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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야수다라 왕비의 전생 발원/석보상절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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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부인이 이르시되,

여래(如來)께서 태자이시던 시절에 나를 아내 삼으시니, 태자를 섬기되 하늘 섬기듯 하여 한 번도 소흘한 일이 없었는데, 처권(妻眷)된 지 삼 년이 못 차서 세간을 버리시고, 성을 넘어 도망하시어 차닉(車匿)이를 돌려 보내시고, 맹세하시되,

「도리를 이루어야 돌아오리라.」
하시고, 녹비(鹿皮) 옷 입으시고, 미친 사람같이 산골에 숨어서 여섯 해를 고행하셔서 부처님이 되셔 나라에 돌아오셨어도 친하게 대해 주시지 않으시며, 전의 은혜를 잊어 버리시고 길 가는 사람과 같이 여기시니, 나는 어버이를 여의고 남에게 붙어 살되, 우리 모자가 외롭고 혼미(昏迷)하게 되어 인생의 즐거운 뜻이 없고 죽음을 기다리니, 목숨이 무거운 것이므로 손수 죽지 못하여 섧고 분한 뜻을 가지고 애써 살아가니, 비록 사람의 무리 속에 살아가도 짐승만 못합니다. 서러운 인생이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있겠습니까? 이제 또 내 아들을 데려가려 하시니, 권속이 되어서 괴로운 일도 이러하구나! 〔권속(眷屬)은 아내와 자식과 종과 집안 사람을 다 권속이라 하는 것이다.〕태자가 도리를 일우시어 당신이 자비를 베푼다고 하시나, 자비는 중생을 편안하게 하시는 것이거늘, 이제 도리어 남의 모자를 여의게 하시니,서러운 일 중에도 이별 같은 것이 없으니,〔이별은 여윈다는 말이다.〕이것으로 헤아려 보건대 무슨 자비가 계시는 것입니까?』

하고, 목련이더러 이르시되,

「돌아가서 세존께 내 뜻을 펴서 사뢰소서.」

그 때에 목련이 가지가지 방편으로 다시금 사뢰어도 야수부인이 조금도 듣지 아니하시므로, 목련이 정반왕께 가서 이 사연을 사뢰니까, 왕이 대애도를 불러 이르시되,

「야수는 여자라서 법을 모르므로 모정에 감겨 붙어 사랑하는 뜻을 쓸어 버리지 못하니, 그대가 가서 알아 듣게 타일러라.」

대애도 부인이 오백명의 청의를 더불어시
고, 야수께 가서 갖가지 방편으로 두어번 이르셨는데도 야수는 오히려 듣지 않으시고, 대애도 부인께 사뢰시되,

「내가 집에 있을 적에 여덟나라 왕이 겨루어 다투거늘 우리 부모님이 듣지 않으신 까닭은 석가 태자께서 재주가 기특(奇特)하시므로〔기는 신기하다는 말이고, 특은 남의 무리에서 따로 다르다는 말이다.〕우리 부모님이 나를 태자께 드리시니, 부인께서 며느리 얻으심은 온화하게 살아서 천만 세상에 자손이 이어감을 위하신 것이니, 태자께서 이미 나가시고 또 라후라를 출가시키시어 나라를 이어갈 사람을 끊게 하시니,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애도 부인이 들으시고, 한 말씀도 못하고 있으시더니, 그 때에 세존께서 곧 화인(化人)을 보내시어,〔화인은 세존의 신통력으로 되게 한 사람이다.〕허공에서 야수께 이르시되,

『네가 지나간 옛 시절에 맹세 발원(發願)한 일을 생각하느냐? 모르느냐? 석가여래가 그 때에 보살의 도리를 하노라고 너에게 오백 은 돈으로 다섯 줄기 연꽃을 사서 정광불(鋌光佛)께 바칠 적에 발원하기를 세세(世世)에 처권(妻眷)이 되고자 하였거늘, 내가 이르되,

「보살이 되어 겁겁(劫劫)에 발원을 행하노라 하여 일체 보시를 남의 뜻 거스르지 아니하거든 네가 내 말을 다 들을 것이냐 하니, 너는 맹세하길「세세(世世)에 태어난 곳마다 나라와 성과 자식과 내 몸에 이르기까지 보시하여도 그대가 한 대로 하여뉘우쁜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리라.」하더니, 이제 어찌 라후라를 아끼느냐?』


야수가 이 말을 들으시고, 마음이 훤하여 전생의 일이 어제 본 듯하여 감기어 붙은 마음이 다 스러지기에, 목련이를 불러 참회(懺悔)하시고,〔참은 참는다는 말이니, 내 죄를 참아 버리소서 하는 뜻이고, 회는 뉘우친다는 말이니, 전의 일을 잘못 되었다고 하는 말이다.〕

라후라의 손을 잡아 목련이에게 맡기시고 울며 여의시었다.
출처: (김영배역,석보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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