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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과 석등 이야기-10 상징체계에서 상징하는 것을 빼내어 버리는 순간 그것은 우리들의 관심에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탑이라는 것은 "상징의 고도화"라고 규정지어도 그 본연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탑에는 신앙이 존재하고, 문화를 전승하며, 그 현란한 모양새는 종합예술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본래 탑塔이라는 말은 스투파에서 나왔다. 스투파स्तूप 기원을 보자 붇다는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나무 아래서 열반에 들었다. 열반에 들자 슬픔에 싸인 대중은 붇다의 시신을 다비(茶毘, 화장)했고, 유골은 여덟 부족에게 각각 분배되었다. 이 각각 부족들은 탑(塔)을 만들어 그곳에 유골을 모셨는데, 이것을 근본 8 탑(根本八塔)이라 한다. 유골을 분배받지 못한 부족은 유골을 담았던 병을 가지고 가서 병탑(甁塔)을.. 2024. 4. 20.
탑과 석등 이야기-9 청량사터에는 칠 층 석탑과 오 층 석탑 등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이 두 탑을 가리켜 오누이탑 혹은 남매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 상원이라는 승려가 어려움에 처한 호랑이를 구해주자, 호랑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처녀를 업어다 주었다. 상원은 처녀와 남매로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수도에 정진하였고, 처녀의 아버지가 그 갸륵한 뜻을 기려 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탑은 그중 오 층 석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그 위에 둔 기단의 아랫돌은 각 4장의 돌로 짰다. 특이한 점은 기단의 가운데기둥을 별도의 돌로 끼워두었다는 것이다. 탑신의 각 층 지붕돌은 얇고 넓어서 균형과 안정감을 잃고 있다. 1·2층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2단인데, 모두 .. 2024. 4. 19.
탑과 석등 이야기-8 산청 법계사삼층석탑 지리산 천왕봉 동쪽 중턱에 자리잡은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가 세운 절이라 전한다. 해발 1400m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다.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망경사, 지리산 묘향암 등 높이에 논란이 있음.) 한국전쟁 당시의 화재로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을 지으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당 왼쪽에 위치한 이 탑은 바위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각 모서리에는 기둥을 넓게 새겼다. 각 층의 지붕돌은 두터운 편이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다. 탑의 머리장식 부분에는 포탄 모양의 돌이 얹혀있는데, 나중에 보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바위를 .. 2024. 4. 19.
탑과 석등 이야기-7 함안 장춘사 오층석탑 장춘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원래는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었으나 현재는 4층까지만 남아 있다. 탑신의 몸돌은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으로, 평면이 모두 사다리꼴이 되도록 윗면의 폭을 좁혔다. 이는 층수가 올라감에 따른 시각적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1·2층은 3단, 그 이상은 모두 2단을 두었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보다는 높고 날렵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373호 보천사지 삼층..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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