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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따르는 마음

탄핵의 소용돌이속에서 읽는 시 두편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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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5. 29>  

👉 여기에서 풀은 국민이고, 시민이고, 서민입니다.
👉 바람은 정치의 격랑이며, 공포이고, 두려움 그 자체 입니다.
👉 풀은 쓰려져도 넘어져도 바람은 지나갑니다.
👉 너무도 지금의 분위기와 흡사합니다.
👉 풀들이 빽빽하게 촘촘히 서 있노라면 바람은
풀들을 어쩌지 못 할 겁니다.


祈  禱기도/김수영
  (4∙19 순국학도 위령제에 붙이는 노래 )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괭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쟝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혁명이 성취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죄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죄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1960. 5. 18>  

💕 시는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언어가 주류이지만
세상의 불합리함과 자유를 위한 시인의 함성 또한 정서적 교감을 상쇄할 만한 울림이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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