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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

대웅전을 찾아-호구산 용문사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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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길 166-11
남해 용문사는 환히 트인 바다보다는 숲길과 꽃향기가  발길을 끌어당기는 사찰이다. 오랜 연륜이 군데 군데 스미어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여 준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남해 용문사 천왕각 (龍門寺天王閣)


용문사는 조선 중기에 탐진당과 적묵당을 지었는데, 이곳 자리가 좋다하여 금산의 보광사 대웅전 등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기고 절의 이름도 용문사라 하였다.

절의 입구에 있는 천왕각은 조선 숙종 28년(1702)에 지었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사천왕을 모시고 있는데, 다른 절의 경우 마귀를 밟고 있는 형상이지만 이곳의 사천왕은 부정한 양반이나 관리를 밟고 있다. 동쪽은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비파, 칼, 용, 창 등을 들고 절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문지기 구실을 한다.

보물
남해 용문사 대웅전 (南海 龍門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Yongmunsa Temple, Namhae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중창기록과 건축양식으로 볼 때, 조선 현종 7년(1666)에 일향화상에 의해 건립되고 영조 47년(1773)에 중수가 완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면3칸, 측면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기단은 지형을 고려하여 전면은 2단으로 높게 형성하고 배면과 측면은 1단으로 구성하였다. 기둥은 4면의 우주를 평주보다 크게 사용하였고, 전면과 후면 그리고 측면의 순서로 기둥 크기를 달리하여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초석 위에 팔각형 활주를 세워 구조적 안정을 꾀하고 있다.

공포형식은 외 3출목 내 4출목이며, 주간포의 개수를 전·후면은 각각 2개, 측면에는 1개를 적절하게 놓아 공포간격을 조절하여 완결성을 높이고 있다. 공포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강하게 주며, 살미에는 장식성이 강한 연꽃, 연봉을 초각하였다. 보머리에는 봉황과 용의 머리를 초각하여 18세기의 장식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붕은 건물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웅장하게 구성하여 전면에서 볼 때 장중한 느낌을 준다.

내부의 고주는 측면 기둥열에서 약간 후퇴시켜 불단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18세기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가구는 1고주 5량가로 대량은 내부고주에 걸쳐 배면 평주까지 통부재로 연결하고, 좌우의 평방도 통부재로 사용하여 앞뒤로 벌어지는 응력에 대비하였다.

특히 대웅전 반자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거북, 게, 물고기, 해초 등을 조각하여 바닷가 건축물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습은 해남 대흥사 천불전, 나주 불회사 대웅전의 빗반자에 나타난 물고기 장식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평면구성과 공포의 표현기법, 상부 가구와 닫집 등에서 수려한 장엄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이러한 장엄의 극치는 18세기 이후 건립된 사찰 주불전의 특징적 건축양식으로 서남해안 지역의 건축경향이 동쪽으로 확장되며 발전하는 양식적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건축양식과 가구수법 및 포작의 장식성이 뛰어난 건물로 현존하는 남해안 해안지역의 사찰건축 중에서 흔치않은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으로 건축사적 가치가 크므로 국가지정유산(보물)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남해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이 삼존불은 대웅전 중앙에 위치한 장방형 불단 위에 각각의 연화좌를 두고 그 위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 뒤편 정수리 쪽으로 서너 개의 나발이 결손 되었거나 소매와 군의자락에 도금이 탈락한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세 구의 불상은 저부에 마련된 복장공이 모두 열려 있었고, 복장물 역시 대부분이 도난당한 상태였으며, 그중 경전 · 다라니 등이 불상 내부의 목 부분과 팔, 다리 쪽으로 끼워져 남아 있었다. 또한 양측 협시상은 저부의 복장공 외에 배면 중앙에 타원형의 복장공을 따로 만들어 다른 판재로 엉성하게 덧대어 마감되어 있었다. 배면에 마련된 별도의 복장공은 팔의 내부나 머리와 같이 좌상의 밑바닥에서 복장물을 채우기 어려운 것을 쉽게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
남해 용문사 괘불탱 (南海 龍門寺 掛佛幀)
Hanging Painting of Yongmunsa Temple, Namhae


