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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 15 ㆍ16 ㆍ17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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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번의 관할 아래 있는 세 나라.
대발률국 .양동국 .사파자국


가섭미라국(카슈미르)에서 동북쪽으로 산을 사이에 두고 보름 정도 가면 대발률국과 양동국
그리고 사파자국이 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토번(吐蕃)의 관할 아래에 있는 나라다. 옷 입는 복장과 언어, 풍속이 모두 천축국과 다르다. 이 나라 사람들은 가죽 옷과 모직 옷, 적삼, 가죽신, 바지 등을 입는다. 땅이 좁고 산천이 매우 험하다. 절도 있고 스님들도 있으며 삼보를 공경하고 신봉한다. 하지만 동토번에 가면 어디에도 절이 없고 불법도 알지 못한다.
이 세 나라의 땅은 호인(胡人)들의 땅이라서 불교를 믿는 모양이다.



발률국은 대발률국과 소발률국이 있다. 대발률은 현재의 발티스탄(Baltistan)이고 소발률은 현재의 길기트(Gilgit)다. 발률국은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교통의 요충지에 있던 나라였다고한다. 현장은 [대당서역기]에서 발로라(鉢露羅)라고 했는데, 발
로라국은 주위가 4,000여 리나 되고 대설산 속에 있으며 동서는 길고 남북은 짧다고 기술하였다.
양동국은 티베트 서부 지방에 있었던 나라다. 티베트어Jiang dung을 한자로 양동으로 표기했는데 코끼리 영웅[象雄]이라는 뜻이다. 이 양동도 대양동과 소양동이 있는데,
대양동은 동쪽으로 토번과 접하고 서쪽으로 소양동과 접해 있었으며 동서로 1,000리가 된다고 하였다
사파자국은 위치가 어디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본문에 세 나라가 모두 토번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고 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티베트에 인접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토번은 티베트를 가리키는데, 티베트가 7~9세기에 중앙아시아 일대로 진출하
여 그 세력을 확장하였을 때 혜초가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다. 손첸감포 왕이 티베트를 지배하던 때인 7세기 중엽629-650년)에 양동을 복속시켰다. 동토번에 절이 없고 불법도 알지 못한다는 혜초의 기록에 대하여 그 정확성 여부를 놓고 학자들은 정확한 기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다른 문헌에는 8세기 중업 즉 혜초가 이곳을 방문할 무럽 토번에서 불교를 신봉했고 또사원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설산 계곡에 있는 토번국


동쪽의 토번국(吐蕃國, 티베트Tibet)은 순전히 얼어붙은 산 눈 덮인 산과 계곡 사이에 있다. 이곳은 모직 천으로 천막을 치고 생활한다. 성곽이나 집이 없다. 사는 곳은 돌궐(突厥)과 비슷하고,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한다.
이 나라의 왕은 비록 한 곳에 거처하지만 성(城)이 없다. 그저 털로 짠 모직으로 만든 천막에 의지해 살면서 일을 한다. 땅에서는 양, 말, 묘우(猫牛, 야크yak), 모포,베 종류가 생산된다. 입는 옷은 털옷과 베옷, 가죽옷이며 여자들도 그렇다. 땅의 기후가 무척 추워 다른 나라와 다르다. 가정에서는 늘 보릿가루 음식을 먹고 가끔 떡과 밥을 먹는다. 국왕이나 백성들이 모두 불법을 알지 못하며 절도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는 거기에 누워 잠자기 때문에 침상이 없다. 사람들은 얼굴이 새까맣고, 흰 사람은 아주 드물다. 언어는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 옷에서 이를 잡아서 잘 먹는다. 털옷과 베옷을 입기때문에 서캐와 이가 무척 많은데, 잡기만 하면 곧바로 입 속에 넣어 버리고 다른 데 버리지 않는다.



토번은 지금의 티베트이다. 토번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중국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번(西番)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명나라 때에는 오사장(烏斯藏), 청나라 때에는 위장(衛藏) 또는 서장 (西藏)이라고 불렀다. 오늘날도 중국에서는 주로 서장(西藏)이라고 부르고 있다. 토번의 건국에 관한 여러 가지 전설이 있지만, 정확한 역사적 기록으로는 제32대 왕인 손첸감포 왕에 이르러 이루어졌다. 손첸감포는 13세에 등극한 후 국력을 크게 신장시켜 인도 서북부와 서역의 여러 나라를 점령 국토를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당나라까지 위협하자 당 태종은 문성 공주를 손첸감포에게 시집을 보내양국의 화친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또 손첸감포는 불교를 크게 장려하여 불교 왕국을 수립하였다. 서장장경(티베트장경)이라고 하는 대장경을 만들고 불교문화를 발전시켰다. 오늘날 밀교의 전통을 계승해 온 곳이 바로 서장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홍망성쇠 속에서 한때 번창했던 토번이 당나라 의종 때 국운이 기울어 866년에 나라가 망하고 만다.
묘우(猫牛)는 히말라야 산맥이나 알타이 산맥의 중간 고원지대에 서식하는 야크(vak)를 말한다.
사람이 입는 옷에 이가 생기면 이빨로 깨물어 죽이는 풍습은 옛날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풍습으로 이것은 이를 죽이는 방법이었는데 혜초는 이를 잡아먹는다고 본 모양이다.

남자들이 모두머리를
깎고 사는 소발률국



가섭미라국에서 북서쪽으로 멀리 산을 두고 7일을
가서 소발률국에 이르렀다. 이 나라는 중국의
관할 아래 있다. 옷을 입는 복장이나 풍속, 음식, 언
어는 대발률국과 비슷하다. 털로 짠 모직으로 만든 적삼과 가죽신을 신고, 수염과 머리를 깎는다. 머리에는 면포 한 장을 동여맨다. 여자들은 머리
를 기른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부자는 적다. 산천이 협소하여 농토가 부족하여 농사를 많이 짓지 못한다. 산들은 민둥산이다, 원래 나무나 풀이 없었다. 대발률국은 본래 소발률국의 왕이 살던 곳이었다. 토번이 내침하자 왕이 소발률국으로 달아났다가 눌러앉고 수령과 백성들은 대발률국에 남아 있고 따라오지 않았다고 한다.


소발률국은 현재의 길기트(Gilgit)로 티베트어로는 부루자(Bru-zha)라고 하는 곳이다. 역사학자들은 소발률국이 737년에 토번의 지배에 들었다가 우리나라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서쪽 정벌 때 당에 종속되었던 곳이라 한다.
이곳은 지리적 요충지였으며, 불교의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당나라 현종 때 이곳을 다스리던 몰근망이 장안에 와 조공을 바친 일이 있으며 토번으로부터 자주 침공을 받아 그때마다 당에 구원을 청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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