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배매아는
2021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에 단편 <결>로 등단했다. 오랫동안 여행과 글쓰기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1. 들어가며
작품의 결은 평행선상에 있다. 어떠한 결들은 예측이 가능하지도 않다. 작품의 하나 하나에 꼭꼭 숨긴 결들은 쉽게 현미경적인 보기를 거부한다.
2. 작품들
🧨결
우리가 슬픈 건 우리가 슬플 때 그 슬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숙화가 쿠리하리와 정말 친구 사이였고, 쿠리하라가 그녀에게 이 곡을 준 후 세상을 떠난 게 사실이었다 할지라도, 그녀가 노래를 녹음하던 당시 이미 쿠리하라는 세상을 떠난 지 몇 달이 지났을 지도 모른다.
👉진숙화(중국가수)와 쿠리하라 마리(결의 작곡가)와 그녀와 그녀의 친구 이야기이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는 진숙화의 노래를 공유하는 일상이 오픈된 사이이다. 어느 날 그녀의 친구가 물에 빠지고 그녀는 그의 친구를 구하기 위하여 물에 들어 가지만 체력의 부족으로 둘다 위험에 처하게 된다. 구조대에 의해 그녀는 생명을 건지지만 그녀의 친구는 죽고만다. 병상에서 일어난 그녀는 뜻밖에서 뒤바뀐 사실에 혼란스러워 한다. 그녀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그녀의 친구가 구하려다 죽었다는. 그녀는 사실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기로 한다. 쿠리하가 작곡한 결이 꼭 진숙화를 위해 쓴 곡이라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파위나 모드
처음 태국에 왔을 때 그녀와 함께 보트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건넌 적이 있었다. 내가 강 이름을 물었을 때 그녀는 짜오프 라야- 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태국어는 언어의 악보를 지니고 있다. 모드는 마치 그 악보의 음률을 따라 소리를 굴리며 무언가 내 게 장난을 거는 듯 했다.
이 우리에게 더 이상의 뜻과 표현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기적처럼, 우리 사이에 의식하지 못하는 새 자연스런 언어 에 대한 습관이 형성되어 갔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보내는 암호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나누는 어떤 교신 체계인 것만 같았다.
👉나(한국 사람)와 파위나 모드(태국사람) 이다. 사랑의 감정이 치솟아 날 때에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서투를 수 밖에 없다. 언어에 일상적 사건이 빠짐없이 담기지 못한다는 이치와 같이 그 말이란 서로간의 사랑을 이루 다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은 도파민으로 가득하며. 사랑엔 삶의 갖가지 일들이 언제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우(고양이 울음 소리)
어디에서 나온 소리인가? 창가에 있는 고양이가 밤새 ngao(나우) 라고 운다. 하지만 내 방엔 naou(나우)란 울음이 떠돌아다닌다. 고양이가 운 ngao는 어디로 갔으며, 내가 들은 naou는 누가 운 소리 인가? 만약 내 방에 태국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 고양이가 울 때, ngao란 소리를 들을 것이다. 나 혼자 그가 듣는 것을 못 듣고 있으며 방에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던,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소리를 듣고 있다. 누가 내게 춤다고 말했는가?
👉솜, 나릴란 켐비차와 나(한국어 강사)
는, 자기 혼자만의 오해는 다분히 몽환적이다. 오독하기란 상상의 시간이다. 그것은 이미지를 깨우고 내 틀에 맞추려는 자기 과시적 욕망이다. 개성에 따라 헤아릴 수 없는 결함이 물결 무늬를 그린다. 따라서 우리 마음엔 각기 다른 무늬를 그린 틀이 있고 무엇이든 보고 듣는 것은 그 틀을 따라 유유히 흐른다.
ngao(외로운)라고 발음해 그 고유의 결을 따라 naou(차가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잠자리가 지나간 길
꿈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밤의 미풍에 가만히 흔들리는 감나무가 있고, 호흡을 멈추고 땅을 더듬는 어슴푸레한 잡초들이 있는, 어둔 한지 같은 불빛이 가물가물 번지는 뒷마당의 정지된 송환 속으로. 우리는 창가에 테이블을 갖다 놓고(..)그걸 우린 풍경에 음들을 수혈하는 일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신은 내게 다른 사람들도 드나들 수 있는 여관이 아니라, 우리 둘 만이 지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요("..)일 종의 공간에 대한 예의 같은 거야, 라고 말하며 웃던 당신의 얼굴도,
👉당신(헤어진 애인) 나. 나의 친구 동희
이제 그리운 사람들을 찾는 시공간성은 이를테면 "둘만 이 지낼 수 있는 그런 공간", 즉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람들 과 '나'만의 고유한 장소이다. 그 시공간성을 거슬러 둘만의 장소를 탐색한다,
🧨동선의 추억
크라운 맥주 공장 옆에 도림동 성당이 있다. 어머니는 주일이면 그 성당에 가곤 했었을까? 아니면 굴뚝의 매연이 두려워서 멀리 문래동 성당까지 갔었을까? 성서를 품에 안고 다니던 그 경건한 동선은 이제 어 머니의 몸속에 없다. 그러니 그 동선의 추억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목공예품을 팔러 다니던 길도, 이미 늙어버린 아버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 우리 가족의 동선(영등포구, 도림동, 교회, 성당, 아버지,외할버지)의 추억을 따라가는 여정은 무한의 창조적 욕구를 감당해야겠지만. 몸 속 어딘가에 여 전히 존재하겠지만, 몸밖을 나서면 그 집도, 그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도 사라지고 없다. 눈은 변화를 쫓고 마음은 흔적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다시 불 때
내가 음치란 사실을 알고도, 그녀는 내가 부르는 장국영 노래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장국영 노래를 불러 주리라 생각해 왔으므로, 밤이면 나는 그녀의 방으로 건너가 이불 속에서 손목을 꼭 진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바람이 다시 불 때를 불러주곤 했었다. 사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한 번 자살하는 것과 같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생이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저승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곳의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자지 못한다. 낯선 곳에서 자는 일이란 저승 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 장국영이야기와 자신의 사랑이야기는 캡쳐되는 화면과 같다. 그리운 사람들을 찾는 마음이 확장되면서 둘 만이 지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은 시공을 초월한다. 즉 그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무한대의 감정이 별빛이 되는 순간 그리움은 회오리가 된다.
3. 나가며
그리움을 그려낼 수 있을런지,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기억할 수 있을런지, 나와 인연속에 파고든 결을 이해할 수 있을런지.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 그대로 바람에 실어 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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