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두화상-2
나융이 물었다.
“마음에 이미 모두가 구족하다면 어떤 것이 마음이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4조가 대답했다.
“마음이 아니면 마음을 묻지 못할 것이요, 마음을 물으면 마음이 아닌 것이 아니니라.”
또 물었다.
“관행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경계가 일어날 때에는 어떻게 대치對治하리까?”
조사가 말했다.
“경계의 반연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좋고 나쁨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마음에 굳이 이름 짓지 않으면 망정妄情이 어디서 일어나랴?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으면 참마음이 마음껏 두루 알아서 마음을 따라 자유자재할 것이요, 더 이상 처음도 끝도 없으므로 상주법신常住法身은 아무런 변역變易도 없다 하느니라.
내가 나의 스승 승찬僧璨 화상에게서 이 돈오법문頓悟法門을 받았는데 이제 그대에게 전하나니, 그대는 잘 받아 지녀서 나의 도를 실현시켜라. 이 산에서 살기만 하면 뒷날엔 다섯 사람이 그대의 뒤를 이어 끊이지 않게 되리니, 잘 간직하라. 나는 떠나리라.”
이 말씀에 선사(나융)는 옥의 티 같은 번뇌가 갑자기 몽땅 없어지고, 모든 상이 영원히 없어지니, 이로부터는 신령스런 귀신이 공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이것으로써 살피건대 여래의 비밀한 뜻이 어찌 닦아 증득함으로써 능히 조사의 뒤를 이어 나란히 하겠으며, 현묘한 문에 어찌 고요함만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말을 여의고 이치에 계합하여 현요玄要에 집중한다는 것도 하늘과 땅[雲泥]57)의 차이고, 고요한 생각으로 근원으로 돌아가 선추禪樞를 바람도 초楚와 월越과 같이 멀기만 하다.
나융이 다시 여쭈었다.
“무릇 성인은 어떤 법을 끊었으며, 어떤 법을 얻었기에 성인이라 불립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한 법도 끊지 않고 한 법도 얻지 않나니, 이것을 성인이라 하느니라.”
다시 여쭈었다.
“끊지도 않고 얻지도 않으면 범부와 무엇이 다릅니까?”
“다름이 있느니라. 왜냐하면 범부는 모두가 끊어야 할 허망한 계교[妄計]가 있다고 여기고, 얻어야 할 참마음이 있다고 여기지만, 성인은 본래 끊을 것도 없고, 또 얻을 것도 없다고 여기니, 그러므로 다르니라.”
또 여쭈었다.
“어째서 범부는 얻을 것이 있다 하고, 성인은 얻을 것이 없다 하십니까? 얻음과 얻지 않음에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차이가 있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범부는 얻을 것이 있으니 허망함이 있고, 성인은 얻을 것이 없으니 허망함이 없다. 허망함이 있으면 차별이 있고, 허망함이 없으면 차별이 없느니라.”
다시 여쭈었다.
“차별이 없다면 성인이란 이름이 어찌하여 생겼습니까?”
조사가 말했다.
“범부와 성인 둘 모두가 거짓 이름이다. 거짓 이름에 둘이 없다면 차별이 없는 것이니라.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라.”
또 여쭈었다.
“성인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 같다면 마땅히 없는 것이리니,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배우게 합니까?”
조사가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거북의 털이지 거북까지 없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대는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가?”
나융이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면 거북은 무엇에 견주었고, 털은 무엇에 견주었습니까?”
조사가 말했다.
“거북은 도에 견주었고, 털은 나[我]에 견주었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은 나가 없고 도만 있으며, 범부는 도는 없고 나만 있다. 나에 집착하는 자는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으니라.”
이어 지엄智嚴에게 법을 전하니, 현경現慶 원년元年이었다. 사공司空인 소무선蕭無善이 건초사建初寺로 나오시기를 청했는데, 조사가 사양하다가 못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지금 떠나면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할 것이니라.”
산문을 지나자마자 짐승들이 슬피 울며 한 달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았고, 산골의 못, 개울, 우물에는 자갈과 모래가 솟아서 일시에 메워졌고, 뜰 앞의 오동나무 네 그루가 5월에 번성하더니 하루아침에 모두 말랐다.
조사가 현경 2년 정사丁巳 윤 정월 23일에 건초사에서 입적하니, 춘추는 64세요, 법랍은 41세였다. 27일에 장례를 지냈다. 탑은 금릉金陵 뒤 호수의 계롱산溪籠山에 있으니, 곧 기사산耆闍山이다.
이로부터 우두종의 여섯 가지가 생겼으니, 첫째는 융融 선사요, 둘째는 지암智巖이요, 셋째는 혜방慧方이요, 넷째는 법지法持요, 다섯째는 지위智威요, 여섯째는 혜충惠忠이다.
출처: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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