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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 박시현 지음.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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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시현은
말하고 글 쓰는 사람. 이번 생은 진득하니 눌러앉는 팔자는 못 되나 보다. 집도, 일도, 가족도, 삶 자체가 떠돌이 생활이다. 이미 떠돌고 있지만 더 격렬한 떠돌이를 기대하는 중. 현재 휴혼을 통해 자생력을 키우고 있다. <삶의 흐름이 춤추는 대로>를 썼다.

⛱️ 읽고 생각한다.
💥생각의 기점.
이 글을 읽어가면서 나는 느낀다. 결혼한 지 35년을 군말 없이 아침밥을 차려준 아내가 너무도 고마웠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물었다. 35년 전에!
"요즘 아가씨들은 아침밥을 잘 안 챙겨 먹고 다닌다던데"라고 그랬더니 아내가 답했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제가 죽는 줄 알거든요"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평생 아침밥 굶을 일은 없겠구나!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요즘의 결혼 풍경이 다소 이질적이고 이기적이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활 습관의 부조화와 타인의 시간이 귀중함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결혼 생활의 어긋남이 많을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이유들로 말미암아 생각지 않은 파국을 맞이하는 것 같다.


💥 나의 온전한 시간을 허하여 주세요.

언젠가부터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하루의 끝자락을 느슨히 보내는 시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원목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쓴다. 이 시간은 네 살 아이에게도 꿀맛이다. <꼬마 버스 타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있는 듯 없는 듯하는 사람이 가장 오래 버티는 걸 봤다.
결혼 생활도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망가진다. 시간의 가치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감각하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엄마가 해주는 밥상이 아니라는 죄책감 역시 동반했다. "남편은 언제나 아이에게 "밥 먹었어?"라고 불어봤는데 그 질문은 마치 나 스스로 밥을 굶기는 엄마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 예전에는 에너지의 충족 수준으로서 밥이었다면,
지금은 식욕 충족의 방법 자체가 워낙 많기 때문에, 예전처럼 밥은 엄마나, 아내의 전유물도 아니고 그래서도 되지 않는다. 누구의 아내나 엄마임을 거부하는 비혼의 세상이고,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도 밥을 찾는 미개인 부류이지만, 가정을 이루었으면 멋있게 마무리를 하는 방법에 대한 공부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남편이 이토록 가정적이기에 나의 역할은 언제나 남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남편은 "대체 아내로서, 엄마로서 당신이 하는 일이 뭐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 모든 것에 A학점이 필요할까? 어떤 때는 일주일씩 집안이 어지럽게 되어 있어도 서로 웃으며 넘어가자. 참기 힘들면 아내를 위하여 새벽에 물걸레질을 하던지. 청소기는 소리가 나니 안 될 거지만. 결국은 양보와 배려가 없다면 결혼이란 사상루각이란 말이다.


💥 내가 자유로울 수 있게 휴혼

🪄휴혼休婚

LAT는 Live Apart Together의 약어로, 직역하면 '떨어져 있지만 함께 사는 형태를 의미한다. "LAT족은 부부지만 각자 거처를 따로 두고 살면서도 서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가서 도움을 주는 관계를 유지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LAT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가족 형태의 출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가족으로서의 친밀감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자율성을 보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슈퍼우먼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외 경력, 기혼 등 사회적 잣대를 떠나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 인간 고유의 생존 능력을 일컫는다. 희한하게도 여성들은 갈수록 자신을 과소평가하며 남편을 보호자 삼는다. 잘못된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양육하며 일을 한다는 건 진짜 불가능하니까. 부부 중 여성이 대개 돌봄 노동으로 영역을 옮겨 온다.


🪄일과 가족의 양립

"네, 보셨죠? 엄마는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힘듭니다. 여러분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순간, 끈이 특, 끊어졌다. 그래, 처음 느껴보는 이 감정이 무언지 알겠다. 강사로서만 서고 싶은데 '엄마'라는 이름을 일터까지 끌고 와야 했고, 아이 뒤를 쫓아다니는 모습을 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이토록 어렵다. 슈퍼 우먼이 되어 잘 해내고 있다는 메시지보다 안절부절, -심초사하는 한 아줌마로서의 초라함이 내게 먼저 다가왔다.


💥다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내가 자유로움을 가지는 순간 누군가는 힘들다.

주말에 꽃사슴 데리고 친구들하고 여행 갔잖아. 다들 엄마가 옆에 붙어서 돌보는데 꽃사슴만 엄마 없이 있는 게 너무 마음 아프더라고..... 속상한 마음에 당신에게 퍼붓고 싶었나 봐 깜빡거리던 버튼이 꺼졌다. OFF. 저마다 버튼이 있다. 한 사람을 발끈하게 만드는 말 혹은 행동의 그 지점. 버튼은 감정의 뇌와 곧바로 연결되어 있어 이성의 뇌를 마비시킨다. 내 남편처럼 일부러 누르기도, 내 아이처럼 무심결에 누르기도 한다. 취소 버튼 따위 없다.
순간 뚜껑이 열리며 그냥 폭발이다. 대개 기제는 처방어- 공격이다. 컨트롤 타워는 없다. 그 버튼을 잘 아는 사람은 슬프게도 가장 가까운 누군가이다.





🪄배려가 가장 큰 사랑

"잊고 있었네 당신 처음 만난 날, 내가 당신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였었네. 당신은 똑같이 당신 삶에 있었는데
미안하고 고마워"
우리의 휴혼, 안갯속 실루엣처럼 어슴푸레 드러날 그 윤곽을 추측해 본다. 일에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당분간 기러기 엄마 생활은 유지하고픈 게 내 욕심이다. 다만, 주말에 돌아가는 곳이  내 집이 아닌 우리 집이 된다면 글쎄, 아이를 위해서라도 좋 더 나은 형태인 것도 같다. 어쨌거나 지금 나는 휴혼 여정에 조금 더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생각의 마무리
🪄🪄 결혼은 어차피 걸어온 방향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걸어가고자 할 때 도움을 주는 나침반과 유사하다. 습관과 생각의 스타일이 안 맞는 게 오히려 정상이다. 안 맞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사랑의 묘약인 동시에 독약이 되기도 한다. 독초가 되기 전에 잘라야 하고, 묘약은 만들어 내어야 한다. 그런 중에 무너져 내리는 당신을 발견하면 쉬어가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의 내용들은 남성들의 실제적 생활에 지침이 될 듯하다.


💥P.s
🪄술과 슈퍼우먼
1. 빨리 소주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2. 우리 부부가 외식을 하며 술 한잔할 때면
3. 편의점에 가서 맥주나 마실 요량
4. 동네 엄마들과 술을 마셨다.
5. 술 한잔하고 싶은 날 유일한 술친구였던 남편은 남이 될 판이고
6. 언니가 말아준 소맥 비율이 환상적이다.  
7. 금요일, 친구들과 -술 한잔했다. 오리고기와 소맥은
8. 술 많이 마시지 마. 술 안 마셔. 위가 아파서
⛱️⛱️⛱️
음주 문화는 남성 위주의 문화였다. 페미니즘이나 슈퍼우먼 등의 직장 여성이 많이 나타나면서 이제는 여성들의 보편적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국제보건기구에서는 한 잔 음주도 독이 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슈퍼우먼이 되기 위하여 술을 마셔야 한다면 착각이다. 오히려 슈퍼우먼이라면 이러한 문화는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읽어 가면서 술이라는 단어에 애착을 느끼는 듯한 작가를 본다.
술과 슈퍼우먼이 연결된다면 작가는 비겁한 글을 쓰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소재거리의 빈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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