 경계를 찾아 흘러갈 때, 그것은 도축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이자 예술이 된다."
는 문장은 이 작품의 진짜 백미가 되는 부분입니다. 피와 살이 튀는 거친 도축의 현장이, 주인공의 고도의 집중력과 단련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하나의 '예술적 행위'로 탈바꿈하는 순간들은 독자에게 전율을 줍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한 기술을 넘어,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칼을 쥐는 과정은 수행(修行)과 닮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상처받은 삶을 치유하고 영혼을 단련시키는 모습은, 거친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위로와 울림을 줍니다.
축산물시장 깊숙이 들어서자 공기의 질은 입구 쪽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비릿하면서도 본성대로 익어가는 농염한 꽃들의축제였다. 무르익은 단내가 발길을 붙잡는 게 입구 쪽보다 노골적이다. 끈적거리는 기름기는 신발 창에 썩썩 들러붙는다. 과감하게 유혹하는 적극적인 구애가 싫지 않다.
잘 숙성된 꽃이 어디에 있는지 정육점들마다 기웃거린다. 붉은 꽃들의 색깔은 엇비숫해도 마블링과 육질은 이름만큼이나 다르다. 어떤 꽃이 치명적인 맛인지 선택하기가 망설여진다. 유혹
하는 꽃에 대한 예의는 본능에 따르는 것이다. 이 기분대로라면 숨죽여 있는 미각들이 화들짝, 깨어날 꽃들을 무더기로 쟁여놓고 혀가 지치도록 씹고 싶을 뿐이다.
'와, 끝내주는데?"
되바라지도록 농익은 꽃들을 보며 깊은 속내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이곳은 딱 한 점만 씹어도 육향에 매혹되는 맛의 향연장이었다. 유혹에 넘어가도 아주 단단히 님어간 꼴이다. 언제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이 있었나. 이렇게 후끈, 달아오르는 뜨거움이 필요해서 이곳에 온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붉은 꽃밭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여학생들이
잔뜩 탄 버스에 올라탄 소년의 심정이었다. 뒤돌아서지도 나아
가지도 못할 만큼 강렬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심호흡을했
다.폐 깊숙이 들어온 농익은 육향은 단번에 전신을 휘감는다.
혀끝에 남은 육즙의 기억은 거침없이 추억을 쏟아낸다. 건하
게고인 입안의 침을 삼키자, 꽃들의 꿈틀거림은 더욱 거세진다.
귀에선 지글거림으로, 코끝엔 담백한 단내까지 맡아진다.
🌐🌐 소설 《사바끼》를 단순한 '이색 직업 소설'로 치부하지 않고, 노동의 가치, 인간의 존엄, 그리고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의지라는 세 가지 거대한 축으로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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