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향
여수 출생. 2016년 (발견)으로 등단.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문학석사.
여성조선 문학상 대상, 발견작품상을 받았다.


🌐🌐 이 시집을 생각해본다.
삶이란 모습으로 이 생에 태어난 순간
만남이 필연이라면 헤어짐도 필연적인 요소일 것이다. 필연적인 만남의 에너지를 헤체하면서
이별이라는 정서에 칼질을 한다. 하지만 시인이 칼질을 할 때 미다 한 편의 검무가 완성된다.
몇 편의 시를 곰곰시 생각해본다.
⛱️⛱️
풀을 뽑으며
선선히 내어준 당신 앞가슴 위로
내 젖은 발이 닿습니다
말랑한 첫 울음이 당신 손에 닿았을 때
젖은 머리칼이지만 가만히 받아 준것처럼
웃자란 앞가슴은 망설임조차 없습니다
바람이 들고 나는 길을 따라
젖은 머리칼은 마르고 무성해지고
잠시길을 나선 것뿐인데 나란해진 가르마 너머
봄꽃들이 지고 있습니다
술잔을 들어 당신가슴 언저리
당신 머리맡
당신 옆구리쯤을 조심스레 적셔줍니다
낮은 편백 나뭇가지 흔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을 쉬이 허락하지 않아
당신을 만나러 오는 길이
여태인 나는
다시 당신을 만나기 위해
풀을 뽑으며
젖은 발이 어서 마르길 재촉합니다
이제사 말이지만
당신에게 훔친 풀빛으로 내온 밤이 밝았습니다
🌸🌸💚
풀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풀은 필요한 존재인가, 당연히 뽑혀질 존재인가는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봐야 한다.
시인은 풀을 빗대어 앞가슴이라 하였습니다. 풀이란 존재는 시인에게 아주 소중한 손님입니다. 그렇지만 손님은 떠냐야 할 뿐입니다. 떠나는 손님(풀)이 아쉽지만 그가 떠나야만. 온갖 생성의 모태인 대지가 빛을 발합니다.
⛱️⛱️
빗물에 잠겨 국수처럼 불어나는
비 오는 자정 국수를 말아요
자율학습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리며
가장 높은 자리에
시시포스의 꿈을 깨워두기 위하여
빗소리에 끌려가는 자동차의 지친 타이어 소리도 들려요
국수가 거품을 밀어낼 때마다 달아나는 어둠은
날개를 벗어던지는 불면증과 눈을 맞추고
하루를 살게 하는 일을 궁리하며
물처럼 흐르고 싶은밤
빗물 속에 잠겨 국수처럼 져버리는 중인데
전철을 향해 뛰어가던 구두들이 넘어지고
건널목을 건너가다 넘어진 나뭇잎이 신문지에 밟히듯
나를 짚어보기에 좋은 이웃들을 삶아
흐르지 못하는 것들 속에 던져 불려주기로 해요
불어 터진 것들이라도 채울 수만 있다면 별조차 밤을
물고 빛날 텐데
빗소리에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끼리 어울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것같은 형광등 아래서 기진맥진
양들의 허기진 눈을 세어보아요
가볍게, 느리게 불어나는 국수가락
끊어질 것같은 국수는 길게도 끊어지지 않네요
🌸🌸💚
국수를 맛있게 먹어야 할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 길게 불어나며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국수여. 국수가락 끊어지며 너와 이별을 해야만 아들의 기다림도 끝이 날텐데.
⛱️⛱️
의자에 앉은 시간
이제 어둠입니다, 준비하세요
눈을 감는 일과
눈을 뜨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일
같은 것일까
눈을 뜬 채 어둠 속에 있는 듯한 나에게
일부러 눈을 감은 듯한 당신이
순하게 마련해준 의자 하나
당신의 말을
대신할수 있는 거라곤
의자 앞에 놓인 화면속
낯선 숫자들을 세는 일이다
우리 지금 같이 있는 거 맞나요?
실내공기와는 아무래도 상관없이
당신은 높고 나는 낮아서
중심을 잃은 숫자와 그래프가
미세한 갈등 속에 빠져든다
미궁이다
당신을 밝히던 돋보기 저 홀로 무심해지고
어둠속 의자에 시간이 앉는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문득 떠나고
없는데
🌸🌸💚
지금 우리 같이 있는 거 맞나요.
