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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

대웅전을 찾아 - 기장 장안사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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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기장 장안사 대웅전 (機張 長安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Jangansa Temple, Gijang

장안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3년(673)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중심건물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 산신각(山神閣) 등의 건물이 있다.

장안사 대웅전은 김방한의 ‘장안사대웅전기’(長安寺大雄殿記)와 근래에 발견된 ‘묵서명’에서 건물의 중건 및 중수연대가 명확히 규명되어, 부산 지역에서 다포식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조선 효종 8년(1657)에 새로 지었고, 이후 영조 20년(1744)에 연목 부분의 수리가 있었으며, 1948년과 1951년에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을 얹었다. 지붕처마를 받치면서 기둥 윗부분을 장식해 주는 공포는 기둥 윗부분 외에도 기둥사이에도 설치되어 있다. 건물 안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아미타여래불, 왼쪽은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건물이 비교적 높고 견실하게 건립되어, 사찰의 중심건물로서의 웅장한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앙곡이 강한 지붕, 정·배면의 공포 짜임새, 정면의 어칸 및 좌·우 협칸의 창호 구성, 보개천장 등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주요 구조재와 단청이 중창 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건축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보물
기장 장안사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 (機張 長安寺 石造釋迦如來三佛坐像)
Stone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Jangansa Temple, Gijang

기장 장안사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機張長安寺石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17세기 중엽 경에 활약한 ‘녹원(鹿元)’이 수조각승을 맡아 제작한 작품이다. 이 상은 ‘칠곡 송림사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55년)’, ‘양산 원효암 석조약사여래좌상(1648년)’과 마찬가지로 불석(沸石)으로 만든 것으로, 불석제 불상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다.

삼불좌상은 중앙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로 구성되었다. 본존 석가여래상은 둥근 머리 위에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와 반달형 중앙계주(中央髻珠)가 표현되었고, 이마는 편평하다. 턱이 짧은 방형의 얼굴은 콧날이 우뚝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자비로운 상호(相好)이다. 조성연대와 작가가 밝혀져 있어 17세기 중후반 불교조각사 연구에서 기준작이 될 수 있고, 불석제 불상의 본격적인 유행 시점에 제작되어 불상재료 연구에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상이다. 보물

삼불좌상뒤 영산회상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장안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長安寺 大雄殿 靈山會上圖)


장안사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는 크기가 4미터에 달하는 대작에 속한다. 화면에는 중앙의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의 협시보살과 사천왕을, 뒤쪽으로 여섯 제자와 타방불 2위, 그리고 4위의 팔부신장을 나누어 배치하였다. 화면은 부분적으로 약간의 훼손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상태가 양호하다.

본 작품은 장안사 대웅전 삼세불상의 뒷면에 걸려 있는 석가모니후불탱화로 채색은 전통적인 녹색과 적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부드러운 황토색을 넓게 채색하여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인물들의 비례도 조화로우며 섬세한 필선과 부드러운 채색이 마치 18세기 불화를 보는 듯하다.

이 작품은 19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금어인 금암 천여(金魚 錦庵天如, 1794~1878)를 비롯하여 6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이다. 금암 천여는 순천 선암사의 중창을 주도한 인물로 선암사를 중심으로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폭넓은 활동을 하였으며, 금어로서 종장(宗匠)이 되었던 사람이다.

금어 천여의 명성만큼 이 불화는 19세기 후불탱화의 기준작으로서 문화유산적 가치가 충분한 불화로 수작이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 (長安寺 應眞殿 石造釋迦三尊十六羅漢像)

장안사 응진전에 봉안되어 있는 중앙의 석가삼세불좌상과 좌우의 16나한상은 파손·결실된 부분이 없이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몸체 전체에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으며, 16나한상과 권속들의 법의(法衣)는 다양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다

응진전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들은 복장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기문에 통해 1684년에 양공(良工), 승호(勝湖), 희연(熙衍), 천휘(天輝), 천담(天潭), 법자(法孖), 법종(法宗), 수종(守宗), 허예(虛艺), 도신(道信) 등 9명이 관여하여 장안사에서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응진전의 23구 조각상은 장안사 대웅전의 불상보다 무른 불석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대웅전 불상보다 25년 후에 조성되었다. 응진전의 여러 상들은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과 동일한 시기에 조성되었고 조각 수법과 표현 기법에서도 동일하여, 당시 장안사에서 행해진 큰 불사(佛事)에 의해서 기문에 기록된 것처럼 많은 시주자들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안사 응진전 석가삼존불상과 16나한상 및 권속은 조성 시기와 봉안처, 조성자 및 시주자 일원이 명확한 17세기의 중요한 불교조각 작품이며, 조성자로 밝혀진 양공 명단은 아직 작품이 밝혀진 바가 없어 부산·경남지역의 불교 조각승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장안사 응진전 (長安寺 應眞殿)


