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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숙 인생/실뱅 테송, 백선희 옮김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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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생-2024.문학나눔
지은이 실뱅 테송(Sylvain Tesson)은 작가이자 극한 조건의 여행과 탐험에 심취하였으며, 두 발로 세상을 살며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2009년 단편 부문 콩쿠르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스 상을 수상하였고, 그의 다른 작품 '시베리아의 숲속에서'로 2011년 에세이 부문 메디치 상을, '눈표범'으로 2019년 르노도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백선희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 석 ㆍ박사 과정을 마쳤다.



👉👉15편의 단편 중에 두 편을 골랐다.
아스팔트와 돼지라는 단편이다. 작자의 말에 의하면 노숙 인생의 글 제목은 이렇게 태어난다. 낯설어서 기억하기 어렵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을 가리켜 "노숙할 이름" 이라고 하였는데. 중세기 험난한 시기에 여행객이 주막이나 여인숙에 재워달라고 하면 경계심을 보이며 이름을 물어보는데 낯선 이방인의 이름일 경우 방을 내주지 않아 여행객은 마구간이나 차가운 곳에서 잠을 자야만 한 것에서 "노숙할 이름" 이 생겨난 것에서 따 온 것이다.

1.아스팔트

- 💥유리,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온 지구가 아스팔트로  뒤덮였다고. 트살카만 빼고.
우리는 세상의 조롱거리야 
 - 에돌피우스, 우린 일하고 있어. 주정뱅이에게 내줄 시간이 없다고. 꺼져!  


🌸🌸 에돌피우스는 트살카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의 밭에서 집 까지는 그야말로 심각한 비포장 도로이다. 대형 트럭이 진흙속을 질척거리면서 때로는 진흙탕 물을 튕기고 지나가고 폐를 매연으로 순환시키기도 하는 그런 길이다.

💥트살카의 청년들은 기회만 나면 버스에 올랐다. 그들은 덜컹거리는 요동을 견뎠고, 6시간 후에는 도시가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그러면 그들은 그곳에  자리 잡고 더는 되돌아가지 않을 꿈을 꾸었다. 이 추세를  뒤집으려면 트살카를 제 시대와 이어줘야만 했다.  

🌸🌸🌸
더는 인간의 내음을 맡을 수 없는 시골,
그래서 떠나는 젊은이들. 이들이 떠나고 나면 여기는 황량한 사막이 될거야 아마!
동네의 아스팔트를 깔기 위한 전제 조건의 하나일 뿐.



💥이동의 흐름은 한여름에 뒤집혀서 도시를 향해 내려가는 넓은 차들보다 마을로 올라오는 큰 차들이 더 많아졌다. 작은 골짜기 깊숙이 둥지를 튼 푸른 안식처가 자동차로 갈 만한 거리에 있다는 소문이 바투미의 부유한 동네로 금세 펴진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고지대로 모험을 나섰고, 대담하게 마을로 들어섰다. 약국 여주인이 첫 민박을 열었고, 곧 집집마다 숙식 제공 민박 가격표를 내걸었다.
작정하고 출발했다.

🌸🌸🌸
아스팔트를 드디어 깔았다. 변화는 항상 좋은 쪽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에돌피우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지났다.  한 번만 더 가속하면 계곡 아래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리로 이어지는 마지막 커브길에서 길 한쪽으로 너무 늦게 붙는 바람에 맞은편에서 올라오던 트럭을  들이받았다. 브레이크를 밟거나 어떤 반사행동을 하거나  옆으로 미끄러질 짬조차 없었다.

🌸🌸🌸변화의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맞는 이들이 여유를 잃어버린다. 타티아나와 옥사나는 그의 두 딸이다. 기록 경신을 하듯 치달리는 부스탄의 차량이 아래에서 올라오는 트럭과 충돌하여 같이 타고 있던 타티아나와 함께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에돌피우스는 다음날 당장 손에 피가 나도록 곡괭이로 도로 전체를 망가뜨리겠다고 맹세했다. 자신이 아스팔트 까는 발안자였고, 자기  딸이 제물이 되어 버린 그 아스팔트를 마지막 남은 한 뼘
까지 파괴할 작정이었다.  

🌸🌸🌸 아스팔트는 에돌피우스에게 괴물이 되었다.
딸의 목숨을 앗아간 흉기인 셈이다.

- 💥어디 있었나, 이 불행한 친구야! 경사가 외쳤다  - 자네의 남은 쌍둥이 딸이! 손목을 그었어! 슬픔을  이기고! 이웃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구할 수 있어, 하고 타마라가 말을 잘랐다.  약사가 말했다   그래, 도시까지 한 시간 안에만 도착한다면!  

🌸🌸
살리고 죽이는 것이 아스팔트일까? 인간일까?
좋아 했다가 싫어 했다가 하는 당사자는 또 누구인가?
나의 앞에 전개되는 모든 현상의 책임자는 나라고 생각하고 싶다.




2.돼지

💥
켄트버리에서 부친 편지 하나가 그날 아침 쉽버든 법원에 도착해 그 지역 담당 검사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친애하는 귀하,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조부모님들처럼, 조부모님들의 부모님들처럼  심지어 과거를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우리 가문의 시조들처럼 대를 이어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밭에서 돌을 골  라냈고, 낮은 담장을 세웠으며, 숲을 보호했고, 석회질 땅에서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지요. 운명에 대한 질문은 한 번도 제기된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농 가를 이어받았지요.
르 도르세Le Dorset는 낙원이었고, 삶은 달콤했습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으며, 누가 죄인일까요?  어떻게 우리는 지옥이 이 땅에 도래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을까요?  
저는 저들의 비명을 더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더는 견  딜 수가 없어요.

