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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독서후기 2026-38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신영복 옥중서간

by 돛을 달고 간 배 2026.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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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틀리다, 맞다. 또는 다르다, 같다. 인간들은
살아오면서 수많은 생각과 행동을 축척하였고, 이러한 사고들이 축적된 결과 그 선두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이분법적 사고이고, 이 이분법적 사고는 무수히 많은 옳다는 병을 전념시켰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순간, 자신은 옳다는 병마 속으로 빠져야 되는 순간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 옥살이 또한 다름을 인정치 않는 자들에 의한 일방적 학살이라 볼 수 밖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름을 통하여  고독한 환경을 헤쳐 나간 자양분을  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서 나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봄을 기다린다.
천장과 벽에 얼음이 하얗게 성에져서, 내가 시선을 바꿀 때마다 반짝인다.
마치 천공(중소)의 성좌(보품) 같다. 다만 10와트 백열등 부근 반경 20센터미터의 달무리만 제외하고 온 방이 하얗게 얼어 있다.
1월 22일 3호실로 전방(轉房)되어 왔다.
방안 가득히 반짝이는 이 칼끝 같은 빙광(氷光)이 신비스럽다. 나는 이 하얀 성에가. 실은 내 입김 속의 수분이 결빙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내뿜는 입김 이외에는 얼어붙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천공의 성좌 같은 벽 위의 빙광은 현재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세계 이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이 빚은 더욱 날카롭게 서슬이 서는 듯하다. 나는 이 빙광이 날카로워지면서 파릇한 빛마저 내뿜는 때를 가장 좋아한다.
그저께는 바깥 날씨가 많이 풀린 모양인지 이 벽의 성에가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지렁이처럼 벽을 타고 질질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흡사 '시체 처럼
처량하고 징그럽다. 지렁이의 머리점에 맺힌 물방울에서 흐릿한 물빛이 반사되고 있기는 하다. 흐릿하고 지루한 빛을 둔하게 반사하면서 느릿느릿 벽을 타고 기어내린다. 그것도 한두 마리의 지렁이가 아니라, 수십 마리의 길다란 지렁이가 거의 같은 속도로 내려올 때 나는 공포를 느낀다. 끈적끈적한
공포가 서서히 나를 향해서 기어오는 듯한 느낌이 눈앞의 사실로 다가온다.
이런 축축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나는 어서 기온이 싸늘히 내려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방안 가득히 반짝이는 그 총명한 빙광을, 그 넓은
성좌를 보고 싶다,
그 번뜩이는 빛 속에서 냉철한 예지의 날을 세우고 싶다.



♨️♨️♨️ 책 속에서
신영복 작가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감 생활 동안 가족들에게 보낸 서간(편지)들을 묶은 책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저자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과 질서를 바탕으로 매우 깊이 있게 서술되어 있다.
유교적 가치관의 핵심인 효(孝), 가문의 연대, 그리고 전통적 역할과 질서라는 관점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짚어보자.
1. 부모님: '효(孝)'의 도리와 마음의 천지(天地)
유교에서 부모는 자식의 근본이자 하늘 같은 존재입니다. 신영복 작가 역시 옥중에서 끊임없이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과 불효에 대한 자책을 드러냅니다.
정신적 기둥인 아버님: 아버님과는 주로 지적인 교류와 사색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저자는 감옥 안에서 『대학』, 『중용』 같은 유교 경전을 정독하며 그 안에서 찾은 깨달음을 아버님께 고백하는데, 이는 유교적 전통에서 아버지가 자식의 학문적·정신적 스승 역할을 해온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태산 같고 하늘 같은 어머님: 저자는 편지에서 어머님을 "불안한 처(妻) 대신 제게 태산 같은 어머님이 계시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행복"이라 표현하거나 "어머님의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는 하늘"이라고 서술합니다. 자식을 감옥에 보낸 고통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은, 유교적 모성(母性)의 숭고함과 포용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자식이 장성하여 스스로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곧 '효의 완성(입신양명)'이라 믿었던 저자는, 자신이 감옥에 갇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는 상황 자체를 유교적인 의미의 큰 불효로 인식하며 늘 죄송함을 전합니다.

