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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시간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에리 데 루카 소설, 이현경 옮김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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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 데 루카 Erri De Luca
소설가. 시인. 성서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 "21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얼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고, 연극 무대에 오르고 영화에 출연하며. 암벽 등반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 나폴리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로마로 떠 났다. 로마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이어서 '투쟁은 계속된다'라는 이름의 정치운동 그룹에 참여했다. 이탈리아와 그 밖의 유럽 국가에서 기계공, 트럭 운전기사, 미장이로 일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보급단의 운전기사로도 활동했다. 1989년 마흔이 되었을 때, 스무 살에 써 두었던 소설 <지금, 여기서는 아닌>을 출간했다. 지금까지 5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 프랑스 '페미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라파니엘로의 날개>를 비롯해 <나비의 무게> <식초, 무지개> <세 마리의 말> <행복의 하루 전날> <양탄자 구름> <예수의 마지막 소식> <어머니의 이름으로> 등이 있다 루카의 소설은 크게 성장소설과 종교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는 소설 속에서 아름답지만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자신의 유년, 나폴리로 몇 번이고 되돌아간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그의 성장소설 중에서도 자전적 성격이 가장 짙은 작품으로 첫사랑과 바다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잔인함에 눈뜨는 열 살 소년의 여름날을 그린다.

🌐🌐🌐들어 가는 말
사랑과 질투, 바다와 물고기, 오고 가는 언어의 깊숙한 속삭임이 황홀한 한편의 서사시를 읊고 있다.

🛶바다와 소년

"한 번만 얘기해 줄 테니까 잘 들어. 미끼를 낚싯바늘에 끼우기 전에 먼저 바닷물에 손을 씻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육지에서 온 미끼라 나중에 물고기들이 냄새를 맡고 피해 가거든. 그냥 슬그머니, 네가 물고기다 생각하고 바닷물에 손을 담가 봐 누가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다는 학교랑 달라. 여기에는 선생님이 없어. 그냥 바다가 있고, 네가 거기 있는 거야. 바다는 네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 그냥 자기 식대로 흘러갈 뿐이야."
엄마의 허락을 받아서 낚시 배를 탔다. 어린 나무의 몸통 만 한 굵은 노를 사용하는, 선체가 긴 그런 배였다. 나는 배 위에서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배가 출발할 때 그를 조금 도와주기는 했다. 그는 나보다 두 배나 더 큰 노를 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똑바로 선 채로 두 팔을 뻗어 노를 품에 안고 체중을 실어 밀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천천히 바다로 나아갔다. 그것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열 살이 되었을 때였지.
내가(후기를 쓰는) 노 젖는 법을 배운 것이..그 방법이 정말 똑 같구나. 하지만 나는 한손으로 엄지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 만으로 노를 젓는 비법을 전수 받아야 했다. 엄청난 파도와 맞부딪히며, 한시간 이상을 연속적으로 저어야 하는 어린 나이에는 혹사였지만.

그는 내게 닻을 던지게 했다. 난 열 살이었고, 미로 같은 유년기를 소리 없이 막 마감한 뒤였다. 열 살은 처음으로 두 자리 숫자로 나이를 쓸 수 있는 엄숙한 도달점이다. 나이에 처음으로 0을 붙이게 될 때 유년기는 공식적으로 끝난다.  유년기가 끝이 나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유년기는 여전히 지난 여름들의 족쇄를 차고 있고, 내면은 혼란스럽고 외면은 정지해 있는 어린아이의 몸속에 있었다. 나는 십 년이라는 세월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를 말할 때는 '가지다 tenere'라 는 동사를 쓰는 게 훨씬 더 정학하다. 나는 누에고치처럼 내 몸속에 있었고 머리로만 그 몸을 강하게 만들려 애썼다.

💥💥소년은 십 년의 시간 동안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들을 누에고치처럼 뽑아낼 어떤 계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밧줄 끝에 매달린 그물이 올라오자 엄청나게 많은 생선들이 반짝이는 하얀 배를 드러내며 자갈이 뒤섞인 모래 위로 쏟아졌다. 생선들은 태양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났고 태양은 곧 이어 계단식 포도밭 뒤로 서서히 사라졌다. 그물 낚시는 피로 물들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낚시였다. 바구니를 든 여자들이 재빨리 생선들을 선별하고 나누었다.
어부들의 해변에서 노인들은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물을 수선했다. 그들의 손은 저절로 움직였다. 다들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안경을 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봐야 할
것을 손은 이미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 마음속에도 자리하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짐작 가는 대로 수선했다.

💥💥오랜시간 숙련 된 손길은 느낌만으로도 일의 경중과 속도를 가늠할 수 있지. 과학적 장비가 전혀 없었던 시기에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그물의 초입을 찾는 과정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조류의 속도와 일출 지점, 무인도의 방향으로 종합적인 사고를 하여야만 가능하고 그러한 것은 바다에서 일평생을 지낸 어부에겐 일상적인 일이었지.

가끔 나를 바다에 데리고 가 주는 어부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해변의 단칸방에서 살았다. 밤이면 밖으로 나와 줄삼치를 잡을 낚시줄을 던져두었고 어두운 바다에서 미끼들이 잘 움직이길, 물고기들이 그 미끼에 걸려 들기를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물이 일은 곳에 던져둔 100여 개의 낚싯줄을 거둬들였다. 한 마리도 안 잡혀도 다시 바다에 가서 미끼로 쓸 멸치를 바늘에 꿰었다. 이따금 큰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고 물고기가 바늘을 문 그대로 낚싯줄을 끌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두 사람이면 충분했다.
💥💥
멸치는 꼬리서 부터 바늘에 꿸까? 아가미쪽 부터 꿸까? 처음에는 이런 것도 고민이 되지.