남해용문사괘불탱은 본존불상 좌·우에 협시보살상만을 배치시켜 삼존도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상을 위시하여 좌측(向右)에는 정면을 향한 채 똑바로 서서 여의(如意)를 들고 있는 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向左)에는 좌협시보살상과 동일한 자세로 서서 연꽃가지를 받쳐 든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본존불상은 어깨가 훤히 드러난 오른팔을 길게 내려뜨리고 왼손을 가슴 앞까지 들어올린 채 두 발을 좌·우로 벌려 연화좌를 딛고 서 있는 입불상으로, 둥글넓적해진 형태에 눈·코·입이 작게 묘사되고 미소가 잘 보이지 않는 경직된 표정의 얼굴은 수평으로 들어올려 각이 진 어깨와 더불어 18세기 후반 이후 불화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 특징이다.

좌협시보살상은 보관을 쓰고서 여의를 들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모니불의 좌협시인 문수보살상이라 추정된다. 머리 크기에 비하여 어깨가 좁아지고 작아진 발로 인하여 위축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팔에 걸쳐 흘러내린 길고 굵은 천의자락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우협시보살상 또한 좌협시보살상과 표현이 유사하다. 그림 하단부에는 화기가 남아 있다.

이 괘불탱은 인물의 형태 및 표정, 신체 비례 등에 있어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의 전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직된 듯 조화롭고 세련된 표현기법을 보여주어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크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남해 용문사 영산전 석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남해 용문사 영산전


석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은 1680년 조각승 경옥(敬玉)에 의해 제작된 불석재 불상이다. 이 불상은 짧은 상반신과 높은 무릎의 신체비례, 방형의 큰 얼굴, 이마에서 이어지는 뭉뚝한 코와 작은 입의 이목구비, 다리 사이의 양 갈래로 균등하게 펼쳐진 간결한 옷주름 등이 주목된다. 비례와 방형 얼굴, 착의법 등에서 조선시대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불석재 불상만이 지니는 재료적 특징인 몸에 밀착된 손, 높은 무릎 등도 잘 반영되어 있다. 또한 기다란 눈, 넓은 미간, 콧등이 편평하고 높게 돌출된 코, 짧은 인중과 작은 입 등의 이목구비와 기다란 손가락 표현 등에서 경옥만의 작가적 특징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남해 용문사 영산전 불상들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경옥의 가장 늦은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제작시기, 제작자, 봉안처가 명료하며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와 조각승 경옥의 게보 연구에 학술적 가치가 있다. 또한 경상도 지역에 활발히 조성되었던 불석 재료의 불상이라는 점에서 지역사 연구에도 가치가 있으므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남해용문사동종


남해 용문사 대웅전 내에 보관된 이 동종은 음통과 용뉴가 1개씩 있으며, 편평한 천판은 세장방형의 12개 연판으로 구성

되어 있고, 鐘形은 견부에서 鐘口로 내려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용뉴는 입을 벌리고 있는 용의 머리와 3개의 발가락을 가진 두 발이 모두 천판과 맞닿아 있고, 몸의 형태는 ‘∩’자형으로 1개의 여의주를 받치고 있으며, 꼬리 부분은 음통을 2번 휘감고 있다. 용의 두부는 큰 눈과 날카로운 이빨, 크게 벌린 입, 뿔 표현이 생동감 넘치고 비늘 표현도 비교적 사실적이다. 음통의 구연부분은 4개의 연잎이 만개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아래쪽은 사선문으로 처리하고 있다. 상대는 돋을새김의 원권(圓圈)에 梵字文을 삽입하여 배열하였으며, 신부에는 4개의 유곽을 배치하고 유곽과 유곽사이에는 합장형 보살입상 4구를 배치하고 있으며, 당좌는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유곽은 사다리꼴 형태로 그 안에 총 9개의 볼록한 乳와 유좌가 위치하며, 유곽대에는 연속 당초문을 나타내고 있다. 보살상은 사다리꼴의 틀 안에 돋을새김 기법으로 표현 하였는데, 두부에는 2조의 선으로 구성된 원형 두광을 구비하고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상호는 코와 입 표현이 비교적 사실적이며, 군의 위에 천의를 걸쳤으며 의습 표현이 매우 자연스럽다. 하대는 종구에서 약 5cm 떨어진 위치에 연화당초문을 둘러 나타내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남해 용문사 건륭25년명 운판

운판의 형태는 정상부의 보주형 장식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원형의 당좌를 중심으로 외곽을 화염형으로 처리하였다. 일반적인 운판의 형태가 구름모양을 띠는 것과 달리 이 운판은 화염형에 가까운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좌우보다 상하가 긴 형태이다. 앞뒤 면 모두 당좌 주변에 돋을새김 문양을 장식한 양면식 운판이다.