🤲🤲
돼지의 전개는 생산과 소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서술하는데 포인트를 주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생산과 인간스럽지 못한 소비를 꼬집어 보여주고 있다.  

💥수천 명을 먹여야 한다고 말했어요. 지구에 더는 가축을  위한 자리가 없고, 인간은 가축을 풀밭으로 데려갈 시간이 없다고 말이지요. 이제는 같은 지면 위에서 기술로만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인위적 가감이 없는 생산은 폭발적인 소비를 따를 수 없기 때문에 기술과 장비의 발전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방목의 한계는 규모의 축산업이 필요하였고, 소비의 속도에 맞쳐진 개별 축사는 온갖 비상식적 방법의 성장을 도모하게 된 이유이다.


💥그것은 혁명이었습니다. 피의 현실을 믿는 사람들의 손에 길러진 우리에겐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먹어온  짐승들은 도르세의 땅에서 자란 풀을 먹었고, 도르세의  햇볕에 몸을 데웠으며, 도르세의 바람을 맞고 컸습니다  흙에서 길어 올려져 풀의 섬유질에 흡수되었다가 짐승들의 근육 조직으로 퍼졌던 에너지가 우리 몸에 공급되었지요. 에너지는 수직으로, 깊은 곳에서 풀과 짐승을 거쳐 인간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인간의 속도가 소비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생산은 인간이 아닌 동물을 겨냥한다. 전혀 인간의 시간이 아닌 셈이다. 왜냐하면 생산물에는 우리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온 에너지들이었죠.  
땅의 화학 성분들을 인간의 혈관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젠 흙이 필요 없어졌다고 우리에게 알리는겁니다.  
👉👉 화학성분, 가축에 대한 폭력, 인위적인 개체 증가.

💥누구보다 가장 불안해하는 건 새끼들이었습니다. 새끼들은 3주 후에 젖을 뗏지요. 다시 어미에게 인공수정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2년 동안 암퇘지는 다섯 번 새끼를 낳았습니다. 마지막 출산을 하고 나면 도살장 행이었지요. 암퇘지가 새끼들을 젖 먹이기 위해 내리닫이 살문 아래 누우면 새끼들은 창살 너머로 젖꼭지에 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미와의 유일한 접촉이었어요. 새끼들이 싸워서  서로를 죽도록 물어뜯지 못하게 저는 새끼들의 꼬리와 앞니를 산 채로 뽑았습니다. 사료를 고기로 바꿀 때 생기는  문제는 새끼 돼지들을 늑대로 둔갑시킨다는 겁니다.  

✨️✨️생태계에서 보면 인간은 무지함에 함몰되어 멀리 생명선을 넘어선 탐욕자입니다

💥변한 건 우리가 아니라 사물의 가치라는 겁니다. 그게  예전과 같지 않다고 했지요. 고기 한 조각이 쟁취였을 때는 돼지 한 마리의 가치가 컸습니다.
고기 한 조각이 습관이 된 뒤로 돼지는 그저 생산품이 되었고요. 고기가 권리가 된 뒤로 돼지는 제 권리를 잃었다는 거죠.  

🦜🦜돼지에게 권리를 찾다뇨?
오직 권리는 인간에게만 있지요.

💥저의 시신은 햇살 아래,
바람이 쓰다듬고 지나는 곳,
나뭇가지들이 흔들리고,
피들 개울이 조잘거리는 곳에 놓아주길 바랍니다.
제가 저의 가축들에게 박탈한
그 모든 것  
앞에 놓아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오늘도 돼지들을 친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돼지에게 권리를 되돌려 주고 싶은 생각은 없는 시간입니다.

에드워드 올리버 노윌스 씀.

🧚‍♀️🧚‍♀️다시 처음부터
15 편의 단편을 모은 노숙 인생을 보면서 실뱅 테송의 현대사 비평서라는 느낌이 가득 찹니다. 이 책에서 그는 조지아, 네팔,  텍사스, 이란, 인도, 프랑스, 멕시코, 키르기스스탄, 시베리아, 아프가니스탄, 에게해, 낙소스 항구, 스코틀랜드, 어느 무인도 시베리아 수용소, 브르타뉴의 중대 등, 지구상의 개미처럼 하찮은 사람들, "삶의 현실이란 그물에 걸려 버둥거리는" 나약한 인간들을 서술 합니다. 아스팔트를 깔아 문명화 대열에 합류하려는 오지 시골 마을 사람, 집약 축산업에 절망한 축산업자,
긴 세월의 불평등과 학대에 어느 순간에 복수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여성들,  바다에 홀로 낙오된 톱모델, 무인도에 조난된 많은 국적의 선원들, 아프가니스탄의 지뢰 제거반 병사, 우주 미아가 된 미립자, 우편선이 무인도에 난파되면서 그와 함께 내던져진 트렁크에 담긴 편지를 읽는 여성, 40년 동안 숨어 살다가 해제 마지막날 어처구니 없는 최후를 맞는 어느 살인자,  세상 끝의 등대지기. 어느 한 단편도 편하게 웃어가며 볼 수 있는 페이지는 없습니다.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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