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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술라/토니 모리슨 장편소설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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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1993 노벨문학상을 수상)

1931년 미국 오하이오 주 로레인에서 태어났다. 하워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코넬 대학교에서 윌리엄 포크너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랜덤하우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0년 작품인 가장 푸른 눈을 발표했으며, 1973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 [술라]가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솔로몬의 노래]가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대중 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토니 모리슨은 1988년 [빌러비드]로 퓰리처상, 미국도서상, 로버트 F. 케네디 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빌러 비드]는 2006년 <뉴욕 타임스 북 리뷰>가 선정한 지난 25년간 최고의 미국소설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92년에 재즈를 발표했고, 1993년에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시적 언어를 통해 미국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을 들으며 흑인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직에서 퇴임한 후 모리슨은 집필 활동에 매진하며 2008년 아흡번째 소설 [자비]를 발표했다. 이후 희곡 [데스데모나], 소설 [고향]을 잇따라 출간했으며, 2015년 열한 번째 소설 [이 아이를 도우소서]를 펴냈다. 현재 잡지 <네이션>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이 송은주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클라우드 아틀라스] [블랙스완그린]  [광대 샬리마르][공포의 헬멧] [겨울 일기] [선셋 파크] [위키드 1.2]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모든 것이 밝혀졌다.] [미들섹스] [종이로 만든 사람들] 등이 있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인간의 평등을 순서지우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일까? 은연중에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부르짖는 그 사람들 마저도 자본에 순서를 정하고, 학력과 인물과 권력에 차례대로 번호를 매긴다. 잘 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봐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열악한 흑인들의 미국에서의 불평등한 대우를, 그중에서도 흑인 여성이 생활하는 하층의 일상사를 밀도 있게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 보텀 또는 메달리언의 풍경

💥💥넬

넬은 어머니가 신문에서 옷본을 오리고 잡지 속 모델에서 자기 손으로 바삐 눈길을 옮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질 녘이 되자 밤늦게까지 바느질을 하려고 등유 램프를 켜는 것도 보았다.
준비를 다 마친 그날, 혹시나 호수에 나간 남편이 일찍 부두에 도착할 경우를 대비해 헐린은 훈제 햄을 굽고 남편에게 편지를 남겨놓았다. 그러고는 고개는 높이 치켜들고 짐을 들어 팔은 뻣뻣해진 채 딸을 이끌고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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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은 흑인 여성들 중에서도 그나마 평범한 가정에서 그들의 관습을 존중하며 자란다.
차장이 나가고 문이 쾅 닫히자 헐린은 통로를 걸어 자리로 갔다. 그녀는 머리 위 짐 칸에 여행가방 올리는 걸 도와줄 사람이 없는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힐린은 야단스럽게 남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넬은 어 머니와 군인들을 마주 보고 반대편에 않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기품 있고 아름다운 아내를 떠받드는 아버지와는 달리. 이 남자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눈부신 미소를 보이며 갑자기 나타난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부글부글 끓고 있음을 넬은 감지했고, 기쁜 한편으로 수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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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사회였을 경우에는 아마도 무거운  가방을 들어 올리는 걸 도와주었을 것이다. 흑인이였기 때문에 냉랭한 기운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헐린과 그녀의 딸은 모두 그곳 머리디안의 네시의 태양 아래 쭈그려 앉았다. 그들은 엘리스빌에서도 한 번 해티즈버그에서도 또 한 번 그 짓을 했다.
차트레인 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슬라이델에 닿았을 무렵 헐린은 뚱뚱한 여자 못지않게 나뭇잎 접는 데 능숙해졌을 뿐 아니라 그 타운들의 역 지붕 아래 파손된 도리아 양식 석상처럼 서 있는 남자들의 탁한 눈빛을 지나쳐 갈 때에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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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유럽사회가 화장실이 열악하여 사회의 문제가 된 것은 익히 알지만, 미국에서는 화장실의 사용도 유색인용 전용이나 아니면 외진 풀밭에서 볼 일을 봐야만 했다.
여행을 생각했다 제대로 쪼그려 앉는 법을 익히기 전까지 스타킹 속으로 홀러 내리던 오줌이 또렷이 기억났다. 죽은 여자의 얼굴에 떠오른 혐오감과 장례식의 북소리도 기억났다. 아주 신나는 여행이면서 무서운 여행이었다.  기차에서 본 군인들의 눈, 문에 걸린 검은 화환, 어머니의 무거운
드레스 밑에 숨어 있다고 믿었던 커스터드푸딩, 이름 모를 거리와 이름 모를 사람들의 느낌이 무서웠다. 하지만 진짜 여행을  해본 것이었다. 이제 넬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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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자기들만의 터전에서 넓은 곳으로의 인식의 전환이 되는 싯점이다.