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羅漢)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내부의 3칸은 통칸이며,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출입구를 바라보며 ㄷ자형으로 불단을 배치한 장안사 응진전에는 1684년에 조성된 석조석가여래좌상,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 등 석조삼세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16 나한상과 사자상, 천부상 및 인왕상이 배치되어 있으며, 삼세불좌상 뒷면에는 1882년에 제작된 석가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장안사 응진전은 2010년 10월 현장 조사에서 발견된 상량묵서를 통해 1899년(대한광무 3, 己亥) 3월 18일 묘시에 입주(立柱)하고, 같은 달 19일 미시에 상량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 응진전 건물의 건립연대는 1899년으로 볼 수 있으며, 현존하는 주요 구조 부재 역시 당시의 것으로 판단된다.

정면의 처마는 장연 끝에 부연을 시설한 겹처마이고, 배면은 부연이 없는 간략한 홑처마로 되어 있는데, 정면에 부연을 두어 겹처마를 형성한 것은 건물의 정면성과 의장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공포는 조선 말기에 성행한 1출목 삼익공식으로 다포계를 비롯하여 주심포계, 익공계 건축수법이 절충되어 있으며, 특히 공포의 제공과 익공쇠서 연꽃장식 용두(또는 봉두)의 사용을 통해 전반적으로 장식적인 성향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장안사 응진전은 겹처마를 통한 정면성의 부각 및 섬약한 익공쇠서와 화려하게 새긴 연꽃, 최상단의 용두와 봉두의 사실적인 조각에서 19세기말 부산 지역 사찰 부불전(副佛殿)의 건축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외1출목 삼익공식의 장식적인 공포형식 및 내부 수장 등에서 익공식 건축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는 건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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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응진전 영산회상도 (長安寺 應眞殿 靈山會上圖)


장안사 응진전 석가영산회상도는 응진전 석가삼존상의 뒷면에 걸려 있는 석가후불탱화로, 화면 전체를 붉은색으로 칠한 뒤 흰색과 황색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인물의 얼굴과 대좌 일부분만을 채색한 소위 홍탱(紅幀)이다. 부분적으로 훼손이 확인되나 전반적으로는 양호한 상태이다.

화면에는 석가모니와 18명의 제자만을 간단하게 묘사하였다. 본존 좌우측의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육나한상의 안면은 음영법을 사용하여 개성 있고 역동적인 표정이며, 자유로운 몸짓도 인상적이다. 특히, 화면 전면 좌우에 배치된 나한상 4위는 구름 위로 솟아 오른 연화대 위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서방극락정토의 연화화생자(蓮花化生者)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도상이다.

이 작품은 화기(畵記)에 의해 화승 수룡 기전(繡龍 琪銓)과 관허 의관(貫虛 宜官)의 지휘 하에 1882년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기전과 의관은 해인사의 화승으로 활약한 화승이다. 아울러 본 작품은 1882년 범어사 대웅전에 봉안된 불화를 조성할 때에 같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얼굴에 드러난 다양한 표정과 몸짓,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되는 문화유산이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장안사 명부전 (長安寺 冥府殿)


명부전은 죽은 사람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출입구를 바라보며 ㄷ자형으로 불단을 배치한 장안사 명부전에는 1684년에 조성된 석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 시왕을 협시로 한 지장시왕상 13구와 함께 동녀상, 귀왕상, 판관상, 사자상, 역사상이 좌우로 각 1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지장삼존상 뒷면에는 1856년에 제작된 지장보살도가 봉안되어 있다.

장안사 명부전의 건립연대나 건축형식에 대해서는 그 동안 이렇다 할 조사가 없어 건축사적 위치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알 수 없었으나, 2010년 10월 현장 조사에서 종도리 하단에 적힌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어 머릿글 부분 10행정도가 확인됨으로써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있었다.