당좌의 상부에는 梵字 삽입 원권문 3개가 삼각형 구도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정상부와 좌우에 매달기 위한 구멍이 각각 1개씩 모두 3개가 뚫려있다. 당좌는 이중 원형 테두리를 둘러 구획하였는데, 당좌 내부에는 별다른 彫飾이 없고, 테두리 안에는 도식화된 蓮唐草文이 시문되어 있다. 그리고 당좌 주위의 여백에는 궐수문과 구불구불한 선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데, 운판이라는 유물의 성격으로 볼 때 도식화된 운문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당좌의 둘레에는「乾隆二十五年庚辰五月日」과「晋州百泉寺」라는 명문이 점각되어 있다. 그리고 배면의 문양구성 역시 당좌 테두리 내에 연당초문이 생략되었을 뿐 전면과 동일하며, 「道光十七年丁酉二月日買得」과 「南海竜門寺」라는 점각 명문이 새겨져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남해용문사목조


표면에 목리가 뚜렷하고, 일부 균열이 있으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통나무 가운데를 파서 만든 구유형태의 紙槽로 양끝에는 각각 37cm, 47cm의 턱받이가 마련되어 있으며, 그 중 한곳은 턱받이 밑에 부착된 세로부재에 직경 7.5cm의 원공이 관통되어 있다. 용기 내부의 중앙 바닥에는 배수를 위한 직경 5.5cm의 원공이 뚫려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남해용문사목조지장시왕상


두부가 민머리인 지장보살상은 상반신을 곧게 세워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양감있고 건장한 모습이다. 신체적 특징은 무릎이 높고 像底前後徑이 넓으므로 불신의 안정감을 더해준다. 상호는 사각형에 가까우며 살집이 있고 턱 부위를 모나지 않게 표현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이마가 아주 넓은 편이고 눈썹사이에는 백호가 돌출되어 있다. 눈은 옆으로 길고 눈꺼풀이 두꺼운 편이다. 코는 콧날을 완만하게 하고 콧방울을 작게 나타냈으며, 인중은 뚜렷하고 넓게 패여있다. 도톰한 입술은 입술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띤 모습이며, 귀는 크고 두꺼우며, 귓바퀴가 뚜렷하다. 목은 짧은 편으로 3조의 융기선을 평행하게 처리하여 삼도를 표현하였다. 양손은 제1지와 3지를 맞대고 양 허벅지 위에 각각 두었는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양손의 손톱은 비교적 크며 손마디 조각도 뚜렷하게 처리하였다.

착의법은 상체에는 가슴 아래로 평행하게 보이는 승각기를 먼저 입고,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고 그 위에 대의를 입었다.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진 대의는 목덜미에서 한번 접어서 양쪽 어깨를 덮고 흘러내렸으나, 오른쪽은 어깨부분만 감싼 변형통견식 착의이다. 대의는 양쪽어깨에서 3조의 주름선을 계단식으로 정연하게 표현하였다. 군의는 결가부좌한 양다리 아래로 넓게 드리워져있는데, 가장자리의 조각면이 매우 두껍다. 법의처리는 매우 두꺼우며 옷주름을 굵고 간략한 몇 조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좌협시 도명존자는 오른손에 석장을 쥐고, 우협시 무독귀왕은 합장은 한 채 각각 시립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어깨가 넓어 당당해보이고 온화한 인상이다. 얼굴은 방형이며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시왕상들은 모두 등받이와 팔걸이, 족좌가 있는 의자에 앉아 정면을 향한 자세이며, 표현기법은 거의 동일하다. 두부에는 무독귀왕상과 같은 원류관 형태의 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홀(제5·6·7·8·9·10상)을 쥔 경우, 책과 붓(제1·2상)을 들고 있거나 손을 무릎 위에 걸친(제3상) 다양한 모습이다. 얼굴의 세부표현은 도명과 무독상과 거의 같은데,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에서 백색 치아를 드러내어 익살스럽게 웃는 모습은 매우 해학적이다.

