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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권 전개
⛱️⛱️ 우례의 가족들
우례는 귀이개를 놓고 우두머니 등잔 불꽃을 들여다보았다. 불꽃 한가운데 심지가 뭉친 덩어리는 귀이개 꼭지보다 조금 더 클 뿐이었지만, 거기서는 끝도 없는 그을음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불꽃의 가슴에 박힌 아들의 검은 옹이 같았다.
그 형상을 불끄러미 바라보던 우레는 까닭 모를 깊은 한숨을 무겁게 내쉬었다.
그리고 반닫이 위에 놓인 헌 가위를 집으려고 엉거주춤 일어선다.
아무래도 심지를 후려 불꽃을 고르게 잡으려면, 뭉친 덩어리를 질라 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막 반 몸을 일으키는 우례의 그림자가 바람벽에 시커멓게 드리워지는가 싶었는데 그것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잠든 꽃니 아비 정쇠의 구부린 몸뚱이 위로 어둡게 덮인다. 이제 마흔에 이르는 그의 고단한 숨소리가 그림자에 눌리어 잦아드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것은 무엇에 숨 한 가닥을 찝힌 채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삼키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우례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정쇠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제 커다란 그림자에 먹힌 정쇠 옆에 잠들어 있는 열다섯 살, 장정이 다 된 아들 봉출이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어미의 그림자가 덮인 아들의 얼굴은 무거운 어둠 속에 가라앉아 겨우 희끄무레 나이나 분별할 수 있을 뿐, 그 모색을 확연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마치 짙은 그을음에 가리어진 것처럼.
그런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우례는 어금니를 물었다.
너는 어찌든지, 꼭. 하고는 그다음 말을 어금니로 깊이 사려 문 것이었다.
💥💥우례는 매안 원뜸의 종가 씨종인 막손의 소생으로 어릴때부터 바느질을 배웠다. 숙성함에 이기표에게 눈에 띄어 그의 애를 낳았으니 봉출이다. 제발 너는 이씨 성을 찾거라.
⛱️⛱️ 예쁜 우례 이기표에게 걸려들다.
매안 고을 이씨 문중의 종가 이기채의 솟을대문 지척에 엎드리고 있는 여남은 호제집들 중에서도, 씨종 막손이의 집은 바보 대문 바깥 발치에 바싹 붙어 있었다.
막손이 내외와 그 소생들은 우레, 소례, 그리고 끝엣놈 막둥이가 모두 눈만 뜨면 상전에게로 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날이 어두워 져야 집이라고 돌아와 잠만 겨우 잘 뿐이니, 삼시 세 끼를 모두 그 댁 정지에 쪼그리고 앉아 먹지마는.
그래도 솥단지 걸린 제 정짓간이 따로 있고, 단지와 항아리도 몇 개 놓인 이 집의 허술한 뒤안에는 철따라 심심치 않게 일년초 풀꽃 들이 피고, 여름이면 봉송아나 맨드라미가 붉은 꽃잎을 피우기도 하였다.
그것은 우례가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옮겨 심은 것들이었다.
물이 차오르던 그봉숭아 꽃봉오리가 막 연한 꽃송이를 터뜨리고, 꽃대를 솟구친 맨드라미는 선홍색 여린 혀를 수줍은 듯 내어밀 때.
"아무개 양반이 막손이네 뒤안에서 우례 허리를 담쑥 감어 보듬고, 그 집에 아랫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는 말이 생겨나고
"대낮에, 모다 일허로 나가서 빈집인디, 더운 여름날에 방문은 다 함봉을 허고 닫혔드만, 들마루 밑이가 신짝들만 기양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한 것을 지나가다가 힐끗 보았는데
"짚신 두 짝은 우례 꺼이 분명허고 까마구 등허리맹이로 윤이 자르르헌 구두는 아무개 양반 것 아니겄느냐."
