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성산구 곰절길 191
성주사는
성인이 머무는 절이란 이름을 가진 성주사는
경남 창원시과 김해시 사이에 있는 불모산(해발 801.7m)의 서북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말사이다.
성주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2년(827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최근에 찾아진 1746년에 동계(스님)이 지은 ‘성주사사적문’에 따르면 ‘성주사는 신라 42대 흥덕왕때 무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라고 적혀있다.
성주사는 한때는 웅신사(곰절)라고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절이 소실(1592 선조25년)되었는데 1604년 진경대사께서 절을 다시 중창을 하려고 불이난 옛날 절터에 목재를 쌓아 두었는데 곰들이 밤 사이에 지금의 자리로 목재를 옮겨 놓아 이를 부처님의 뜻으로 알고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설화가 있다.
2006년에 신축된 지장전으로 지장보살을 이운하면서 발견된 복장물속에 ‘康熙二十 辛酉年 四月’(숙종7년/1681년)에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등 여러 권속을 시주한 시주자 명단과 함께 ‘불모산 웅신사’라는 절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음이 발견되었으며 또한 조선시대의 지도에서도 웅신사로 표시되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창원 성주사 대웅전 (昌原 聖住寺 大雄殿)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로,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처음 1681년(숙종 7)에 지은 뒤 1817년(순조 17)에 중수하였다. 건축 양식은, 앞뒷면에만 공포를 짜 올리고 옆면에는 생략하였다. 공포는 화려하고 장식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뒷면 내부의 공포만 간략한 교두형(翹頭形, 圓弧形으로 깎아낸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특징이다.
외부 벽화 가운데 왼쪽 면 두 곳에 곰의 그림이 있는 것은 진경 대사가 1604년 성주사를 중창할 때 도움을 준 곰을 그린 것이다.최근에 중수하면서 기단부 앞에는 대웅전 앞으로 오르내리기 위한 출입 계단을 두고, 오른쪽에는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경사로를 두었다.
보물
창원 성주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昌原 聖住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Seongjusa Temple, Changwon
이 삼존불상은 17세기 대 들어 크게 유행한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로 구성된 공간적 삼세불이다. 조성시주기에 따르면, 이 불상은 1655년 봄부터 불상제작을 시작하여 그 해 가을에 조성공사를 마치고 복장 점안을 하여 마무리하였다고 한다. 조성에 참여한 조각승은 녹원(鹿元), 지현(知玄), 찬인(贊印), 혜정(惠淨), 도성(道聖), 명신(明信), 긍성(肯聖), 명안(明眼), 학륜(學倫), 인종(印宗), 인신(印信) 등이다.
수조각승 녹원은 이 작품 이외 1659년에 기장 장안사 석가여래삼불상과 1673년 웅천 성흥사 목조지장시왕상 조성에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 수조각승 녹원의 작품 중 이 불상 보다 연대가 올라가는 불상은 아직 발견된 바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은 녹원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삼존은 모두 육계가 드러나지 않는 반구형의 머리,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부착한 나발, 이마가 넓고 턱 부분이 좁은 역 사다리꼴의 갸름한 얼굴형, 부드럽게 반개 한 눈, 낮은 코 뿌리에서 갑자기 돌출한 큼직한 코, 부드러운 입술, 두툼한 턱, 그리고 원통형의 목에 세밀하게 새긴 삼도, 두터운 대의에 표현된 힘 있는 주름 등에서 수조각승 녹원의 조각적 역량과 작품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조각적 특징은 수화승 녹원이 이 보다 3년 뒤에 제작한 기장 장안사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상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각적 완성도나 종교적, 예술적 감성은 이 삼불상이 단연 돋보인다.
이 삼불상은 수화승 녹원의 가장 이른 시기 작품이자 그의 작품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으로, 조각승 녹원의 작품세계와 활동, 그리고 17세기 중엽경의 조각사를 연구하는데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작품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성주사 용화전 안에 모셔져 있는 전체 높이 148㎝의 보살상으로, 불신과 광배(光背), 대좌(臺座)를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관음보살은 이름을 외우기만 해도 중생의 어려운 일을 구제해 준다고 해서 가장 널리 믿어지고 있다.
민머리 위에 화려하게 장식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원만하고 목에는 목걸이가 새겨져 있다. 둥근 어깨와 굵은 곡선으로 새긴 U자형의 옷주름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으나 상체에 비해 하체가 짧아 균형감을 상실하였다.
전체적인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창원 성주사 삼층석탑 (昌原 聖住寺 三層石塔)
사찰내에 있는 많은 국가유산 가운데 하나인 이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현재 아래층 기단은 일부만 남아 있고, 위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간단한 문짝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이고 처마선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네 귀퉁이는 치켜올림이 심한 편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석재가 놓여 있지만 원래의 것은 아니다.