옥중 열여닭번째의 세모에

부모님께

아버님의 하서와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아비님의 저서도 쉬이 출판
되어 우송되어 올 때가 기다려집니다.

이곳 교도소 주위를 병풍 두르고 있는 뒷산에는 첫눈 때부터 지금껏 눈이 하얗습니다. 산설(山雪)은 녹지 않고 어는가 봅니다.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면 거기 하얗게 쌓여 있는 눈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서늘하고 냉정하게 만들어줍니다.

눈은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를 너그러이 덮어주는 듯하면서도 반면에 드러내야 할 것은 더욱 뚜렷이 드러냅니다. 눈은 그 차가움만큼이나 냉엄합니다.
옥중에서 맞이하는 열여넓번째의 세모입니다. 세모는 제게 있어서 흡사 푸짐한 강설 (降雪) 같습니다. 연간백사(年間百事)를 너그러이 덮어주는가하면. 무섭도록 뚜렷이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세모가 되면 저는 상심하실 어머님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굿은 날은 나막신 장사하는 아들을 생각하고 갠 날은 짚신 장사하는 아들을 생각키로 하여 근심을 달래던 옛날 어머님의 고사(故事) 처럼 아무쪼록 스스
로 심기를 유장(悠長)하게 가꾸어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는 아버님, 어머님을 비롯하여 온 기족이 모두 강건하시길 빌며 세배에 대(代)합니다.

1985년 세모에.

2. 형제와 계수(동생의 아내): 가문의 연대와 우애(友愛)
유교에서 형제간의 우애는 효의 으로. 저자가 갇혀 있는 동안 집안을 지키고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남은 형제들의 몫이 남았다.
편지 속 형제들은 큰아들의 '딴집살이', 셋째의 '직장살이', 그리고 저자의 '감옥살이'로 표현되며 모두 부모 곁을 떠나 있는 형국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모습에서 유교적 '가문(家門)' 중심의 강한 연대감이 나타납니다.
'계수님'에 대한 격려와 예(禮)와 동생의 아내를 '제수'가 아닌 높임말인 '계수(季嫂)님'으로 칭하며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편지를 보냅니다. 감옥에 있는 시형(媤兄)으로서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고생하는 계수님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고 위로하는 모습은, 유교적 가족 구조 안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서열과 역할을 존중하며 맺는 서사적 관계를 잘 보는 주는 모습이라 할 수 있고.
'출가외인'이 된 누님들은 전통적 질서의 반영
유교적 전통 가족관의 단면이 서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대목도 있습니다.
저자는 편지에서 "출가하여 이미 외인(外人)이 된 누님들의 일까지 아울러 생각해보면…"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결혼하여 다른 가문의 일원이 된 딸을 '외인'으로 거론하는 것은 조선 시대 이후 고착화된 가부장적 유교 질서와 친족 관념이 저자의 사유와 언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형수님께
하얗게 언 비닐 창문이 회미하게 밝아오면, 방안의 전등불과 바깥의 새벽빛이 서로 밝음을 다투는 짤막한 시간이 있습니다.

이때는 그럴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더 어두워지는 듯한 착각을 한 동안 갖게 합니다. 칠야의 어둠이 평단(平旦)의 새 빛에 물러서는 이 짧은시
간에, 저는 별이 태양 앞에 빛을 잃고, 간밤의 어지렵던 꿈이 찬물 가득한 아침 세숫대야에 씻겨나듯이. 작은 고통들에 마음 아파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청산하고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생각에 잠겨봅니다.

큰 추위 없이 겨울을 나자니 막상 돈을 다 치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남습니다. 어제는 보름이었습니다. 창살 격하여 보는 달은 멀기도 하여, 불질러 달을 맞던 마음도 식어서 달력 짚어볼 생각도 없었던가 봅니다.
1982. 2. 9.


이런면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속 가족은 단순히 개인적인 애정의 대상을 넘어, 효와 우애, 예의라는 유교적 덕목을 실천하고 확인하는 도덕적 공동체로 그려집니다. 신영복 작가는 가혹한 수감 생활 속에서도 유교 경전을 읽고 사색하며, 가족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다움의 본질을 유지하고 버텨낼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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