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사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의 냉산(冷山)에 위치한 사찰이다. 삼국시대 신라 눌지왕 때 아도 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 이후 중창되어 세존 사리탑 금동 사리함기 등 다수의 성보 문화유산이 있으며 대한 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국보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桃李寺 世尊舍利塔 金銅舍利器)
Gilt-bronze Reliquary from Sakyamuni Stupa of Dorisa Temple
경상북도 선산군 도리사에 있는 종 모양의 세존사리탑 안에서 발견된 육각의 사리기이다.
사리기는 높이 17㎝로 기단, 몸체,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면에 도금이 잘 남아 있다. 평면 육각형으로 각 면의 기단에 안상을 뚫었다. 몸체의 두면에는 불자(拂子)와 금강저를 든 불교의 수호신인 천부상을 선과 점으로 새겼다. 남은 4면에는 사천왕상을 선으로 새겼다. 이들의 배치는 사천왕상 중에서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천부상을 배치하여, 다문천이 정면에 올 수 있게 한 듯 보인다.
지붕 처마와 추녀에는 고리가 있어 장식을 달았던 것처럼 보이며 각 모서리 끝단에는 귀꽃장식이 솟아 있다. 꼭대기에는 연꽃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그 중심에 꼭지만 남아 있어 원래 꽃봉오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귀꽃의 장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서, 8각이 유행하던 시기에 6각형의 사리기가 나타났다는 점이 특이하다.
보물
구미 도리사 석탑 (龜尾 桃李寺 石塔)
Stone Pagoda of Dorisa Temple, Gumi
도리사는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질 당시 전설에 나오는 아도(阿度)화상과 관련이 있는 절이다. 아도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 한다. 정확하게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 없으나 신라 최초의 절이라고 전한다.
이 석탑은 대웅전 앞뜰에 있으며, 전체적으로 5개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층은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으로 여겨진다. 위의 2개 층은 탑의 중심부분인 탑신부(塔身部)이다. 탑신부의 1층과 2층 몸돌은 작은 정사각형의 돌을 2∼3단으로 쌓아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인다. 지붕돌 역시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처럼 층단을 이루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각각 한면에 문틀을 돋을새김한 널돌이 끼워져 있어 문짝모양을 표현한 듯하다. 맨 위의 2개층은 탑의 머리장식받침인 노반(露盤)이 포개진 것인지, 아니면 위층만 노반이고 아래층은 탑신부로 보아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인 탑들과는 다른 특이한 형태로 몸돌과 지붕돌 윗부분의 층단구성이 모전석탑처럼 보인다. 이처럼 희귀한 모습을 한 탑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아도화상사적비및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 (阿度和尙事蹟碑및桃李寺佛糧畓施主秩碑)
도리사 남쪽의 비탈진 소나무숲 속에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비이다.
‘아도화상사적비’는 아도화상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비로, 자연 암석을 받침 삼아 그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앞면에 이무기를, 뒷면에 네 마리의 용을 조각하고 그 사이마다 구름·용을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 앞면에는 위쪽에 가로로 전서체로 된 비의 이름을 새겨두고, 그 아래에 세로로 비문을 적었다. 뒷면에는 ‘자운비(慈雲碑)’라는 글씨를 새겼으며, 그 끝에 건립연대를 밝혀두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세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논과 밭을 시주한 이의 이름과, 논밭의 규모를 적어놓은 비이다. 자연 암석을 받침 삼아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꽂아두고, 머릿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굵은 선으로 연꽃봉오리와 줄기를 조각하였고, 두 옆면에는 2중으로 된 원모양의 띠를 새겨 장식하였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모양을 한 머리장식이 우뚝 솟아있다. 앞뒷면에 세로로 새긴 비문은 앞면 첫줄에 비의 이름을 적은 후, 그 아래에 논밭을 시주한 자와 그 규모를 밝혀두었다. 비문 끝에 남긴 기록을 통하여 숙종 38년(1712)에 비를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17세기 중엽∼18세기 초에 세운 작품들로, 비문이 갖는 역사적 의미나 조각의 솜씨 등은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구미 도리사 극락전 (龜尾 桃李寺 極樂殿)
도리사를 세운 시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신라 최초의 절로 알려져 있다.
극락전은 도리사의 부속 암자인 금당암의 법당으로 1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벽면에는 벽화를 그려 놓았다.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도리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 (桃李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
이 불상은 도리사의 극락전(極樂殿)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좌상으로 재질은 향나무이고 그 위에 금을 입힌 부처이다.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에 낮고 작은 살상투를 갖추었다. 얼굴 표정은 위엄과 자비를 잃지 않은 조선시대의 원만한 불상양식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손 모양은 양손을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바닥을 위로 보게 하여 손가락을 구부려 엄지와 장지를 맞대었고, 오른손 역시 왼손과 같은 형태이나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이며 두 무릎까지 덮여 있는데 균형과 단정함을 지니고 있다. 불상의 모습과 조각 수법 등으로 보아 17세기에서 18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구미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목조금칠(木造金漆)된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아미타여래상(阿彌陀如來像)이다. 수인(手印)은 양손을 무릎위에 얹고 오른쪽 손바닥은 위로, 왼쪽 손바닥은 아래로 향하게 되어있다(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 머리는 나발(螺髮)형이고 낮고 작은 육계를 갖추었다. 양미간의 중앙에는 작은 백호(白毫)가 새겨져있다. 굴곡(屈曲)이 적은 넓은 얼굴이나 이목구비(耳目口鼻)의 형상은 정연하다. 굵은 목에 삼도(三道)가 새겨져있다. 이 불상의 얼굴은 정연하면서 형식화한 이목구비의 새김, 그리고 굵은 목에 새겨진 삼도의 표현이 사실적(事實的)인 조형에서 벗어난 공예적(工藝的)인 조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표정에서 위엄(威嚴)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몸에 걸친 불의(佛衣)는 양팔에 걸쳐지는 통견의(通肩衣)이며 양 무릎까지 덮여있다. 법의양식(法衣樣式)은 단조로운 주름무늬와 유연성이 없는 형식화(形式化)된 표현이다. 그러나 균형(均衡)과 단정(端整)함을 잃지 않고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17세기경의 불상조성양식(佛像造成樣式)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作品)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경상북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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