묵서명에 따르면 명부전은 임진왜란 피해를 복구하던 1600년대 중반에 건립된 후 존속하다가 대웅전의 서까래를 수리하던 1744년에 중건되었고, 다시 1800년에 상연(上椽) 수리공사가 이뤄졌으며, 1800년 이후로는 이러하다 할 수리공사가 없었음도 확인되었다. 이를 볼 때 이 건물의 건립연대는 적어도 1800년으로 볼 수 있고, 더 이전으로는 1744년으로도 소급이 가능하다.

이처럼 건립연대를 오래 전으로 소급할 수 있는 것은 정면 상인방과 문선과의 맞춤 방식이 비교적 오래 된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고식(古式)의 반연귀맞춤으로 되어 있고, 그 밖의 부재들도 모두 1800년 수리 때 또는 그 이전의 1744년 중건 때 형성된 것으로서 보존상태도 상당히 양호한 편이며, 건축형식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공포도 비교적 오래 전 형식인 출목 없는 3익공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여래삼존상 복장물 일괄 (長安寺 應眞殿 石造釋迦如來三尊坐像 腹藏物 一括)

○ 장안사 응진전에 봉안된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에 납인된 복장유물에는 발원문을 포함하여 喉鈴筒, 『妙法蓮華經』 낱장, 觀世音菩薩寶篋手眞言 등이 있는데, 가장 윗부분에 발원문이 위치하고 그 아래로 묘법연화경, 후령통, 관세음보살보협수진언, 다라니 순서로 납입되었다. 그리고 석가여래상의 밑바닥에서는 太儀가 시주한 다라니가 발견되었다. 석조미륵보살좌상 내부에서 확인된 후령통을 감싸고 있는 황초폭자의 매듭이 이미 풀려진 상태로 발견되어 이전에 복장공이 한 차례 개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여래좌상에서 나온 발원문 내용을 통해 응진전 불상군의 제작시기가 1684년이라는 사실과 여기에 참여한 시주자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주로 승려와 재가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복장물 가운데 관세음보살보협수진언과 다라니는 시주자명을 묵서한 예가 많으며 경전을 시주하거나 불상 조성에 참여한 인물과 일치하는 사례가 있어 흥미롭다. 金邦翰(1635-1698)이 1660년에 쓴「長安寺大雄殿記」에는 1638년(인조 16) 태의(太儀)가 좌우 전각을 중건하였다고 기록하였는데, 좌우전각은 응진전과 명부전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복장물 가운데 다라니의 시주자로 太儀가 등장하는데 응진전의 중창자가 복장물의 다라니에서 확인된 점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장안사 응진전의 복장물은 그 물목과 형식이 시대성을 잘 따르고 있으며, 발원문과 후령통, 각종 경전류, 다라니 등이 불상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납입된 점, 응진전의 중창주인 태의의 존재가 다라니에서 확인되는 점 등이 불교의례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유물이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장안사 명부전 석조지장삼존 및 시왕상 복장유물 (長安寺 冥府殿 石造 地藏三尊 및 十王像 腹藏遺物)

기장 장안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지장시왕상(부산시 유형문화유산)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 후령통, 전적류, 다라니 등 복장물 일괄이다. 9건 이상의 발원문을 포함하여 조선시대의 귀중한 전적류, 수 백점의 다라니 그리고 12점의 후령통이 발견되었다. 유기로 된 후령통은 삼베로 된 황초폭자에 오색사로 묶여 있는데 간략화된 물목, 삼베와 유기의 재료 등에서 조선후기적 특징을 보인다.

전적류 10종 중,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6~10 중 권7~10은 기존의 목록에서 찾을 수 없어서 희구본이라 여겨지고,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합부된 불설부모은중태골경(佛說父母恩重胎骨經)과 함께 보물 "불설대보부모은중경(1992)"와 동일한 판본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합부된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佛說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도 고려 말기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성발원문은 석조지장보살좌상과 도명존자상․무독귀왕상․시왕상․권속상의 조성시기․주체․조직체계 등과 함께 당대 불교계의 실체와 사상적 경향, 장안사의 승려조직과 단월의 규모․실체, 불상의 조성형태 등을 진단할 수 있는 원천적인 기록유산이다. 또한 복장유물 가운데 포함된 「관세음보살보협수진언」 및 「범자다라니」 등도 이러한 역사․문화적인 실체와 함께 17세기 후기 복장의례와 복장유물의 실태, 생산․유통된 닥종이의 종류, 목판인쇄술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자료의 가치를 가진다.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에서 나온 복장물은 발원문, 후령통, 경전류, 다라니 등 복장물목이 잘 갖추어져 있고 장안사 명부전 중창과 관련된 내용이 확인되는 등 사찰 및 지역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유산
장안사연 (長安寺 輦)

장안사에 소장된 연(輦)은 조선후기 사찰에서 제작된 연으로서의 전체적인 골격은 유지하고 있으나 세부 장식물과 조각들이 원위치에서 분리되어 있으며 일부는 결실된 것도 있다.

