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대도호부가 있는 구자국
소륵에서 동쪽으로 한 달을 가 구자국(龜玆國,쿠차Kucha)에 이르렀다. 여기가 안서 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가 있는 곳으로 중국 군사들이 대규모로 집결해 있다.이 구자국에는 절과 승려가 많으며 소승법이 행해지고
있다. 고기를 먹으며 파, 부추 등도 먹는다. 그러나 중국 출신 스님들은 대승법을 행한다.
원문 혜초
역 지안
구자는 서한 때 서역 36국 가운데 9대국에 속하는 나라였다. 구자국의 왕성은 연성(延城)이며, 장안에서 7,480리 떨어진 곳이라고 하였다. 역시 [한서][서역전]에 밝힌 수치로는 6,970호에 인구 81,317명, 군사 21,076명이라고하였다. 안서대도호부 (安西大都護府 )는 당나라 때 설치했던 6도호부 가운데 하나로 타림 분지에 설치했던 도호부이다. 당은 오아시스 육로의 북도 연변에 있던 타림 분지의 여러 나라를 관리
하고 동시에 서방과의 교역로를 확보하고 또 천산 산맥 북쪽의 유목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안서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안서도호부는 몇 차례 이전했다. 당이 국씨(麴氏 )
의 나라 고창국(高昌國 )을 6 40년에 멸망시키고 수도였던 고창을
서주오현(西州五縣)으로 이름을 바꾼 뒤 여기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했다. 그러다가 648년 구자로 다시 옮겼다. 그 후 670년에는 토번(티베트)의 서역 진출로 인해 다시 서주로 옮겼다가 692년에
다시 구자로 옮겼다. 이후 안서도호부가 구자에 계속 있었는데 727년 혜초가 구자에 들렀을 때 안서도호부가 있었던 것이다.
구자국은 B.C. 1세기에 이미 불교를 받아들여 서역 나라중불교가 가장 흥성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9세기 중엽에 들어와서 위구르인들이 구자에 침입, 구자에서 투루판에 이르는 지역에 위구르 왕국을 세우고부터 구자의 불교는 쇠미해지고 위구르인들 속에서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불교의 역사 속에서 구자국의 불교는 중국에 불교를 전해 주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구자국 출신 스님들이 대거 중국으로 들어와 포교와 역경에 종사하였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북방의 부견이나 요흥(姚興), 남조의 양(梁) 무제(武帝) 등은 모두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무렵 불교가 성했던 구자국은 이들 나라들과 불교를 교류하면서 많은 스님들을 보내게 되었다. 일찍이 조위 때 낙양 백마사(白馬寺)에서 역경에 종사했던
백연(白延)을 비롯해 법립(法立), 백법구(帛法矩), 백시리밀다(帛尸梨密多羅)
연화정진(蓮花精進), 약나(若那 ) 등 여러 스님들이 중국으로 건너와 역경과 포교에 큰 활동을 하였다. 특히 구마라집(鳩摩羅什, 구마라지바Kumarajiva,344~413년)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구자국 왕의 누이로 구마라집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천축에 가서 소승경전과 베다를 공부하고 나중에 또 우전국
(코탄)에서 대승불교를 공부하고 구자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그의 명성이 서역 전역에 퍼졌다. 전진(前秦)의 왕 부견(338-385년)이 여광을 파견해 구자국을 공격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구마
라집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오랜 교섭 끝에 마침내 후진(後秦) 요흥(姚興) 홍시(弘始) 3년(402년)에 구마라집은 장안에 들어와 역
경에 몰두하여 35부 294권의 경전을 번역하였다
또 구자국 출신 스님들 가운데 밀교를 전파한 스님도 있었다. 구자국 왕자 출신인 백시리밀다라는 건초사(建初寺)에서 밀교 경전인 [대관정경(大灌頂經) 10권, [대공작왕신주경 (大孔雀王神呪經경) 1권, '공작왕잡주경(孔雀王雜呪經1권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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