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어머니를 따라 나아가 온숙국(溫宿國)에 이르렀다. 바로 구자국의 북쪽 경계였다. 당시 온숙국에는 한 도사(道士)가 있었다. 신묘(神妙)한 말솜씨가 빼어나서 명성을 여러 나라에 떨쳤다.
그는 제 손으로 왕의 큰 북을 치면서 스스로 맹세하여 말하였다.
“논쟁으로 나를 이기는 자가 있으면 내 목을 잘라서 사죄하겠다.”
구마라집이 이른 뒤에 둘이 서로 다른 논쟁을 벌여 따졌다. 도사는 헷갈리고 얼이 빠져 불교에 머리를 조아리고 귀의(歸依)하였다. 이리하여 구마라집의 명성이 파미르 고원 동쪽에 가득하였다. 명예가 황하[중국] 밖에서는 널리 퍼졌다.
구자국왕은 몸소 온숙국까지 가서 구마라집을 맞이하여 구자국으로 돌아왔다. 널리 여러 경들을 강설하니, 사방의 먼 지방에서 존숭하고 우러러 아무도 그를 대항할 자가 없었다.
頃之隨母進到溫宿國卽龜茲之北界時溫宿有一道士神辯英秀振名諸國手擊王鼓而自誓言論勝我者斬首謝之什旣至以二義相撿卽迷悶自失稽首歸依於是聲滿蔥左譽宣河外龜茲王躬往溫宿迎什還國廣說諸經四遠宗仰莫之能抗
그 당시 한 왕녀(王女)가 비구니가 되었다. 자(字)를 아갈야말제(阿軻耶末帝)라고 한다. 그 비구니는 많은 경전들을 널리 보았다. 특히 선(禪)의 크나큰 요체를 깊이 알았으며, 이미 2과(果: 사다함과)를 증득했다고 하였다. 그 비구니는 구마라집의 법문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이에 다시 큰 모임을 마련하고, 대승 경전의 심오한 이치를 열어줄 것을 청하였다.
구마라집은 이 법회에서 모든 현상이 다 공하여 내가 없음[皆空無我]을 미루어 변론하였다. 음(陰)이나 계(界)는 임시 빌려 쓴 이름이지 실제가 아님[假名非實]을 분별하였다. 당시 모인 청중들이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여 슬프게 느끼며, 깨달음이 뒤늦었음을 한탄해 마지않았다.
구라마집의 나이 스무 살에 이르자 왕궁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비마라차(卑摩羅叉)에게 『십송률(十誦律)』을 배웠다.
時王子爲尼字阿竭耶末帝博覽群經特深禪要云已證二果聞法喜踊迺更設大集請開方等經奧什爲推辯諸法皆空無我分別陰界假名非實時會聽者莫不悲感追悼恨悟之晩矣至年二十受戒於王宮從卑摩羅叉學『十誦律』
얼마 후 구마라집의 어머니는 구자국을 하직하고 천축국(天竺國)으로 갔다. 구자국왕 백순(白純)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나라는 얼마 안 되어 쇠망(衰亡)할 것입니다. 나는 이곳을 떠납니다. 천축국에 가서 3과(果: 아나함과)를 증득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구마라집의 어머니는 이별에 임하여 구마라집에게 말하였다.
“대승 경전의 심오한 가르침을 중국에 널리 떨치도록 하여라. 그것을 동쪽 땅에 전하는 것은 오직 너의 힘에 달려 있을 뿐이다. 다만 너 자신에게만은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니, 어찌 하겠니?”
구마라집은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도리는 중생의 이익(利益)을 위해 자신의 몸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반드시 불법의 큰 교화[大化]를 널리 퍼뜨려 몽매한 세속을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는 고통을 당한다 하더라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有頃什母辭往天竺謂龜茲王白純曰汝國尋衰吾其去矣行至天竺進登三果什母臨去謂什曰方等深教應大闡眞丹傳之東土唯爾之力但於自身無利其可如何什曰大士之道利彼忘軀若必使大化流傳能洗悟矇俗雖復身當爐鑊苦而無恨
이에 구마라집은 구자국에 체류하여 신사(新寺)에 거주하였다. 후에 절 곁의 오래된 궁중에서 최초로 『방광경(放光經)』을 얻었다. 즉시 책장을 펼쳐서 읽으려고 할 때에, 마라(魔羅, Mara)가 와서 경문(經文)을 가렸으므로 종이만 보일 뿐이었다. 구마라집은 이것이 마라의 소행인 줄 알고는, 서원하는 마음을 더욱 견고히 하자 마라가 사라지고 글자가 나타났다. 인하여 『방광경』을 익히고 암송하였다.
於是留住龜茲止于新寺後於寺側故宮中初得『放光經』始就披讀魔來蔽文唯見空牒什知魔所爲誓心逾固魔去字顯仍習誦之
다시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대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째서 이러한 것을 읽는 것인가?”
