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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1/석보상절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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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의 출가

태자가 왕궁에 드시니 광명이 두루 비치시더니, 왕께 사뢰되,「출가하고자 합니다.」
왕이 손목을 잡고 울며 이르시되,
「그런 마음은 먹지 말라. 나라에 왕위를 이을 사람이 없다.」
태자가 이르시되,
「네 가지 원(願)을 이루고자 하니, 그것은 늙음을 모르며, 병이 없으며, 죽음을 모르며, 여윔을 모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왕이 더욱 슬퍼하여 이르시되,
「이 네가지 원은 예로부터 이룬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하시고, 이튿날에는 석종(釋種)중에서 용맹(勇猛)한 사람 오백 명을 모아서 문을 굳게 지키라고 하셨다.【용(勇)은 힘이 세며 날래다는 말이고, 맹(猛)은 사납다는 말이다.】
태자가 비자(妃子)의 배를 가리키시며 이르시되,
「이 후 여섯 해를 지나 아들을 낳으리라.」
구이(俱夷)가 여기시되, 태자가 궁을 나갈실까 의심하셔서 항상 곁에서 떨어지지 아니하셨다.
태자가 문 밖에 나가 보신 뒤로 세간 싫은 마음이 나날이 더하시거늘, 왕이 오히려 풍악 하는 사람을 더하여 태자를 달래시더니, 늘 밤중이면 정거천이 허공에 와서 일깨우고,
「악기와 오욕이 다 즐겁지 아니하고【오욕(五欲)은 눈에 좋은 빛 보고자, 귀에 좋은 소리 듣고자, 코에 좋은 내 맡고자, 입에 좋은 맛 먹고자, 몸에 좋은 옷 입고자 하는 것이다.】
세간이 무상(無常)하니, 어서 나오소서.」
하는 소리를 하게 하며, 풍악 하는 여자들이 익히 잠들어 옷이 벌어지고, 콧물과 침과 더러운 것이 흐르게 하니, 태자가 보시고 더욱 시틋하게 여기셨다.
태자가 자주 왕께,「출가하고 싶습니다.」
고 사뢰니, 왕이 이르시되,
「정각(正覺)을 이루어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다 주관하여 사생(四生)을 제도하여【사생은 네 가지 태어나는 것이니, 진 곳에서 태어나는 것과, 번생(飜生)하여 나는 것과 알을 까고 나는 것과 배어서 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을 다 이르는 것이다. 번생은 고쳐 되어 난다는 말이다.】긴 밤을 여의여 나게 하려 하니,【한긴 밤은 중생이 미혹하여 항상 밤에 있는 듯하므로 긴 밤이라고 한다.】칠보 사천하(四天下)를 즐기지 아니합니다.」
왕이 풍악하는 사람을 더하여 밤낮 달래시더니, 관상 보는 이가 왕께 사뢰되,
「이제 출가 아니하시고 이레가 지나면 전륜왕위가 자연히 오실 것입니다.」
왕이 기뻐 하셔서 사병(四兵)을 둘러 안팎으로 길을 막아 끊으셨다. 채녀(女采女)들이
태자께 들어 온갖 춤과 노래로 웃기며 갖가지 고운 모양을 하여 보이거늘 태자가 한낱 욕심도 내지 아니하시더니,【욕심은 탐욕의 마음이다.】한 채녀가 말리화만(末利花만)을 가지고 들어가【말리는 누른 빛이라고 하는 뜻이다. 태자 목에 매니, 태자가 깜짝도 않고 보시니, 그 각시가 도로 끌러서 밖에 내던졌다.】이월 초이렛 날 밤에〔문(사문)밖에 나 다니시던 해 이월이다.〕태자가 출가하실 시절이 다다르고, 스스로가 여기시되,
「나라 이을 아들을 이미 배게 하여 아버님 원을 이루었도다.」
하시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방광(放光)하시어 사천왕과 정거천에 이르기가지 비치시니,
제천(諸天)이 내려와 예배하고 사뢰되,
「무량(無量) 겁(劫)으로부터 하신 수행(修行)이 이제 와서 익었습니다.」
태자가 이르시되,
「너희 말이야 옳거니와 안팍으로 길을 막아 끊었으므로 나가지 못한다.」
제천의 힘으로 사람들을 다 졸게 하니, 곱게 모시고 있던 각시들이 다리를 다 들어내고 손발을 펴 벌리고 죽은 것 같이 굴러 들어서 콧구멍이 벌렁하게 벌어지고, 볼기에 이르기까지 감추지도 못하고 자며, 콧물과 침을 흘리고, 오줌 똥까지 싸며, 코를 골고, 이를 갈고, 헛소리를 하고, 방귀까지 뀌며, 악기를 보듬고 갈아 쓰러졌거늘, 그 때에 촛불이 찢어지듯 밝았더니,
태자가 보시고 여기시되,
「여자의 모양이 이런 것이었구나!  분과 연지와 영락(瓔珞)과 옷과 화만(花만)과 꽃과
팔고리로 꾸몄거든 약한 사람이 모르고 속아 탐한 마음을 내니, 지혜로운 사람이 바로 살펴 보면 여자의 몸이 꿈 같고 꼭두각시 같도다!」
그 때에 정거천이 허공에서 와서 태자께 사뢰되,
『가십시다. 출가할 시절입니다. 오래 세간에서 즐기고 계시지 못 할 것이니, 오늘날 일체
제천이 원하되,「진리(도리)를 배우고자 원하옵니다.」』
그 때에 태자가 일어나실 적에 앉아 계시던 보상(寶牀)을 돌아 보시고, 이르시되,〔보상은보배로 꾸민 평상이다.〕
「이것이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오욕을 타고 난 땅이다. 오늘날 후로 다시는 태어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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