의자에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야 하는데, 그대는 어딜 가셨나요. 주인 없는 돋보기만 홀로 남았습니다.
⛱️⛱️
감자박스를 보낸다
뿌리를 키우는 일이 단순한 욕망이 아님을
베란다 종이박스 안
감자는 이미 알고 있었지
제 몸 쪼그라드는 줄 알고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으니
뿌리를 키우는 일이 단순한 인연이 아님을
마른 젖무덤을 택배로 대신한
어미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
사는 일이란 굳이
자기를 먹여 뿌리를 키우는일
제 몸 어딘가로부터
간지럼처럼 돋아난 입술들이
어그적 어그적 거칠어지는 동안
온몸을 쪼글쪼글 비틀어
마지막까지 비워진 영혼들은
날카로운 뿌리 끝조차 애틋이 쓰다듬고
철없는 뿌리는 어느새
조랑조랑 새로운 열매를 잉태하니
뿌리를 키우는 일이 단순한 인연이 아님을
이미 한 세상이 알고 있어
감자는, 오늘도
박스 안에서 기껍게 시름시름 앓고
세상의 모든 어미들은 비워 낸 제 몸 뿌리 끝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감자 박스를 보내지
💚🌸🌸 감자와 택배, 연결 고리가 없을 듯한 시어가 뿌리를 만들어 흩뿌린다. 뿌리는 어머니의 자궁이기도 하고, 자궁을 뛰쳐 나간 자식이기도 하다.
뿌리는 열매가 되고, 과실이 된다. 자식은 부모의 관심아래 온당한 성인이 될 것이다.
⛱️⛱️
죽음 연습
관속에 누우니
쾅쾅쾅
죄목을 나열하듯 가슴으로 와 박히는 못질
어둠의 무게를 견디느라 동공이 흔들리는 틈으로
천수천안을 가득 염(念)하는 잿빛 욕망
관속을 빠져나와
내생의 터널로 기어간다
속박을 끊은 짐승의 낮은 아우성은
혀를 날름거리며 목덜미를 핥는다
어딘가에 지장(地藏)이 계시려나
육환장(六環杖)에 매달려
한고비를 넘어가는 몸
아무리 진언(진言)을 외워도 귀가 닫히지 않는다
잠시 벗어둔 얼굴들, 일제히 앞을 가로막고
발끝 언저리에서 스멀거리는 업장(業障)들
통곡을 타고 폭포가 되어 쏟아진다
자지러지는 검은 터널 속으로
본체를 떠난 당간지주 아득해지는 중
다시 살아내야 하는 죽음 하나
악어 눈물을 마신 참회를 빈 몸에 감는다
궁지에 몰린 맨발
포행(葡行)은 지금 어디쯤일까
💚💚🌸
죽음도 두려워하는 육신의 껍데기를 안고서
삶은 탐욕의 달콤함을 벗어날 줄 모른다.
태어나면서 오욕으로 덧칠을 하고 있으나
이미 나는 내세를 걱정하는구나.
⛱️⛱️
클랭블루
가볍게 떠다니던 파랑은
바다를 건너가다
블루를 만났다
다만
달을 버리고 달빛을 건져내는 투명 속에서
바다를 버리고 바다 위를 걷는 눈동자
즐기려는 바람과
질문하려는 물거품의 배반 같은
재미와 의미 사이에서
파도가 바다라고 오해한 일을
깨닫기까지
바다와 파도
깊이를 달리하는 이별 모티프는
블루 속으로 부풀어 간다
클랭블루를 블루라고 할수 없는가에 대해
클랭블루를 블루에서 떼어낸 이브클랭
부서지기 전의 파도를 바다에서 떼어내어
파도는 바다가 아닐수 없음으로
버림받은 간극들
당연하지 않은 파랑을 발견하고도
실낱같은 차이를 보려 하지 않는 우리는
파도에게 불현듯 블루를 밀어 넣고
얼굴도 깊이도 모른채
마주 보고만 있다
🌸💚💚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 그걸 법이라고도 하고, 진眞이라고도 한다. 바다의 본 모습이 파도가 아니지만, 파도를 떼어 낸 바다를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본질보다는 껍데기에 몰두하다 시간을 날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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