💥💥아무리 종 일지라도 소속이 있다. 자기 상전이 아닌 이가 자신을 범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기표는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종손 이기채를 대신하여 뭐든지 일을 만들 수 있었다.
⛱️⛱️
"안해 본 호강, 동티난다, 넘보지 말어. 사램이 호강보담 더 몬야 도리를 찾어아능 거이여, 도리."
"꾀 벗고 장도칼 차네. 동낭치 박적에 수실을 달재.
다 떨어진 상것들이 도리? 하이고오, 도리? 그거 머에다 쓰는 거잉고,"
"그러고 막 상게 양반들이 우리 보고 상것, 상것 헌단다.'
"병 주고 약 주제. 존 것은 양반들이 다 허고 상것들은 요렇게 살수배끼 없게 꼭 쥐여서 맨들아 놓고는 그랬다고 또 숭을 바? 그리먼 자개들은 왜 숭잽힐 일을 허능고? 대낮에 계집종 찌고 보란 디끼 자빠져서 홍야 홍야."
양반 세도에 계집종 조께 봤다고 그거이 머 숭이겄어? 상것도 종년이 아직 임자할라 없는디."
"신이나 안 보이게 허든지. 하기는 머이 무서서 신을 슁키겄능가잉."
평순네와 공배네는 한 자락을 덮어 놓고 말하는데 옹구네는 쌍지팡이를 곧추세웠다.
"임자?임자 있으먼 멋 헌다요? 있다고 참간디?
상놈의 예펜네는 제쳐두고 중로라도, 제 서방 버젯이 있는 아낙을 샛거리로 맛 다시는 양반이 어디 하나 둘잉게비?
멩색 없는 목숨들이 오라면 오고가라먼 갔지 어쩔 거이여? 서슬이 호랭이맹이로 시퍼런 양반들한테 앙탈을 해밨자지. 호랭이 개 빰 우시디끼 헐 거인디?"
한 뱃속으로 난 새끼도 아롱이 다롱이라고, 한 말로 양반, 그러지만, 성정도 행세도 다 각객이라, 이 양반 저 양반이 서로 같든 않제. 다 달러.'
💥💥우례 후려친 기표를 말로써 갈구는 옹구네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평순네와 공배네는 말을 하면서도 몸을 사린다.
⛱️⛱️한 해 농사 지으면 절반은 머슴이
'진새'란, 담살이의 애티를 벗고 드디어 '온 일꾼'으로 인정되는
한판의 잔치였다. 그러나 이것은, 생일이나 명절처럼 날짜 되었다고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진새를 하기 전에 담살이는 반드시 한절차를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만한 힘이 있소."
하고 보여 주는 증거로,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자나무 근처에 놓인 쌀가마니보다 크고 무거운 돌을 불끈 들어 짊어지고, 나무
주위를 도는 일이었다. 그 돌을 '들돌'이라 했다. 온전한 일꾼 한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자질의 바탕은 힘이었던 것이다.
이 일을 거뜬하게 해내면, 모여 선 사람들이 장하다고 함성을 질렀다. 그동안 송아지도 소도 아니었던 어중간한 어석이 소가 이제
떡 벌어진 황소로 떼를 벗는 뿌듯한 순간인 것이다.
그러면 담살이의 주인집에서는 바로 진새 잔치를 할 날을 잡았다. 그리고 푸짐한 술과 음식을 준비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명절인 단오를 전후해서 벌어지는 이런 잔치는 머슴들에게 몹시 흥겨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머슴도 인정을 받을려면 그들의 성인식을 거쳐야만 한다. 대체로 그런 통과의례는 단오를 전후해서 열렸다. 힘자랑을 해서 통과 해야만 새끼 머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 유자광은 생모의 상주를 모신다.
노비가 죽으면 지게 송장으로, 아무렇게나 대강 묶어서 지게 위에 젊어지고 나가. 아무 곳이나 파기 쉬운 곳에 묻는 것이 고작인데. 자광의 생모가 비록 상전의 몸에 한 점 인연이 있었다 하나 여전히 하찮은 노비에 불과한지라.
