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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독서후기 (2026-34) 한이리 장편소설/게르니카의 황소

by 돛을 달고 간 배 2026.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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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리
1979년에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했다. 2005년 KBS 극본 공모, 2010년 방송콘텐츠진흥재단 미니시리즈 극본 공모에 당선되었다. 2017년 게르니카의 황소로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스토리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한이리 작가의 "게르니카의 황소"는 예술과 파괴, 그리고 인간 내면에 도사린 괴물 같은 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심리 스릴러입니다. 특히 칼 번햄과 케이트 번햄 부녀의 '이중인격(혹은 이중성)'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누구나 이중성을 감추고 있어요. 그것이 심하게 나타날 때, 낮과 밤이 틀어지고 내 안의 내가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것이지요. 조작된 허구가 실제인 듯 자신마저 속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작품의 그조인 듯 하네요.
🍎🍎

워즈 아일랜드의 커비 법정 정신병원에 감금된 어머니는 계속해서 날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신성한 임무를 미완성으로나마 완성하기 위해 침대 시트를 뜯어 목을 맺다. 당시 커비 정신병원의 부원장이었던 닥터 칼 번햄이 내 양아버지가 되어 내가 케이트 번햄이란 이름을 갖게 된 건 이런 믿지 못할 일련의 사건들 때문인 것이다. 아니, 내가
'믿는' 사건이라 해야 할까? 왜냐하면 이건 양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짜 맞춰 내 멋대로 재구성한 것으로, 정작 난 그사건이 일어난 무렵인 열 살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하며 한국인으로 살았을 십 년간의 어떤 기억도 내겐 남아 있지 않다. 가끔씩 마주치는 한글 간판이나 글귀들은 내게 아랍어만큼이나 생경한 무늬들에 불과하다. 심지어 내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나는 잊었다.

🍎🍎완벽한 가면과 숨겨진 균열
작품의 시작점에서 칼 번햄과 케이트는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이상적인 부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칼 번햄: 세계적인 예술가이자 자애로운 양아버지. 그는 지적이고 세련된 예술계의 거물로서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타인의 고통을 예술적 영감으로 착취하는 냉혹한 관찰자가 숨어 있습니다.
케이트 번햄: 칼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 순종적이고 아름다운 딸. 그러나 그녀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아가 파편화되어 있으며, 칼이 설계한 '인형'으로서의 삶과 본능적인 파괴 욕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합니다.
이중성의 시작: 칼은 케이트를 단순한 딸이 아닌,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할 **'살아있는 작품'**으로 대하며 그녀의 이중성을 교묘하게 통제합니다.

나의 진짜 첫 기억은 <게르니카>를 처음 보았던 순간이다. 열한살 때 번햄 가족 여름휴가로 떠난 스페인 여행 중 들렸던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게르니카는 눈이 마주친 그순간 곧
장 달려든 고래처럼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집어 삼켜버렸다.
그 그림의 어떤 부분이 날 그토록 사로잡았던 걸까? 내 몸의 세배에 달하는 높이와 어른 열둘이 나란히 서도 다 가리지 못할 만큼 거대한 크기였을까? 혹시 그림 속에 누워 절규하는 머리 잘린
시체가 친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던 걸까? 아니면 램프를 치켜든 여자의 단호한 얼굴이 부억칼을 들고 달려들던 순간의 친어머니를 닮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 아래 몸을 웅크리고 도주하는 여자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내 생명을 창조한 이가 그것을 도로 거두려 하는 악몽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넋 나간 그 텅 빈 얼굴을? 모르겠다. 그저 나는 고래 뱃속의 요
나처럼 그림에 불들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널 지키기 위해서 난 세상 무엇과도 맞서 싸울 거다. 그게 심지어 너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다 결국 널 잃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미 잃었는지도 모르지만.."
날 바라보며 눈물 짓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눈에서도 지금 눈물이 흐르고 있다.
아. 지금이라도 아버지에게 전화해야 할까?
더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냐. 아직은, 아직은 안 된다.
아직은 멈출 수 없다. 이러다 결국엔 완전히 미쳐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에린이라는 그림자에 완전히 잠식당할지 모른다는두려음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데도 여기서 멈추면 평생을 후회
하게 될 것 같다.