연의 전체적인 형태는 4개의 손잡이로 이루어진 가마채와 사방에 창호(窓戶)가 있는 사각형의 몸체, 그리고 지붕인 옥개(屋蓋)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로 제작되어 있는 가마채와 몸체 바탕에는 붉은 안료로 채색이 되어 있으며, 특히 세부 장식을 위해 갖가지 문양이 조각되어 있거나 별도로 만들어진 장식물이 부착되어 있기도 하다.

몸체 바닥 저부에는 묵서(墨書)로 건륭(乾隆) 25년(1760)에 불광산 장안사 중단 연(佛光山 長安寺 中壇 輦)을 조성한 후에 다시 9월에 개조하였음을 밝히는 조성기(造成記)와 산중질(山中秩)을 적어 놓고 있다. 장안사 연과 유사한 양식의 연으로는 1752년에 제작된 안정사 연(安靜寺 輦, 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유산)이 있다.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유산
장안사 명부전 삼번상 (長安寺 冥府殿 三幡床)


장안사 명부전 불단 앞쪽에 놓인 이 경상(經床)은 예불이나 불교의식을 할 때 경 전 또는 목탁과 요령 등을 놓아두는 불교 목공예품이다. 소나무로 제작된 이 경 상은 두루마리 형태의 개판(蓋板)이 있는 가로로 긴 천판(天板)과 박쥐 형태의 풍 혈(風穴)이 있는 운각(雲刻), 호족형(虎足形) 다리 및 족대(足臺)로 구성되어 있다.

○ 천판 하부 바닥에 묵서(墨書)되어 있는 명문에서는 ‘長安寺 三幡床’이라는 명칭과 함께 건륭(乾隆) 11년 무진(戊辰) 7월에 조성되었다고 쓰여 있다. 또한 당시의 사 중질(寺中秩)을 먼저 쓴 후 이성귀, 김일금(李成貴, 金一金)이 명부전 삼번상을 만든 목수임을 밝히고 있다. 다만 건륭 11년은 병인년(丙寅年)이므로 2년 후인 1748년 무진년에 이 경상이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1760년에 제작된 부산광역시지정 민속문화유산 ‘장안사 연(輦)’에 묵서 되어 있는 서체와도 유사성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 장안사 명부전 삼번상은 경상의 이름과 조성의 절대연대 및 제작자를 알 수 있는 보기 드문 불교 목공예품이다. 특히 18세기에 제작된 경상의 조각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으로 부산광역시지정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관리·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유산
장안사 응진전 법대경상 (長安寺 應眞殿 法臺經床)

장안사 응진전 불단 앞쪽에 놓여있는 법대경상은 불경을 독경하거나 예불 등의 의식을 집전할 때 사용하는 서안(書案)의 일종이다. 소나무로 제작된 이 경상은 두루마리 형태의 개판을 지닌 천판과 연당초문(蓮唐草文)이 투조(透彫)된 운각 및 당초문이 투조된 호족형 다리와 족대로 구성되어 있다.

○ 운각의 연당초문과 다리의 중간지점 및 아래쪽 풍혈에는 공포재 파견초(栱包材 波 蓮草) 새김과 유사한 단청 문양들이 투조되어 있어 고식(古式)의 경상 조각의장(彫刻意匠)과 장식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두루마리 형태의 개판, 다리를 천판에 쌍촉짜임으로 결속한 점, 운각에 연당초문을 투조한 기법, 호족형 다리의 족통, 투조된 풍혈 및 족대 등이 16세기 경상 제작 양식을 따르고 있다.

○ 장안사 응진전 법대경상은 천판 하부 바닥에 묵서 된 명문에 의해 1706년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던 일반적인 경상 양식에 비해 앞선 양식을 지니고 있는 귀중한 불교 목공예품으로 부산광역시지정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관리·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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