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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

구름 마저 멈추어 서는 곳-지리산 벽송사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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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 (우)50056
지번 마천면 추성리 259(지리산 아래)

1) 벽송사는 6.25를 치루면서 아픈 상처를 지닌 역사의 현장이다. 빨치산의 중심무대로 민중의 삶을 할퀴고 지나간 여정은 지금도 곳곳에 남겨져 있다.

※ 아름답고 착한 것은 인간이든 사물이든 그냥 두고 보지를 않는 묘한 습성을 중생심이라 이름해도 될런지

2) 또한  조선초기 불교억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절멸하다시피 하던 시기에 벽송 지엄선사의 지극한 수행의 결과로 선불교의 명맥을 유지케 한 선불교의 종가이다. 벽송사 선방의 문고리만 잡아도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정말 기운이 살아나는 도량이다.

3) 벽송사를 위한 헌시

잿빛 승복만 봐도
끌려갔다.
단지 석씨를 따른다는 이유로

낮에는 농부가 되고
밤에는 참선을 하며
모진 세월을 넘었네.

이심전심의 묘법
끊어짐이 없이 이어 온
것은
오로지 백송 지엄선사의
법을 위하여 법을 버린
숭고한 정신

지금 여기에 오롯이 남아
사나이 기상을
일깨우고 있다네.



4)
번뇌에 찌들린 세상 사람들아
무엇이 문제던가.

찰나일 망정
세상 근심 내려두고

천왕봉에 걸린
구름의 한 소식 받아 적게

쉬어라, 쉬어라.
거둔 욕심
내려 놓아라.


5)
취모검이 춤을 춘다.
살아 있음을 집착하니
단 칼에 양단 하네.

선과 악의 시비는
이미 분별하기 이전인데도

어느 누가
좌와 우를 갈랐던가?

6)
간 밤에 비췬 달빛 황홀하여
다시 찾아 보니
호수 속의 그림자라
이미
오고 감이 없도다.

벽송사 도인송

지지대를 받친 소나무가 미인송이고 꼿꼿하게 서 있는 소나무가 도인송이다.

7)
한 시름 일으킬 게
뭐 있을까?
현전직하 바로 이 자리가
나의 진심일세.

번잡한 일상을 잠시 제쳐두고
나란 놈 어찌 생겨 먹은 놈인지
한번쯤
청산과 운무에
멍 때려 보자.
그런 의미에서 벽송사는 의미 있는 곳이다.
바로 옆쪽에는 서암정사라는 눈을 호강시키는
예쁜 절도 있으니
참 좋은 곳이다.

8)
탑이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이미 탑도 나무도
그 자체로 우주인걸.


9)
보물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咸陽 碧松寺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of Byeoksongsa Temple, Hamyang


벽송사는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碧松)이 창건한 사찰이다. 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이고 있다. 벽송사의 창건연대가 1520년인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양식 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2단으로 구성된 기단은 아래층 기단에 가운데돌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얕게 조각하였는데, 특이한 점은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의 사이에 높직하게 딴 돌을 끼워놓은 것이다. 위층 기단의 맨윗돌은 한 장의 널돌로 이루어졌으며 밑에는 수평으로 얇은 단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각 층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추녀가 얇고 반듯하며 마무리 부분에서 치켜오른 정도가 완만하다. 하지만 지붕돌 윗부분은 경사가 급하고 치켜올림의 정도도 심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2층이 2단, 3층이 3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 남아있다.

이 석탑은 조형예술이 발달한 신라석탑의 기본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며 짜임새 또한 정돈되어 있는 작품으로, 조선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법당 앞에 탑을 두는 것과 달리 탑을 절 뒤쪽의 언덕 위에 세우고 있어 주목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다.

10)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함양 벽송사 묘법연화경 목판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후진(後秦)의 구마라습이 한문으로 번역하였으며, 전체 7권 28품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판은 7권 28품의 경전 본문 221매와 더불어 변상도(變相圖) 2매, 예제편람 1매, 규작음 2매, 다라니경 1매 등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 특히 불경의 내용을 풀이하여 그림으로 나타낸 변상도는 그 솜씨가 매우 정교하여 작품성이 돋보인다.

끝부분에 조선 숙종 11년(1685) 경상남도 함양군 지리산 안왕사에서 만들었다는 간행기록이 있으나, 안왕사의 위치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는 경상남도 함양군 벽송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벽송사로 옮겨온 기록도 밝혀지지 않았다.

11)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함양 벽송사 벽송당 지엄 진영


조선 중종 대의 승려인 지엄(1464∼1534)의 초상화이다. 지엄은 조선불교의 정통 법맥을 이은 분으로 당호가 벽송이며 속성은 송씨이다.

초상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가로 85㎝, 세로 134㎝의 크기이다. 약간 오른쪽을 바라보고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으로, 승복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왼손에는 끝에 술을 늘어 뜨린 불자를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편안하게 의자의 팔걸이에 얹었다.

광해군 9년(1617) 왕의 명에 의해 인오스님이 그렸던 다섯 대사의 초상화 중 하나로, 삼화상(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과 비슷한 기법을 보이고 있다. 다섯 대사는 벽계정심·벽송지엄·부용염관·청허휴정·부휴·홍각등계이다.

그림에 있는 기록은 망가져 보이지 않지만, 화폭의 윗부분에 있는 휴정대사의 시는 잘 보존되어 있다.


12)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
함양 벽송사 목장승


벽송사로 들어가는 길가의 양쪽에 마주보고 서 있는 한 쌍의 목장승이다.

잡귀의 출입을 금하는 기능과 함께 불법을 지키는 신장상(神將像)으로서의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2기 모두 몸통이 절반 가량 땅 속에 묻혀 있어, 드러난 높이가 2m 내외이고, 그나마 한쪽 장승은 윗부분이 불에 타 파손이 심하다.

대체로 잘 남아 있는 오른쪽 장승은 대머리에 크고 둥근 눈이 돌출되었다. 코 주위에 깊은 선을 둘러 뭉툭한 코가 더 두드러져 보이며, 꽉 다문 입 주위와 턱 아래에는 톱니 모양의 수염을 묘사해 놓았다. 몸통에는 ‘호법대신(護法大神:불법을 지키는 신)’이라는 이름을 새겨 놓았다. 머리의 일부가 불에 타버린 왼쪽 장승은 눈 한쪽과 코의 가운데 부분이 파손되었다. 남아 있는 눈은 크고 둥글며, 입은 다물고 있으며, 그 아래에 짧은 수염을 표현하였다. 몸통에는 ‘금호장군(禁護將軍:경내에 잡귀의 출입을 통제하는 장군)’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구전에 의하면 약 70년 전에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목장승으로서는 시대가 오래되어 보기드문 모습이다. 비록 눈·코·입이 과장되게 표현되긴 하였으나 순박한 인상을 주고, 무서운 듯 하면서도 친근함을 느끼게 하여 질박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료출처:국가유산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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