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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128

불모산 성주사-182 진경 스님이 처음 중창할 때, 예전 창건 당시의 절터에다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곰이 모든 목재를 하룻밤 사이에 400m 떨어진 지금의 절터로 옮겨다 놓았다. 진경 스님은 부처님의 뜻으로 알고 곰이 목재를 옮겨다 놓은 이곳에다 중창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성주사는곰과 연관이 많은데, 다음에 또 다른 내용의 곰과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어느 때인가 불모산에 살던 곰이 배가 고파 절에 내려왔다. 그런데 곰이 스님들을 보니 모두 참선 중이었다. 그 곰은 배고픔을 잊고 스님들을 따라 같이 참선을 흉내 냈는데, 이것이 공덕이 되어 후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성주사를 곰절 이라고 부른다. (전통사찰관광정보)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로,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 2008. 6. 23.
불모산 성흥사-181 성흥사는 신라 흥덕왕 8년(833)에 무염국사가 세운 절이다. 흥덕왕 초년에 무염국사가 웅동 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친 기념으로 왕이 무염에게 재물과 전답을 시주하여 구천동에 터를 골라 이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세울 당시에는 500여 명이 머물렀던 대사찰이었으나, 세운지 276년만에 화재를 입어 대장리로 옮겨 지었다. 조선 현종 9년(1668)에 또 다시 화재를 입어 구천동으로 옮겼다가 정조 13년(1789)에 현재의 위치에 세웠다. 성흥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지만,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대단히 기울어져 팔작지붕의 느낌을 준다. 전반적인 건축의 양식은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이며 기록.. 2008. 6. 21.
성전암에서-19(1) 수목원에 오랫만에 나들이를 하려다 수 많은 차들이 길과 길을 주차장장으로 만들었다. 산림 박람회란다. 한적하게 걷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차를 돌려 오다가 성전암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집 마나님 고향이라 더더욱 낯설지도 않고 생생한 산바람이 향기를 내 뿜는다. 성전암은 통일신라시대인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조선시대에서는 인조가 왕이 되기 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에 등극하였으며, 암자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인조각(仁祖閣)을 세워 오늘날까지 제향을 올리고 있다. 주변 산세가 험하고 깊어 예로부터 참선수도자들이 많이 머물렀으며, 나한을 모시는 나한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성전암 대웅전에 봉안된 이 여래상은 높이 60㎝, 폭 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2008. 6. 9.
장안사(기장)--175 2008.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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