착의법은 역시 상체에는 紅袍를 입었고, 하체에는 청색 혹은 홍색

군의 위에 녹청·백록·청색 등의 요포를 걸쳤으며, 가슴부분에는 군의를 묶은 백색의 띠매듭이 발목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또한 가슴 중앙에서 부터 綬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고, 화문을 도드라지게 장식하였는데 이는 따로 제작하여 끼워넣은 것이다.

의자는 각각 조립하여 구성하였고, 족좌를 따로 부착하였다. 등받이 양측에는 용두장식이 있고, 팔걸이의 양측에는 鳳凰頭를 장식하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남해 용문사 석조보살좌상

약 300년 전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 경내에서 발견된 보살상이다. 현재는 하얀 분칠을 한 상태여서 본래의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원만하나 눈과 입이 작고 코가 큼직하여 다소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긴 상체에 넓은 무릎 등은 부피감이 풍부하고 탄력적이어서 보살상의 격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는데, 띠주름 무늬가 자연스러워 불상의 특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왼손은 배에 대고 병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대었는데 연꽃가지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통일신라 후기의 원만한 특징이 표현된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 내지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남해 용문사 승탑군

부도1·2·3은 석종형으로, 胴體 1장과 대석 1장 총 2장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동체는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종 모양이다. 부도1의 지상에 노출된 기단석은 팔각형이나, 각 변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동체를 얹은 대석 둘레에는 복련 단판연화문이 둘러져 있으나 다소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부도3(洗淡堂一行大師)은 종신의 상단과 하단에 연화문이 돋을새김으로 뚜렷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상륜은 꽃잎이 살짝 벌어진 연꽃봉 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부도4는 총 9기의 부도중 제일 작은 규모로, 기단석 1장, 胴體 1장, 옥개석 1장 총 3장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동체는 중간이 배가 불룩한 원통형 기둥 모양이며, 옥개석은 방형

으로 각 모서리가 약간 반전하고 있다. 옥개석 중앙 부분은 가운데가 둥글게 파여있고, 그 가장자리가 약간 파손된 상태이다.

그리고 대석 1장, 胴體 1장, 옥개석 1장 등 총 3장의 돌로 구성된 부도5는 커다란 자연석 암반 위에 설치하여 암반이 지대석과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대석은 상하로 구분하여 상단은 원형으로 다듬고, 하단은 4각형으로 처리하여 각각 문양을 새기고 있다. 중간이 불룩한 6각형의 의 동체는 종신의 길이가 폭에 비해 긴 편이며, 동체 상하단에 역시 문양을 새기고 있다. 옥개석은 평면 4각형으로, 옥개석 중앙에는 둥근 복발이 얹혀있고, 복발에는 음각 파문이 새겨져 있다.

부도6·7도 석종형 부도로, 총2장(대석 1장, 동체 1장)로 구성되어 있다. 동체는 아래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형식으로, 종신의 길이가 폭에 비해 긴 편이다. 종신 상하단에는 문양이 둘러져 있는데, 상단은 양각, 하단은 음각으로 처리되어 있다. 상륜은 보주형태를 띠고 있다.

부도8은 기단석 1장, 대석 1장, 동체 1장, 옥개석 1장 등 총 4장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석은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땅 속에 묻혀있다. 대석은 8각형으로 다듬었으며, 옥개석은 사각의 지붕 모양을 하고 있다. 옥개석 정중앙에는 목을 쭉 빼고 있는 자라(혹은 거북이)가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이 부도8의 경우 胴體에 명문이 일체 없으나, 그 옆에 별도의 標石(解塵堂天海大師族錄碑)이 있다. 이 표석 전면에 걸쳐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비교적 얕게 새겨져 있으며 비·바람에 많이 마모된 상태이다.

부도9는 기단석 1장, 종신 1장로 구성되어 있고, 기단석은 자연석을 이용하였으며, 대석은 없다. 동체는 아래로 내려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형태이며, 동체 상단에는 11엽의 단판연화문 양각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상단 정중앙에는 보주형태의 상륜을 설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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