그네가 죽었다 해서 특별히 슬퍼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때는 마침 여름이어서 밤낮을 모르고 내리는 궂은 비만이 처량한 시체의 식은 귀를 젖게 하고, 그 곁에 앉아 비루(悲淚 )를 어금니로 물고 있는 자광의 설움을 대신하여 무겁게 울어 줄 뿐이었다.
어머니를 치상하려면 상주가 있어야 한다. 상주는 당연히 아버지가 되셔야 하지만 불행히도 여기 계시지 않으니, 마땅히 장자인
형님이 상주가 되어야 한다. 지아비와 장성한 아들이 있는 시신이 이와 같이 개처럼 버려질 수는 없는 법이다."
자광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적형 자환을 찾아갔다.
그 무렵 자환은 다음에 있을 과거 준비를 위하여 주촌방에 있는 조용한 절 용담사(龍潭寺)서 밤을 낮 삼아 글을 읽으며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얼자 동생 자광이보다 나이 두세 살 위였다.
💥💥남원골에 낙향하여 터를 잡고 있었던 부친 유규와 정실의 아들 유자환, 종의 소생 유자광은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광의 띄어난 처세술에 의거 모친이 종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실의 아들을 상주로 하여 치상을 하게 된다.
⛱️⛱️ 자광은 형 자환을 구슬린다
그때였다.
싯벌건 요천수 북덕물 한가운데 이른 자광은, 자환을 등에 업고
날아가듯 가던 결읍을 별안간 뚝 멈추었다. 자환이 번쩍 눈을 떴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무엇에 홀렸는가 보다. 내가 여기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자칫 죽겠구나.
"도련님."
"말을 해라."
-사실은 대부인 마님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요, 저의 생모가 죽었습니다. 하오나 만일 처음부터 사실대로 여쭈오면 지체 다르신 도련님이 거들떠나 보시겠습니까. 잠시 도련님을 속인 것은 잘못이오나, 저의 생모가 도련님의 서모도 되온즉 어미 모짜는 같으니 도련님의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말씀이 아주 다 거짓은 아니오이다. 자,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이 길로 가서, 세상을 버린 제 어미의 불쌍한 시신을 거두어 주시럽니까, 아니면 여기서 하동으로 가시럽니까." "하동으로 가다니?"
"요천수는 섬진강 상류이니 이 물에 도련님을 놓아 버리면, 그
하동으로 흘러가시겠지요.
상주가 되시려오. 귀신이 되시려오."
자환은 어이가 없었다.
엄연히 살아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사부 반가의 자제로서, 노비 서모를 어머니라 부르며 그 초상에 머리를 풀고 상주 노릇을 해야 한다니.
만고에 이런 괴이한 일이 어디 다시 있으리오.
그러나 자광의 등에서 뻗치는 살기는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이 받은 수모에 증오의 옹이가 박혀 풀 길 없는
억울함으로 새파랗게 날이 선 것이었다.
기어이 설분하고야 말리라.
자광의 등은 분을 뿐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베일 것 같은 칼날에 업힌 것처럼 아슬아슬한 자환은 그살기가 끼없는 소름의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알았다. 네 소원대로 해 주마."
자환은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여기서 머리를 푸시오."
이 말에 자환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요천수 한복판 밝은물 위에서 자광의 등에 업힌 채 상투를 풀어 머리를 흩었다.
💥💥자광의 현란한 처세술은 이 다음 정적 제거나 정치적 술수로써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였으니, 그 기저는 서얼에 대한 가슴속 한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강실이 청암부인의 상여를 생각하네
혼인 날보다도 더 곱게 꾸미어 멀리 타고 가는 가마.
그것이 상여였다.
그 상여의 지붕 보개의 연봉에 꼬리를 둔 네 마리 굽이치는 용은 각기 그 머리를 몸의 네모서리 위에 서려 두었는데.
