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구마라집의 도는 서역에 퍼지고, 그의 명성은 동쪽 황하에까지 미쳤다. 그 당시 부견(符堅)이 관중(關中)에서 외람되이 천자라고 일컬었다[僭稱]. 외국(外國)의 전부왕(前部王)과 구자왕(龜玆王)의 동생이 모두 와서 부견에게 조회하였다. 부견이 두 왕을 알현하였다.
이 두 왕이 부견에게 진언하였다.
“서역에는 진기한 물건들이 많이 산출됩니다. 청컨대 군사를 이끌고 가 평정하여 속국이 되기를 요구하십시오.”
什旣道流西域名被東川時符堅僭號關中有外國前部王及龜茲王弟竝來朝堅堅引見二王說堅云西域多產珍奇請兵往定以求內附
부견의 건원(建元) 13년(378) 정축년(丁丑年) 정월에 태사(太史)가 아뢰었다.“어떤 별이 외국의 분야(分野)에 나타났습니다. 덕이 높은 슬기로운 사람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보좌할 것입니다.”
부견이 말하였다.
“짐이 들으니, 서역에는 구마라집이 있고, 양양(襄陽)에는 사문 석도안(釋道安)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들이 아니겠는가?”
즉시 사신을 파견하여 그들을 찾았다.
至符堅建元十三年歲次丁丑正月太史奏云有星見於外國分野當有大德智人入輔中國堅曰朕聞西域有鳩摩羅什襄陽有沙門釋道安將非此耶卽遣使求之
17년 2월에, 선선왕(鄯善王)과 전부왕(前部王) 등이 또다시 부견에게 군사를 청하여 서역을 정벌하자고 달래었다.
건원 18년(382) 9월, 부견은 효기장군(驍騎將軍) 여광(呂光)과 능강장군(陵江將軍) 강비(姜飛)를 파견하였다. 전부왕(前部王)과 거사왕(車師王) 등을 거느리고 군사 7만 명을 이끌어서 서쪽으로 갔다. 구자국(龜玆國)과 언기국(焉耆國) 등 여러 나라를 정벌하였다.
至十七年二月善善王前部王等又說堅請兵西伐十八年九月堅遣驍騎將軍呂光陵江將軍姜飛將前部王及車師王等率兵七萬西伐龜茲及烏耆諸國
출발에 임하여 부견은 여광을 건장궁(建章宮)에서 전별(餞別)하면서 여광에게 말하였다.
“대저 제왕(帝王)은 천명(天命)에 응하여 다스리고 창생(蒼生)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것[子愛]으로써 근본을 삼는다. 어찌 그 땅을 탐하여 정벌하는 것이겠는가. 바로 도의를 품는 사람[懷道] 때문에 정벌하는 것이다.
짐은 들으니, 서역에는 구마라집이라는 이가 있어 불법을 깊이 이해하고 음양(陰陽)을 익숙히 잘 알아 후학들의 으뜸이 된다고 한다. 짐이 깊이 생각하건대 어질고 밝은 이들은 나라의 큰 보배이다. 만약 구자국을 정복하거든 곧바로 역말을 급히 달려 구마라집을 후송하라.”
여광의 군대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에 구마라집은 구자왕 백순에게 진언했다.
“구자국의 국운은 쇠하였습니다. 반드시 강한 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해 뜨는 곳의 사람들이 동방으로부터 오면 삼가 공손히 받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칼날에 대항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백순은 구마라집의 진언에 따르지 않고 전쟁을 하였다. 마침내 여광이 구자국을 격파하여 백순을 죽이고, 백순의 동생 백진(白震)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臨發堅餞光於建章宮謂光曰夫帝王應天而治以子愛蒼生爲本豈貪其地而伐之乎正以懷道之人故也朕聞西國有鳩摩羅什深解法相善閑陰陽爲後學之宗朕甚思之賢哲者國之大寶若剋龜茲卽馳驛送什光軍未至什謂龜茲王白純曰國運衰矣當有勍敵日下人從東方來宜恭承之勿抗其鋒純不從而戰光遂破龜茲殺純立純弟震爲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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