💥술라

앞마당에 배나무 네 그루가 있고 뒷마당에는 느릅나무 한 그루가 있는이 어마어마한 집의 창조주이자 군주는 에바 피스로 3층에서 손수레에 앉아 자식, 친구, 길 잃은 사람 그리고 쉴 새 없이 들고나는 하숙인들의 생활을 지휘했다. 에바의 두 다리가 멀쩡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타운에서 채 아홉 명이 되지 않았고, 맏이인 해나조차 그 아홉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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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는 술라의 외할머니이고, 해나의 술라의 어머니이다.


해나는 남자들의 관심 없이는 살 수가 없었다. 리커스가 죽은 후로도 애인이 줄줄이 끊이지 않았는데 대개는 친구나 이웃들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달콤하면서 저질스럽지만 악의 없이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머리 한번 매만지지 않고, 급하게 옷을 갈아입으러 가지도 않고, 가볍게라도 화장을 한다거나 이렇다 할 몸 짓도 없이. 그녀는 섹스로 관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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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는 남편이 죽은 후 주로 친한 친구나 이웃들과 섹스를 나누었다. 주위의 여인들은 그를 창녀라고 불렀다.
에바는 침대에서 뒤로 물러나 겨드랑이에 목발을 꼈다. 신문을 6인치 정도 길이로 단단하게 말아서 불을 붙이고는 플럼이 등유에 흠뻑 젖은 채 아늑한 기쁨 속에 누워 있는 침대로 던져 부었다. 순식간에 불꽃이 슈욱 하고 그를 집어삼키자 그녀는 문을 닫고 집 맨 위층으로 돌아가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길에 올랐다
막 3층 층계참에 닿았을 때 해나와 몇몇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그녀는 놀란 목소리와 듀이들의 외침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계속 휘청이며 움직였다. 침대까지 왔을 때 누군가가 그녀를 찾아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올라왔다. 해나가 문을 확 열었다. "플럼! 플럼이! 그 애가 불에 타고 있어요. 엄마! 문을 열 수 도 없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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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의 딸기크러시 잔이 피가 섞인 잔인지를 알고서 에바는 잔을 던져버렸다. 이미 살아서 제 몫을 다하기는 틀렸다.

우리하고 놀아주셨느냐고요. 한 번이라도 우리와 놀아주 신적이 있어요? "
놀아줘? 1895년에 놀아주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냐. 지금 살 만하다고 늘 이만했던 줄 아니? 1895년은 말도 못 했어 이것아. 사정이 얼마나 나빴는데 검둥이들이 파리처럼 죽어갔어 건방진 소리 하는구나? 폴 삼촌이 2부 셀을 갖다 준댔지 그래 아래층 에는 멜론도 한 개 있고, 그렇지? 매주 토요일마다 내가 빵을 굽고. 금요일에는 새드가 생선을 갖다 주지. 돼지고기도 통에 가득하고, 식초 그릇에 달걀도 띄워놓았고 엄마, 무슨 얘기하시는 거예요? 천팔백하고도 구십오 년 얘기다. 내가 그 집에서 너랑 펄이랑 플럼을 데리고 닷새 동안 사탕무 세 개로 버텼던 시절 말이다. 그런데 너는 은혜도 모르고 눈을 뱀처럼 치켜뜨고 덤비고 있으니. 내 것이라고는 사탕무 세 개가 고작인데 그 작고 낡은 방에서 어린것들하고 껑충 경 충 뛰어놀고 있었다면 내 꼴이 어떻게 보였을 것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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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의 칭얼거림에 해나는 그 간의 고생의 여정을 단번에 이야기 한다.

에바는 거기로 가서 자기 몸으로 직접 딸의 몸을 덮어주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시간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성한 다리로 무거운 몸뚱이를 지탱하고 주먹과 팔로 창유리를 깼다. 잘린 다리를 지지대 삼아 창틀에 올리고 성한 다리를 지렛대 삼아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베이고 피를 흘리면서.
불꽃에 휩싸여 춤을 추는 형체 쪽으로 몸을 날리려고 허공에 갈퀴질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빗나갔고, 연기를 피워 올리는 해나에게서 12피트쯤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에바는 혼이 나갔지만 아직 의식은 있어서 자신의 첫 아이 쪽으로 몸을 질질 끌고 기어갔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해나는 '깜짝 장난감 상자에서 튀어나온 인형처럼 몸을 휘젓고 휘청이면서 마당을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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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와 해나 그리고 술라의 삼대는 적어도 이 집에 한하여 불행의 아이콘이다.
관습에 항거하려 해도 언제나 역부족이고 행운은 그들을 비켜간다.

"전 다른 누구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 자신을 만들고 싶어요." "이기적이구나. 어떤 여자도 남자 없이 떠돌며 살 수는 없어" "할머니는 그러셨잖아요"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어 "
"엄마도 그랬고요"
"원해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니까. 혼자 외따로 살고 싶어 하는 건 옳지 않아. 네게 필요한 건...... 너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말해주마. "
술라가 일어나 앉았다.

