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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와 편지

받지 못한 편지들-3

by 돛을 달고 간 배 2025.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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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돌아올 때는 이 편지를 꼭 품 안에 넣고
남쪽의 오라버니에게 평양 량원리에서 복실 올림.
  

오라버니는 경상북도에 내려가 있다. 무덥기만 하던 지난 여름에 평양을 떠났다. 이제 집 앞 벌판은 황금빛이고 과수원의 사과도 빨갛게 익었다. 평양 양원리의  복실이 경상북도 선산군 인민위원회 선전과에서 일하는 오라버니 림형섭에게 긴  편지 한 장을 부쳤다. (역자 이 흥환 글)



편지 내용
오라버님 전 상서  

1950년 7월 11일 오라버님이 평양에서 떠나던 그때만 하여도 덥고 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동생, 사랑하는 고향을 버리고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남방으로 향할 때 오라버니의 희망은 컸을  것입니다. 그때의 오라버님의 모습이 내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간에 선선한 가을철이 닥쳐왔습니다. 우리집 앞 벌핀에는 황금빛 파도치는 벼이삭들이 춤을 추며 조국의 통일 독립을 기다리는 듯이 흔들거리며 맞음하고 있습니다.  
오라버니! 이 황금빛 벼이삭들이 맞음을 따라 하루바삐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나는 고대하고 있습니다. 과원에는 햇님의 빛을 받아 세파랗던 사과가 지금은 빨간색으로 모두가 변하였습니다. 거기에서도 물론 이런 사과를 많이 잡술  줄 믿지마는 아마 거기에는 사과가 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라버님 안심하십시요. 우리 가내 일동은 모다(모두) 평안하오니 안심하고 일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병환도 맏형님의 병환도 모다 무사하오니 특히 안심하십시오.  그리고 작은 오빠는 지금 진지 남자중학교에 로어(러시아어) 교원으로 있습니다. 나도  아직 고급 중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북조선의 고급 전문학교는  모두 무기 연기가 되어서 9월 21일까지 학교에 나아가고 지금은 동리에서 각  학교 학생이 다 모여서 하루에 3시간 공부하고 한 시간 반 교양하고 자기 혼자서도 공부하며 하루에 한 집씩 이어 XXX 퇴치 사업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나아갈 때 보다는 좀 나쁘지만 이것도 참 자미있습니다.  우리 가내 일동은 모두가 오라버님이 일을 다 보시고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및일이 남지  않았겠지요? 하루바삐 여기에는 매일과 같이 그 무식한 미 제국주의자들이  와서 하는 야만적 행동은 끊길 줄을 모릅니다. 지진동에도 몇 번이나 와서 기관총을  들러지만 사람도 상하지 않고 건축도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그놈들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내갈리곤 하는 바람에 우리 동무들이나 나는 몇 번이나 혼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놈들의 비행기를 볼 적마다 이제는 좀 무서운 감을 느끼는 중입니다. 조국이 통일되는 그 날까지 경상북도의 구경을 다하고 돌아와
우리 가족에게 다 알려주세요. 옥체 건강하여 안녕히 계십시요. 자주 연락을  바랍니다.  고요한 달밤 달빛은 창으로 숨어들며 귀똘이들은 오라버님의 소식이나 전하는 듯 노래를 부르며 날뛰는 밤, 가내 일동은 꿈나라로 가고 나 혼자 책상과  마주 앉아 오라버님의 생활을 그리며 밤11시 씀  
1950년 9월 23일 복실은 올림  


🦜🦜역자 이흥환의 첨언
기관총을 들렀다'는 색다른 표현이 나온다. 기관총을 내갈리다는 표현도 썼다. 아무렇게나 흐르듯 쓴 것 같은데도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면 복실의 글 솜씨는 여간 아니다. 귀똘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날뛰는 밤'이란다. 남들은 다 잠든 밤  이라고 흔히들 쓰는 대목을 복실은 '가내 일동은 꿈나라로 가고 나 혼자 책상과  마주 않아 오라버님의 생활을 그린다고 오빠 곁으로 바싹 더 다가가 앉는다  복실의 나이 몇이나 됐을까. 동네에서 다니던 고급 전문학교가 문을 닫았다고  했으니 전문학교 학생이다. 스물 안쪽은 틀림없고 기껏해야 열여덟 언저리이다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웃는다는 나이, 복실은 편지 뒷장에 시 한 편을 썼다.  

복실의 편지 뒷장 오빠를 그리는시

구름 넘어 멀리 있는 곳  
어느 때나 그린 내 오빠  
봄도 가고 가을도 가고  
이 해도 꿈같이 지났네  

오나 언제 오나
오빠 고향으로 언제 오나  
꿈에라도 꿈에라도  
내 오빠 보고 싶어  

언제나 돌아오시럽니까!  
아! 그립다, 그때,
그 옛날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보탰다  
오라버님,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내가 보낸 이 편지를 품 안에 넣고 집으로  가지고 돌아오십시요. 부탁합니다, 꼭!!  

🦜🦜
오빠와 장난 치며 지냈을까?
오빠가 업어주며 개울을 건넸을까?
복실은 오빠에 대한 절절한 감정이
애뜻함을 까마득하게 넘어서는 듯 하다.
받지 못한 편지의 호소는 너무 공간에서 메아리처럼
떠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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