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세라 시인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1년 "시와반시 등단하고
시집으로 "복화술사의 거리",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가 있다.
clickpink@hanmail.net


🌐🌐🛶🛶
콜센터 유감이란 시집이 눈에 들어온다. 확 들어온다.
제목부터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지금은 아니지만 젊을 때의 비감한 기억이 소환된다.
첫 장을 넘긴다.
세라의 시급이란 시詩이다.
세라의 1시간은 75리터 종량제봉투 다섯 장 값과 같고
세라의 1시간은 미국 본사 CEO의 0.6초와 같고
75리터 봉투 한 장의 가격도 1800~2200원 전국적으로 차이가 있다. 현실이 시이기도 하고, 시를 떠나기도 한다. 75리터 다섯 장이면 만원에 가깝다.
만원의 100배가 조(CEO)의 시급이니 백만원인 셈이다. 이보다 훨씬 많기도 할 것이다.
0.6초의 우주와 한 시간의 우주는 다를가? 우주는 같다고 한들 너와 나의 차이는 천지현격이구나 싶다.
참 가슴에 남겨지는 시어詩語라 할 만하다.
뒷장을 넘긴다.
로라와 편의점과 나라는 시가 씌어져 있다.
근무수칙 3. 폐기 음식
점주님은 배고플 때 두어 개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물류가 들어오거나 손님이 있을 때 우물거리면 안 됩니다
명심하세요,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먹는 업무가 아닙니다
한번만 더 그러면 당신의 유통기한이 정해질 겁니다
로라와 인수인계하는 시간이 좋다 내가 불빛이라면
온 세상이 정전돼도 로라의 얼굴을 비춰줄 텐데
유통기한 따위 없이
몇년전 교대제 경비업무를 하고 있을 때, 바로 옆편의점 점장은 항상 폐기 한시간을 앞두고 도시락을 경비실에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드시겠냐고 묻고서 두고 갔었다. 폐기 시간이 지나면 아무 쓸 가치가 없어지는 편의점 음식들, 그 폐기된 음식이 배고픔으로, 때로는 아까운 마음으로 편의점 직원과 말없는 다툼을 한다.
💥🌐💥 남의 빈 자라를 채우려 떠납니다.
빈칸
우리는 모여 병째 들이켰다 무너진 담벼락 아래 서서
공모전 낙선작같이
어둠도 되지 못한 찌꺼기들이 발밑에서 붐비는 걸 조금
보다가
비틀거렸고
끝내 엉덩이가 땅에 닿았다
마지막 밤이었다 여기서 월급을 받는 인간으로는
쥐 한 마리가 하수구에 들어가려다 좁았는지 다른 데를
쑤석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쥐를 쫓는 개처럼 열심히 뛰었으나
찢겨서 흩뿌려진 이력서처럼
미세먼지를 통과한 더러운 눈이 흩날렸다
다가오는 봄은 겨울의 연장전일 뿐이고
우리는 겨울을 초과했지만 봄에는 미달했고
라면 상자에 지난 세월을 담아 귀가해야 했고
1년 8개월
2 년을 채우진 못했습니다 우리 자리는 결핍되었고요 곧
누군가 들어오겠지만
모든 계절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중이었다
사장은 빈칸을 채우느라 사람들을 줄 세울 테고
우리는 또다시 타인의 빈칸에 들어가야 하겠지만
💥💥🌐🌐긍정과 부정이 대립되지 않으면서 묘하게 꼬집는 세태의 언어.
1년 8개월은 누군가 다가와도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데,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그저 안고서 가고 있네요. 2년이 채워지길 그것이 행복의 색칠이 되듯이요. 하지만 원망하지 않을래요. 빈칸은 찾으면 있으니까요.
🌐🌐 잠든 시간에도
4시 40분 AM
새벽이다 나는 희미한데 새벽은
다음 새벽으로 겹겹 이어지고
나는 더 희미해져서 자전거 핸들을 놓칠 뻔하고 그림자를 쏟을 뻔하고
언제부터를 아침이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를 무렵에
페달 밟는 일을 그만두고 자전거를 끌면서 간다
자전거가 구르는 반대 방향으로 차갑게 더 차갑게
손이 식는 새벽인데
저만치서 146번 버스 세 대가 잇따라 온다
세 대가 동시에 닿는다 노원과 중랑을 지나
강남 테헤란로에 청소하러 가는 승객들
얼굴들, 희미하고 둘레가 꺼질 것 같은 얼굴들이
차곡차곡 들어찬다
골목 식당마다 납품 무 배추가 들어가는 시각에
나는 모퉁이를 돌아
자전거에 기대어
깡충거미같이 발걸음을 옮긴다
저만치서 같은 번호의 버스 두 대가 또 들어온다
겹겹 새벽이 이어지고
그그늘에 갇혀 종일 아침을 잃어버리는 하루가 열리고 있다
💥💥💥새벽 두 시에서 네 시
얼마나 고요한 시간인가? 고요의 적막을 깨고 움직이는 사람들, 야쿠르트 아줌마, 쿠팡맨, 생수배달
예전에는 신문배달이 선두에 있었는데...잇달아 청소원이 나가고, 인력시장도 붐비게 되겠지.
🌐🌐인생살이는 누가 분류할까?
택배 분류
쌀이나 생수를 피하면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대충하지 말고
일머리를 사용해요
한 발 빼면 바로 알아봅니다
수화물을 집어던지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행동
체크하고 있어요
움직여, 무조건
작업반장 얘기는 그만 들어도 돼
나랑 같이
쌓고
줄 세우고
나르고
나랑 같은 팀이니까
쌓았던 걸 무너뜨리면 안 돼 그럴 조짐이 보일 땐
그냥 내가 넘어질게
때로 나는 너를 노려보게 돼
이유를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너의 둥근 눈과
네가 한나절 분류한 짐들의 너저분함이
층층 쌓인 내 마음을 무너뜨리는구나
난 너의 서툰 반복을 분류해야 하는구나
손가락으로 윗니 안쪽을 문질러보게 되네
견고하고 질서정연한 것들 예를 들면
내용물이 유리라서 단단해지는 종이상자 같은것
어디론가 실려 갈 상자들, 상자들, 우리들
때가되면
상자들이 말한다
택배차에 사람들을 실러 가자
상자도 작업자도 다 실려 나가면
다음날에도 같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같은 날에도 다음의 상자들이 모여든다.
💥💥택배 분류를 하다보면 무거운 건 표시가 난다.
쌀 자루도 있고, 생수도 있지만, 아니다 순서는 소금가마니, 콩자루, 절인배추, 그런 순이다. 가끔은 쇠 부속품도 있긴 하지만, 이런 품목들은 작업자의 신체적인 가해를 입히기 쉽기에 조심스러운 것이고 회피 품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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