🛶소녀와 사랑

나는 호기심에 그 소녀를 보았다. 그 아이도 책장을 넘길 때 재빨리, 진지한 얼굴로, 양미간 사이에 의문 부호를 그런 채 내 쪽을 보았다 그 아이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머리를 스치지도 않았다. 누워서 책을 읽는 그 아이의 몸을 보아도 아무 느낌 없었다.
내 생각은 갇혀 있었다.
난어른들 세계는 아무것도 모르고 중요하지도 않아.내가 쓰는 건 동물 이야기야. 그 행동을 연구해 동물들은 몸으
로 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대화 시간이 우리의 한 시간 가량 돼. 그런데 우린 절대 이해할 수 없어 나도 동물들처럼 하려고 애써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
소녀는 주의 깊게 들었고 갈색 윗눈썹을 찡그렸고 윗입술을 약간 깨물었다. 나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내내 소녀를 뚫어지게 보았다. 소녀는 눈으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녀는 어부들의 해변이 어디인지, 오후에 내가 낚싯줄을 드리우는 방파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방향을 알고 싶어 했다. 길을 물은 게 아니라 방위기점을 물었다. "방파제 는 남쪽에 있어. 해는 왼쪽으로 지지."
그런 다음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 애는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지속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사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녀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생각해 보았고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알면 된 거지, 뭐. 난 그때까지 그렇게 매끄러운 피부를 만져 본 적이 없었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 해 보지 못했다. 나는 그 아이의 손바닥이 조개껍데기보다 더 오목하다고 말했다. 해변으로 나와서 우리는 떨어졌다. "네 가 방금 한 말이 사랑의 말이라는 거 알아?" 소녀가 파라솔 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소녀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추려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피했으나 아직 붉은 기가 가시지 않고 부어 있는 코의 중간쯤에 그 애의 입술이 닿았을 때 통증이 되살아났다. 가만히 있어." 소녀가 말했다. 그 애가 내 입에 강제로 키스를 했는데 그 시간이 길어서 코로 숨을 쉬어야만 했다. 그 애가 쪽, 하고 입술을 뗐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소녀를 보았다. "그런데 너 키스할 때 눈 안 감니? 물고기들은 눈을 감지 않아. " 모래에 널브러져 있던 두 아이가 신음을 하다가 겨우 다시 숨을 쉬기 시작 했다.그 애가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잠시 후 손가락이 코 옆으로 내려와 입을 지나 왔다. 경이로움에 반쯤 벌어진 내 입술에 그 애 입술이 포개 졌다. '놀라워." 입술을 뗏을 때 느릿느릿 내가 말했다 '이건 너를 위한 키스야. 다시 물어보는데, 사랑이 좋니?" 이게 사랑이라면, 음, 좋아, 좋아." 나는 앞으로 어떤 책을 읽든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배들 사이에서 다시 몇 번의 입맞춤이 이어졌다. 입맞춤이 끝날 때마다 나는 상처를 입고 난 후 보다 훨씬 더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애는 이제 눈을 감으라는 요구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눈을 살며시 감다가 입술이 닿는 바로 그 순간 꼭 감는 것을 보았다.
💥💥
소나기의 한 장면이 겹쳐진다. 어디 까지 순수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순수여 영원했음이라고.




🛶정의를 위하여

열 살이 되자 변화가 찾아왔다. 고립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책의 요새만으로는 부족했다. 도시의 비명과 빈곤과 잔인함이 모두 하나가 되어 나의 귀를 공격했다.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땐 날 공격하지 못하게 조절했다. 열 살이 되자 내 신경이 외부의 고통과 내면의 감정을 연결했다.
어른들은 사랑하다 동사의 절정에서 결혼을 하거나 서로를 죽였다. 우리 부모님의 결혼은 이 동사의 책임에서 비롯되었다. 내 동생과 나는 그 결과였는데, 동사 변화의 희한한 활 용 중 하나였다. 그 동사 때문에 부모님은 싸웠고, 식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음식 씹는 소리만 들렸다.

💥💥사랑하다amare'라는 말은 여행, 범죄, 섬, 야수,등을 동반하면서 등장하는 어른들이 라틴어에서 발굴한 획기적인 단어였다.

혼자잖아. 그렇다. 그 아이들은 어부가 내 뒤를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혼자야." 그 애들이 다시 말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 애들이 나를 에워쌌다. 한 아이가 뒤에서 나를 후려쳐서 나는 다른 두 아이 쪽으로 밀려갔다. 아이들이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는데 그게 몇 대인지 세지 않았다..누군가에게 가격을 당해 나는 손을 코로 가져갔고 땅에 쓰러져 마지막 발길질을 당한 후 잠이 들었다. 나는 내가 방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통증이 몹시 심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내면의 평화로움 때문에 난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 여름 난 두 남자아이에게 더해진 고통 속에서 아무런 정의도 보지 못했다. 고통이 존재하지만 난 그 고 통을 정의에 접근시킬 수 없었다. 고통은 아무것도 보상해 . 주지 않았다. 정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공동체에, 잘못을 바로 잡는 그 시스템에는 진실이 될 수 있지만 내게는 불필요 했다. 상처는 스스로 치유되었다. 상처를 가라앉히는 그 몸이 그 아이들에게는 정의였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 다른 사람의 붉은 핏자국을 보았다 나는 탈의실에서 나가 그 상황을 종료시켰어야 했다. 그 폭력 을 막았어야 했지만 난 그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나가는 말
에리 데 루카는 소설에서 소년의 50년 전 유년기의 기억을 소환한다. 성장의 껍질을 벗기 위해 싸움을 하기도 하고, 본능의 은근한 유혹으로 소녀를 사랑하기도 한다. 정의의 본질에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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