"저에게 필요한 건 할머니가 입 다무시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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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는 이제 배우고, 사회를 두루 인식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에바의 삶에 저항을 하기 시작한다.

에바가 서니데일에 보내졌다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보텀 사람 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술라를 재수 없는 년이라고 했다. 나중에, 술라가 주드를 후려냈다가 딴 남자들 때문에 그를 차버린 것 을 보고, 그가 디트로이트행 버스표를 샀다는(그곳에서 그는 아 들들에게 보낼 생일카드를 샀지만 결코 부치지는 않았다) 이야 기를 듣고 나서는 해나가(혹은 자기들이) 얼마나 헤펐는지는 다 잊어버리고 창녀 같은 년이라고 술라를 욕했다.
🙏🙏
술라는 에바를 양로원으로 보내버린다. 할머니가 삼촌을, 엄마를 그렇게 하였듯이.

에이잭스가 푹 젖은 채 방으로 들어와 물기를 말리려고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건드릴 때까지 한 참 동안 둘 다 조용히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 몸 위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했는데, 자기 위에 탑처럼 우뚝 솟은 술라를 보며 그녀의 얼굴에 부드럽게 외설 적인 말들을 해줄 수 있어서 그랬다. 그녀는 그 위에서 몸을 흔들면서,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미소 위로 높이, 금빛 눈과 벨벳 투구 같은 머리카락 위로 높이, 무릎을 꿇은 왕솔나무처럼 전후 좌우로 몸을 흔들면서, 몸을 구르고 흔들면서, 엉덩이로 넘쳐흐르는 무질서를 막는 데 생각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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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는 소유를 알아 갔지만, 그가 에이 잭스가 아니고 앨버트 잭스라고 안 뒤,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지친 기대의 상태에 있으면서 술라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지 않음을. 심장이 완전히 멎었음을 알아차렸다. 공포의 주름이 그녀의 가슴에 가 닿았다. 당장이라도 머릿속에서 격렬한 폭발이 일어나고 숨을 거칠게 들이쉴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녀는 이제 더는 어떤 고통도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깨닫기보다는 느꼈다. 그녀의 육체는 산소가 필요치 않았다. 그녀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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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관습에 대하여 항거와 거부도 결국은 자신의 죽음으로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술라의 삶이 멀리 달아나고 있다.




🌐🌐넬과 술라의 우정

처음에는 초콜릿색 복도에서 그다음에는 그네의 밧줄을 사이에 두고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편안함을 느 꼈다. 백인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어서 그 어떤 자유와  승리도 그 들 몫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로를 통해더 성장할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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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은 어떻게 유지되고 바뀌어갈까,
더 나은 교육과 또래들의 자연스런 경험을 배울 수 없다면 오랜 관습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술라는 소년의 손을 잡고 그를 빙빙 돌렸다. 소년의 반바지가 풍선처럼 부풀었고 겁나면서도 신이 나서 질러대는 그의 비명소 리에 새들과 살찐 메뚜기들이 놀랐다. 소년이 술라의 손에서 빠져나가 강물 쪽으로 날아갔을 때에도 여전히 소녀들의 귀에는 그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강물은 치킨 리틀이 가라앉은 곳을 순식간에 어둡게 만들고 닫아버렸다. 술라가 물속의 닫힌 그 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단단하게 꼭 잡은 작은 손가락의 압력이 아직도 그녀의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아이가 깔깔대며 다시 떠오르기를 기대했다. 두 소녀는 뚫어져라 강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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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을 공유한다는 것은 친구들의 특권 같은 일이지만 가슴속에는 언제까지나 아픔으로 남아 있을 흔적이 되지 않을까.

그를 빼앗아갔다니 무슨 말이야? 난 그를 죽이지 않았어. 같이 잤을 뿐이지. 우리가 좋은 친구였다면 어째서 넌 그걸 극복 못하는 건데?
너는 네가 이 타운에서 저질렀던 온갖 패악 탓에 네 것이라 할 동전 한 푼, 친구 하나 없는 신세로 그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여전히 사람들이 너를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하니?  술라가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얼굴은 열로 인한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녀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도로 베개 위로 쓰러져 한숨을 내쉬었다.
🙏🙏
관습의 계승과 관습의 파괴는 한 순간이라는 의미이고 손바닥을 뒤엎는 것 처럼 쉬운 것이기도 하다. 한 몸속에서 두 가지의 생각은 언제든지 공존한다.




🌐🌐 관습에 항거하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술라'
와 그나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넬' 통한 흑인 여성의 삶에 대한 집념과 좌절을 동시에 들여다본다는 것은 아직도 사회 기저에 남아서 꿈틀거리는 불평등의 세상에 대한 외침. 소리 높이는 아우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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