그 상서로운 수염 밑에 좁으장하면서도 편편한 판자로 사방에 윗난간을 돌린 면에는, 오색 구름과 연꽃과 병아리들이 무늬를 놓아그린 단청 속에 놀고 있고.
그 난간의 앞뒤와 좌우의 한가운데서 어여쁜 동자(童子)와 천녀(天女)가 공손히 시립하여 사면을 멀리 바라보 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윗난간의 네 귀에는 부리에 쇠고리를 문 봉수(鳳首)가 우뚝 솟아 머리를 하늘로 들고 있는데, 쇠고리에는 오색 색실로 곱게 짠 매듭 유소(流蘇 )가 길게 물려, 혼틀릴 때마다 투명하고 은은한 음향이 울렸다.
살아생전의 무거운 한 생애를 다 벗고 떠나가는 저승의 가마에 실린 망인의 혼백은 다만, 저렇게 스러지게 맑은 소리로 은은하게
울리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은 망인의 죽음을 빌려 사실은 그 자신이 살고 싶은 그 무슨 염원과 소망의 치장을 저렇게, 색깔로, 모양으로, 무늬로, 간절하게 꾸미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상에서 누리어 살고 싶은 세상을, 저승으로 기는 망인의 상여를 꾸미며 간절히 빌어 보는 손.
그러나 혼백에게는 이 또한 부질없는 이승의 시늉이요, 벗어 놓고가는 꽃신에 불과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 윗난간 바로 아래 붉은 띠를 연하게 두르고, 거기 파랑고, 노랗고, 빨갛고, 하얗고, 검은 색실로 수실을 내려 찰랑이게 한 다음 휘장으로 몸을 에워싼 상여에, 금방이라도 사람이 나와 앉아 팔을 짚고 내다볼 것 같은 아랫난간까지 단청을 두르고는
겨울 하늘 시리게 푸른 빙천(氷天)으로 상여가 덩실 떠오를 때, 강실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않으며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북받쳐,
떨리는 소리로 곡을 하였다.
💥💥죽은 할머니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살아있는 강실이, 강실이의 선택은 무엇일까? 춘복이.. 강모...자진...
⛱️⛱️ 변동천하
"그렇게 그 괘 속이 묘헌 거이라고, 내 손에 아 들고 앉었어도 그 속을 못 읽으면 헛거이그던. 변동천하를 읽을 줄 알어야여, 긍게 .그런디,사명당맹이로 유명헌 큰시님도 못 읽는 번동천하를 우리 같은 상것들이 무신 재주로 읽어 내끄나. 안 그러나, 춘복아."
그러나 춘복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웃지도 않았다.
뻣뻣 한 눈썹 터럭이 솟구처 일어선 그의 눈빛은 새파랑게 빛났다.
그것은 등잔 불빛을 받아 벌겋게 이글거리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물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는 그의 눈앞에 강실이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작은아씨.
내자식 하나 낳아 주시요.
나는 작은아씨한테 양반 자식 하나 얻고, 작은아씨는 나한테 상놈 자식 하나 얻으시요.
춘복이의 손이 안으로 오그라진다.
그는 병아리를 채려는 솔개처럼 발톱을 모으며 눈에 모를 세운다.
'인재는 더 안 지달를란다."
춘북이는 하마터면 소리 내서 말을 할 뻔하였다.
속에서 솟구쳐 터지려는 그 말 대신에 그는 이 말을 자르듯 토했다.
"변동천하."
💥💥속가에 도착한 서산과 사명이 저녁에 뭘 먹을지 대해 이야기를 하자 사명이 괘를 뽑아보고 사蛇괘라 국수라 했다네, 그러자 서산이 자기는 수제비를 먹을 거라 이야기를 했다. 보는 그대로는 사괘였어 국수이지만 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수제비라 한다. 보이는 것 이면의 모습이 바로 변동천하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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