구마라집이 대답하였다.
“너는 바로 작은 마라이다. 속히 떠나라. 나의 마음은 대지와 같아 굴러가게 할 수 없다.”
구자국의 신사(新寺)에 머물렀다. 머무른 2년 동안 널리 대승의 경론(經論)들을 외우며, 그 비밀스럽고 심오한 뜻을 꿰뚫었다.
구자왕은 구마라집을 위하여 금사자(金師子)의 법좌(法座)를 만들었다. 중국의 비단으로 자리를 깔아, 구마라집으로 하여금 법좌에 올라 설법하도록 하였다. 구마라집이 말하였다.
“저의 스승님도 대승을 깨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 스승님께 교화를 하고자 합니다. 이곳에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復聞空中聲曰汝是智人何用讀此什曰汝是小魔宜時速去我心如地不可轉也停住二年廣誦大乘經論洞其秘奧龜茲王爲造金師子座以大秦錦褥鋪之令什升而說法什曰家師猶未悟大乘欲躬往仰化不得停此
구마라집은 스승의 방문으로 인해 본디부터 품던 회포를 풀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였다. 『덕녀문경(德女問經)』을 설법하여 모든 현상이 대부분 인연(因緣)ㆍ공(空)ㆍ가(假) 임을 밝혔다. 예전에 스승과 함께 모두 믿지 못하던 것이기 때문에 우선 그것을 강설한 것이다.
스승은 구마라집에게 말하였다.
“너는 대승에 대하여 무슨 특별한 현상을 보았기에 그렇게도 숭상하려고 하는가?”
구마라집이 대답하였다.
“대승은 심오하고도 맑아, 모든 존재하는 현상이 모두가 공(空)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그러나 소승은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서 구분하여, 여러 가지 빠뜨려 잃어버린 것이 많습니다.”
什得師至欣遂本懷爲說『德女問經』多明因緣空假昔與師俱所不信故先說也師謂什曰汝於大乘見何異相而欲尚之什曰大乘深淨明有法皆空小乘偏局多諸漏失
스승이 말하였다.
“네가 말한 ‘모든 것은 다 공하다[一切皆空]’는 것은 심히 두려워할 만하구나. 어떻게 유법(有法)을 버리고 공(空)을 좋아할 수 있단 말이냐. 꼭 그 옛날 미치광이와 같구나.
그 미치광이가 실을 잣는 이에게, 실을 잣되 최대한으로 가늘면서도 보기 좋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실 잣는 이가 정성을 기울여 먼지처럼 가늘게 실을 자았다. 미치광이는 그것도 오히려 굵다고 원망하였다.
실 잣는 이는 크게 노하여 허공을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가는 실입니다.’라고 하니, 미치광이는 ‘그렇다면 왜 보이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실 잣는 이는 ‘이 실은 너무 가늘어 우리 중의 솜씨 좋은 장인(匠人)조차 볼 수 없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미치광이는 크게 기뻐하였다. 보이지 않는 그 실로 베를 짜 달라고 베 짜는 이에게 부탁하였다. 베 짜는 이도 역시 실 잣는 이를 그대로 흉내내었다. 그들은 모두 많은 상(賞)을 받았지만, 그러나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너의 현상이 공하다는 것도 역시 이것과 같구나.”
師曰汝說一切皆空甚可畏也安捨有法而愛空乎如昔狂人令績師績線極令細好績師加意細若微塵狂人猶恨其麤績師大怒乃指空示曰此是細縷狂人曰何以不見師曰此縷極細我工之良匠猶且不見況他人耶狂人大喜以付織師師亦效焉皆蒙上賞而實無物汝之空法亦由此也
그러나 구마라집은 계속해서 비슷한 것끼리 연관지어[連類] 진술하였다. 서로 문답을 주고받은 지 한달 남짓 지나자, 스승이 마침내 믿고 받아들였다. 스승은 감탄하여 말하였다.
“ ‘스승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것을 도리어 제자가 그 뜻을 열어 준다’고 하는 것을 바로 여기에서 증험하는구나.”
이에 스승은 구마라집에게 스승의 예를 올리고 말하였다.
“화상(和上)은 바로 나의 대승의 스승이고, 나는 화상의 소승의 스승이오.”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구마라집의 신통함과 빼어남에 엎드려 복종했다. 매년 강설(講說)할 때에는 왕들이 법좌(法座) 옆에 꿇어 엎드렸다. 구마라집으로 하여금 그 위를 밟고 오르게 하니, 그를 소중히 대우함이 이와 같았다.
什乃連類而陳之往復苦至經一月餘日方乃信服師歎曰師不能達反啓其志驗於今矣於是禮什爲師言和上是我大乘師我是和上小乘師矣西域諸國咸伏什神儁每至講說諸王皆長跪座側令什踐而登焉其見重如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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