간략해진 수법과 양식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보물
창원 성주사 감로왕도 (昌原 聖住寺 甘露王圖)
Buddhist Painting of Seongjusa Temple, Changwon (The King of Sweet Dew)
성주사 감로도는 화기에 의하면 1729년에 성징(性澄)을 증명과 수화승으로 맡고 신정(愼淨), 한영(漢英), 인행(印行), 세관(世冠), 국영(國暎) 등이 참여하여 그린 하단탱 불화이다. 성주사 감로도는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감로도와는 다르게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 그림의 화면구성은 상부에 칠여래(七如來)와 관음보살을 중앙부에는 지장보살, 인로왕보살을 비롯하여 아귀와 작법승 등 의식장면을 하부에는 역시 인간의 생활 양태와 죽음을 맞이하는 양상을 배치하였다. 이 그림의 가장 두드러진 도상적 특징은 조선 감로왕도 도상의 필수적 구비 조건이었던 시식대 즉 재단(齋檀)과 작법승의 장면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그와 더불어 화면을 향하여 오른쪽 상부에 극락세계를 의미한 전각이 배치되고 칠여래가 매우 강조되었고 전투 장면이 육상이 아닌 해전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재단이 생략된 감로왕도는 3점이 더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제작시기가 가장 앞서는 직지사 구장(舊藏) 감로왕도(1724) 역시 이 그림을 그린 성징(性澄)과 세관(世冠), 인행(印行) 등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따라서 이 성주사 감로왕도는 직지사 구장본을 모본으로 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조화로운 색감과 섬세한 세부묘사 등 안정된 화취를 지니고 있고, 도상적인 특이성 특히 직지사 구장본의 행방이 확실하지 않은 현재 매우 중요한 감로왕도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창원 성주사 석조지장시왕상 (昌原 聖住寺 石造地藏十王像)
성주사의 지장전 내에 안치되어 있으며, 지장삼존상과 시왕, 10구의 동자상 및 귀왕, 판관, 사자, 장군상이 남아있어 완벽한 면모를 갖추고 있는 17세기 후반의 기준작으로서 손색이 없는 자료이다.
지장보살불 및 시왕상, 권속상들은 석재로 만들어졌으며, 지장보살불과 시왕상은 금박한 좌상이며, 도명존자, 권속상들은 채색한 입상으로 조성기에 기재된 일체라 온전하게 보존되어져 있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비롯한 권속일체는 삶과 죽음을 연계하여 조상과 부모에 대한 효 사상을 고취시키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안이 되고 있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창원 성주사 동종 (昌原 聖住寺 銅鐘)
조선시대 만들어진 높이 111㎝, 입 지름 84㎝의 종이다.
종은 정조 7년(1783)에 제작된 것으로 소리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은 없으며, 종을 매다는 고리는 2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몸체 가운데에 4개의 유곽이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유곽 사이의 빈 공간에는 보살상이 새겨 있다.
문양의 조각기법이 조잡하고 표면은 거친 편이나, 조선시대 동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창원 성주사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 (昌原 聖住寺 石造釋迦三尊十六羅漢像)
성주사의 영산전 내에 안치된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은 조성연대와 제작자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권속일괄이 남아 있고 도상(圖像)이나 표현기법에서 조각승의 개성이 뚜렷해 18세기 경남지역 불교조각의 경향을 살펴보는데 자료적 가치가 크다.
석가모니불 등 삼존불은 석조형식에 옻칠하고 금박을 입힌 좌불상이다. 제1빈도라발라타시 등 나한상은 채색을 한 입상이며, 일부 나한 시동(侍童)은 좌상형태를 하고 있다.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창원 성주사 신중도 (昌原 聖住寺 神衆圖)
<성주사 신중도>는 대웅전 후불벽 뒷면에 봉안된 것으로 1892년 수화승 민규를 비롯한 4명에 의해 조성된 불화이다.
화면 하단 중앙에 기록된 화기를 통해 확인된다. 화면의 중앙에 조익관을 한 위태천을 중심으로 화면 상단에는 제석천·대예적금강·범천이 배치되어 있으며, 주위에는 다양한 신장이 표현된 조선 말기의 신중도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창원 성주사 석조관음보살입상 (昌原 聖住寺 石造觀音菩薩立像)
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성주사 용화전 안에 모셔져 있는 전체 높이 148㎝의 보살상으로, 불신과 광배(光背), 대좌(臺座)를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관음보살은 이름을 외우기만 해도 중생의 어려운 일을 구제해 준다고 해서 가장 널리 믿어지고 있다.
민머리 위에 화려하게 장식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원만하고 목에는 목걸이가 새겨져 있다. 둥근 어깨와 굵은 곡선으로 새긴 U자형의 옷주름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으나 상체에 비해 하체가 짧아 균형감을 상실하였다.
전체적인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창원 성주사 무염국사 진영 (昌原 聖住寺 無染國師 眞影)
<창원 성주사 무염국사진영>은 대웅전 안에 유리액자로 표구되어 신중도 옆에 봉안되어 있으며, 1876년에 조성되었다는 내용이 화단 중앙에 기록된 화기를 통해 확인된다. 조성 당시부터 성주사 대법당에 봉안되었으며, 화면 상부 중앙 '차사초창무염국사진영'(此寺草刱無染國師之眞影)이라는 영제(影題)를 통해 성주사를 창건한 무염국사임을 알 수 있다.
화면 속 무염국사는 화문석 위에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있는 전신좌상의 모습으로, 대부분 진영 속 인물이 좌안 7분면이 많은 것과 달리 정면을 향해 주시하고 있다.
통일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창한 무염국사를 그린 성주사 대웅전의 무염국사 진영은 진영도상에서 그 사례가 드문 산수를 배경으로 하여 깨달은 아라한과 같은 모습으로 고승대덕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기의 진영도와 비교해 차별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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