🍎🍎솟구치는 광기와 통제의 붕괴
사건이 전개되면서 두 사람의 내면에 감춰진 '황소(폭력성과 광기)'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칼의 폭주: 칼은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살인과 파괴도 서슴지 않는 소시오패스적 면모를 본격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속 황소처럼, 질서 속에 감춰진 근원적인 폭력을 예찬하며 케이트의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입니다.
케이트의 각성: 억눌려 있던 케이트의 또 다른 인격 혹은 본능이 깨어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칼의 수동적인 피사체로 남기를 거부합니다. 칼이 심어놓은 공포를 자신의 무기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부녀 관계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대결로 변모합니다.
이중인격의 충돌: "자애로운 아버지 vs 살인마"라는 칼의 이중성과 "순진한 딸 vs 냉혹한 생존자"라는 케이트의 이중성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극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알고 있었잖아.'게르니카 황소'가 바로 칼 번햄이란 걸."
내 의식은 순식간에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졌다. 그중 어느 갈래의 의식 속에서 나는 에린의 말이 맞다는 것을, 내가 그 무서운 비밀을 내내 알고 있었다는 것을, 결코 한 번도 있은 적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른 갈래의 의식 속에서 나는 에린이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그녀가 나 자신이기 문이라는, 여러 조각으로 포개진 내 자아 중 하나이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다른 갈래의 의식 속에서 그것 또한 내가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

넌 그걸 애써 모른 척하려 했지. 그 뿔 달린 괴물을 아버지가 아닌 진짜 황소라 믿으려 했지." 에린이 쓴웃음을 지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그가 이 세상에서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괴물이 네가 가진 전부, 온 세상이었으니까.
그래서 넌 그 괴물을 사랑하기로 했고 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날 만들어냈던 거야."

🍎🍎

내가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을 때 에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와 동갑이었다는 소녀, 생일 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네 사소한 탐욕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 그 소녀." 어느새 보조석에 않아 있던 에린이 말했다. "그녀는 네 안에서 너와 함께 나이를 먹었어. 그리고 네가 성공을 위해 불러낸 인격인 내가 폭주하자 감시
자인 세 번째 인격으로 나타난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겠어. 넌 내 분노였고 수잔은.."내가 시동을 걸며 중얼거렸다. "내 죄책감이었어."
에린이 대시보드에 울린 커다란 두 발을 춤추듯 까딱거렸다.
"그리고 내가 그 징징거리는 약해빠진 걸 죽여버렸지!" 에린이
미소 면 얼굴로 내게 윙크했다. "이젠 네가 그 개자식을 죽일 차례야."
그래서 나는 곧 내가 살인하게 될 것임을 알았다.

🍎🍎파멸을 통한 '게르니카'의 완성
결말에서 두 사람의 이중성은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습니다.
가면의 해체: 칼 번햄은 결국 자신이 창조하고 통제하려 했던 케이트라는 '작품'에 의해 파멸을 맞이합니다. 그가 평생 유지해온 고상한 예술가의 가면은 처참히 찢겨 나가고, 오직 추악한 본성만이 남게 됩니다.
새로운 괴물의 탄생: 케이트는 칼의 지배에서 벗어나지만, 그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그녀는 칼이 가진 폭력의 유산을 흡수하거나 혹은 그를 뛰어넘는 또 다른 존재로 거듭납니다.
작품의 의미: 결국 두 사람의 이중인격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내재한 '창조와 파괴의 공존'을 상징합니다. 아버지를 파괴함으로써 딸이 진정한 (혹은 뒤틀린) 독립을 쟁취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다.” 피카소의 말처럼, 이 소설은 번햄 부녀의 거짓된 삶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진실을 폭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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